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그 고난의 흔적을 내가 가졌노라, 했던 사람은 멋진 표현법으로 한 말이고 예수 십자가 앞에서 은혜에 감격하여 우는 자에게 주 예수는,“내가 널 대신 죽은 것을 믿느냐?”고 물으신다. 그 때 나는(당신은) “주여 그러하옵니다. 주가 나의 죄 된 인생을 대신하여 죽으셨나이다!”

바로 여기까지를 고백하면 예수의 들릴락 말락 한 음성이 내(당신) 가슴 속에 들려올 것이다.

“아들아(아무개야)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으니 너는 나의 남은 목숨의 날을 (네가) 대신하여 살아 주었으면 한다….”

이런 형식으로 대화가 이뤄지면 신자의 믿음이 상승하고 강화되면서 교회는 우수한 인재를 얻게 된다. 신자들이 많다. 너도 신자, 나도 신자, 신자들이 발에 밟힐 만큼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으실 것이다. 우선 우수한 신자가 상당수 준비되어야 우리 사회의 변화에 기독교가 주요한 역할을 해 줄 수가 있다.

우선 북한 공산당과 이슬람 한국시대가 있다. 우리나라는 가까운 날에 남북관계가 변화한다. 휴전선에 배치한 확성기 정도가 무서운 북한 공산당 정권은 머지않아 남북한 경제교류, 경제통합 단계를 요구할 것이다. 남북한 주거제한이 풀리는 날도 생각해보라. 남북한은 공산당 훈련이 잘 된 약 80만 명 정도의 북한 사람들과 사회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그때의 사회질서를 위한 기독교의 기여를 준비해야 한다.

또 하나, 지금 우리나라는 ‘다문화 가정’과 ‘중동 자금’ 등으로 말미암아 이슬람 신자들이 많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 이슬람(중동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까지면 한국 이슬람은 이미 1백만 명을 돌파했을지도 모른다.

이슬람 세력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그들의 응집력, 또는 생존력 앞에서 한국교회 신자들, 특히 목회자들은 입이 벌어지고 그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수가 있다.

남북한 교류가 이루어지면 정예 공산당 사람들과 함께 사회활동을 해야 하고, 중동의 이슬람,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달려오는 다문화 인구 앞에서 감당키 어려운 힘의 한계를 느낄 한국교회 앞날을 심히 우려한다.

이는 종말의 시간 이전의 종말적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힘을 겨루어 볼 상대가 없이 살아온 ‘온실의 생물’ 같았던 한국교회는 지금쯤 깊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한다.

주님이 나와 당신을 대신해 죽은 것을 믿으라! 예수는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던져야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서 무엇을 보는가?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만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예수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나와 당신, 위선 떨며 사람과 하나님을 적당히 속이면서 사는 길은 예수 믿는 자의 삶이 아니다. 정신 차리고 우리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가를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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