한국에 베트남 사람들이 모이는 분당 베트남교회 (원 티 투 타오 목사)

15년 전 입국해 신학 공부 마치고 목사 안수 받고 자비량 선교,
귀화해 베트남 노동자들 일자리 창출과 비자 문제 해결에도 힘써
  

   
 한국으로 귀화한 원 목사

베트남인들이 한국에서 ‘분당 베트남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다. 한국교회 예배시간 중 어느 시간을 빌려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비록 월세지만 자기 건물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회 바로 옆에는 (주)주은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 자비량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가 하면 베트남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원 티 투 타오 담임목사(37세, 여)는 분주해 보였다. 베트남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작은 키에 다부진 눈빛과 입술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 다문화인 아닌 베트남 여성으로 첫 귀화
원 목사는 다문화가정 외의 인물로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첫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목회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베트남 사람으로, 모태신앙의 축복 속에서 자랐고, 현지에서 호찌민 외국어대학교를 다니면서 한국 선교사와 4년간 협력사역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국에 온 것은 2000년, 스물한 살 때다. 구미의 한 교회에서 베트남 사역자를 찾고 있던 중 원 목사가 적합한 사람으로 천거된 것이다.
그때부터 고생이, 하나님의 일선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리라는 걸 크게 감지하지 못했다. 원 목사는 구미의 교회 지원으로 총신대에서 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와 신학 박사(Th. D)코스를 마쳤고, 논문만 남겨둔 상태다. 목사안수는 독립교단에서 받았다.

그렇게 목회 준비단계를 마친 후 베트남교회를 시작했다. 베트남 노동자들이 밀집돼 있는 곳에서 함께 하며 남서울비전교회 내에서 장소를 빌려 예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계가 많았다. 교제와 교육, 식사 등 예배 외 부대 장소가 절실했다. 토요일부터 모이는 이들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으니 찜질방에 모여 성경공부하고, 밥 먹고 잠을 자야만 했었다.

원 목사는 선교사(베트남에서 사역을 도왔던 한국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이 함께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다행히 선교사는 방 2개가 딸린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한 번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기 위해 수십 명이 드나드니 주위의 주민들에게 민폐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여전히 공산권인 베트남국가 사람들,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복음 전도 용이-1년에 한번씩 전도한
그들의 영상 촬영해 가족에게 보여주면 전도는 저절로


+ 교회 건물 마련의 기적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장소를 우연히 지나다가 ‘임대’라는 두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무작정 주인에게 연락하니 5천만 원에 월 2백만 원이란다. 그 액수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지 못한 원 목사는 3천만원에 1백만원으로 해달라고 말했지만 그 집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방에 거절했다.

그러나 돌와서도 그 건물이 계속 생각났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그런 상황을 얘기하고 함께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집주인이 빨리 와서 계약하라고 전화가 온 것이 아닌가. 계약금이 준비되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그 집주인은 어서 와서 계약하라고 성화였다.

이유를 들어본즉, 원 목사가 다녀간 후 집주인(공무원이었다)은 하두 어이가 없어서 지인에게 ‘어떤 베트남 여자 목사가 월세를 반으로 깎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우리들이 어떤 베트남 여자 목사가 교회 건물을 구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도하고 있는 중인데, 그분 얘기인 것 같다’고 하더라는 것. 집주인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신자가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줄 알고 벌 받을까봐 계약을 서둘러서 하게 됐다는 것이다.

원 목사는 하나님이 사랑해주시는 것을 느꼈다. 손에 쥔 계약금은 없었지만 계약을 성사시켜주셨으니 하나님이 책임져주실 것을 믿고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 목사는 신자들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계약금을 어떻게든지 우리 힘으로 마련하자고 강권했다. 우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차를 팔고,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한 달 생활비를 헌금하자고 제안했는데, 다행히 모두들 흔쾌히 응해주어서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증금은 선교사가 방 2개 얻어준 것을 이 건물로 돌려달라고 요청해서 허락이 되었고, 나머지 모자라는 계약금은 어떤 분이 이 얘기를 듣고 선뜻 헌금해주어서 채워지는 은혜를 입었다.

교회 운영은 되지만, 생활이 어려운 신자들을 위해 쌀국수 가게를 시작했다. 오리역에서 10여 분 거리이고, 죽전 로데오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잘 될 줄 알았지만 쉽지 않아 접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 하고 있는 ‘주식회사 주은’이라는 무역회사 일이다.

회사 대표 역시 원 목사. 베트남 사람으로 일을 하려니 한계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귀화를 결심했다. (성씨 응웬에서 원으로 바꿈)그러면 회사를 설립해 외국인 노동자인 베트남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비자를 줄 수 있는 등 혜택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 목사가 처음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모든 것을 스스로 책이나 인터넷 등을 뒤져가며 배우며 해야 하는 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스스로 하다보니 모든 일의 절차나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있어서 베트남 친구들에게 알려주어 일꾼으로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교육을 받으면 조금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주식회사는 시작된 것이다. 신앙도 신앙이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것이 시급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주은 주식회사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트남 커피, 식품, 그리고 한국의 특산물 등과 통역하고 번역하는 일, 베트남 사업 시 상담이나 컨설팅 등 양국의 협력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움 받는 교회 아닌 헌신하며 책임감 있는 복음의 사람 길러내기 위해 힘겹게 독립건물 마련
한-베 찬송가, 한-베 학교 등 절실

   
▲ 지난 6월 분당베트남교회는 10주년을 맞아 감격의 예배를 드렸다.

+ 한-베 간의 행복을 위한 과제들
교회 담임목사로, 회사 대표로도 일이 적지 않지만 베트남 신자들의 가정사부터 병원 의료 사고, 그리고 경찰과 법원의 통역원으로 활동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버거운 현실이다. 특히 가슴 아픈 것은 문화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폭행을 당하거나, 이들의 처지를 악용해 급료를 주지 않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을 자행하는 이들을 만날 때다.

“어제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던 다문화가정이었는데,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인 남편의 얘기만 듣고 베트남 여성을 비행기 태워서 보내버린 것입니다. 갈등이 있었지만 봉합되어가는 상태였는데, 남편 식구들이 대거 몰려와 당장 보내야 한다는 일방적인 결정으로 베트남 여성은 하루아침에 모든 걸 빼앗기고 출국당한 것입니다.”

원 목사는 아직도 마음이 아픈지 눈시울이 불거졌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하다. 특히 다문화가정을 들여다보면 문제들이 너무 많다. 상담을 제대로 해서 이혼율을 막고,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다문화센터가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 또 다문화가정의 베트남 여성들이 마음껏 일해서 가정을 일구고 베트남 식구들도 도울 수 있도록 늦게까지 아이들을 맡아줄 수 있는 어린이집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한-베 학교를 통해 엄마의 나라인 베트남에 대한 문화적인 부분을 교육해 엄마를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도 크다.

원 목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의 방법대로 이미 시작하고 있다. 현실적인 그들의 아픔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간구하고 있다. 시간은 다소 걸릴지라도 그는 지치지 않고 그 일들을 풀어나가는 데 노력을 할 것이다.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 야무진 소망, 포부들
개척한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분당베트남교회는 도움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베풀고 섬기며 선교하는 교회이기를 원했다. 한국의 교회들이 독립해 나가면 지원이 어렵다고 할 때도 과감히 독립을 선택한 것은 받는 것에 길들여지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분당베트남교회는 주일날 오후 1~2시 한국어 수업을 하고, 그 이후에 예배를 드리고, 주일저녁 7시에 한국어 수업과 함께 간단히 예배를 드린다. 목요일에도 시간이 맞지 않는 이들을 위해 수업시간과 예배시간을 갖는다.

주일에 모이면 먹고 자고 하는 인원이 꽤 된다. 숙식 문제는 이 교회에서 모두 해결한다. 베트남의 특성상 북쪽 하노이에 공산당원들이 많아 경제적으로 더 어렵고, 교회도 남쪽 호치민 쪽에는 몇 천개나 되는데 북쪽에는 14개 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 오는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북쪽의 사람들인데, 원 목사는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국가여서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 원 목사도 공산 당원이 꿈이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10년간 베트남 북쪽에 교회 한 개, 신학교 한 개를 세우게 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큰 성과다. 매년 한 번씩 베트남 근로자를 대신해 영상과 선물을 가지고 현지에 가서 전달하는데, 그 영상에서는 모두 교회를 통한 도움, 은혜를 얘기하고 있어서 전도가 저절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 목사는 한국에 베트남신학교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공산국가이기에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기 때문에 인물을 길러서 보내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외에 한-베 찬송가 출판도 진행하고 있다. 목사인 어머니(60세)가 번역을 다 마쳐서 3개월 비자를 받아 입국했지만 저작권이나 악보 사용 문제 등 출판사나 공회와의 협의가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출판하려면 어머니가 교정까지 끝내고 10월 초에 귀국해야 하는 상황인데,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심고, 베트남에서 거둔다’는 분당베트남교회의 비전은 거북이 걸음처럼 느리지만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 심은 복음의 씨앗이 여러 아픔과 어려움 속에서 꽃을 피워내 베트남에서 열매로 나타나고 있다(031-266-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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