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8:9~17

   
▲ 김기석 목사/청파교회 담임

◈ 전도된 현실
저는 부질없는 집착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해질 때면 전도서를 읽곤 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 1:2). 이 말은 자칫 잘못 이해하면 세상사 다 부질없으니 대충대충 살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우리가 오늘 애집하고 있는 일들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실제로 전도서의 저자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왔던 지혜, 즐거움, 수고, 우정, 승진, 부유함, 권력 등이 다 무상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세월과 함께 다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대충대충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복잡다단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꿰뚫어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그가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권력 쥔 사람 따로 있고, 그들에게 고통 받는 사람 따로 있음을 알았다’(9). 이 말은 세상이 그러하니 억울하다고 불퉁거리지 말고 팔자려니 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한데 현실은 그렇게 도착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악한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를 칭찬합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분별력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 세상사, 허망하구나
그런 삶의 기준이 흔들리면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서슴지 않고 죄를 저지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등 돌림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하던 뱀에게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스스로 전능해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죄의 뿌리입니다. 죄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죄는 독점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만 정향된 사람은 이웃의 절실한 아픔도 사소한 에피소드로 취급하고 맙니다. 가끔 우리도 악인들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12절과 13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적절한 보상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그러한 통념은 작동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정직하게 말합니다(시 58:10~11).

지금 우리 현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일제 시대에 적극적으로 친일행적을 벌인 이들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여전히 곤궁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쯤 되면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아 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하다’(‘사철가’ 중에서) 하고 노래할 때의 존재론적 쓸쓸함이 아니라 전도된 인간 현실이 빚어내는 씁쓸함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탄식을 해보아도 현실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꾸만 지치고 맙니다. 여전히 악인들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불의와 싸우다가 실패해도 세상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이 사실을 굳건히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명랑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한껏 즐길 수 있습니다.

◈ 어떻게 살까? 지금을 성실하게
전체적인 전망이 불투명할 때 사람들은 자꾸 비틀거립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오롯이 현재에 충실해야 합니다. 현재는 우리 인생 전체에서 보면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영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시해 보이는 현재야말로 영원의 섬광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년)는 그것을 일러 ‘영원한 지금’이라 일컬었습니다. 영원한 지금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특색은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기쁨을 유보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즉 생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전도서의 기자는 그 모호한 생에 사로잡혀 불퉁거리지 말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지금을 한껏 살아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총 속에서 늘 기뻐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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