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소중한 목회, 함께 하는 교회
“주님의 사람으로 섬겨 온 세월, 계속 주님의 손에 붙들려가라”옥수동 골짜기에서 성동교회 45년 사역, 내년 성전 건축 앞두고 은퇴하는 이영훈 목사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570호] 승인 2015.09.02  14:54:1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부목사로 7년간 사역했던 후임목사, 세대교체 과정 순탄해 감사-아들은 아들의 길로

하나님과 대면하며 성숙을 독려한 묵상집 <생명의 샘가> 30년 사역도 큰 결실

말씀 사랑, 영혼 사랑, 교회 사랑 세 가지 늘 염두에 둔 사역-죽음 준비하는 차원에서의 은퇴길

 


   
▲ 8월 30일 원로로 추대된 이영훈 목사(왼쪽)와 담임 최윤영 목사

‘교회를 창립할 당시 이영훈 전도사의 나이는 불과 24세. 신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그는 학업과 목회를 병행해야만 했다. 매일 새벽기도를 마친 후 수업을 준비하고 등교해야 했고,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느새 오후 3시쯤. 교회로 돌아온 이영훈 전도사는 책가방과 전도지를 들고 옥수동 골목을 누비며 전도의 길을 나서기에 바빴다. 축호전도와 심방을 마칠 때면 언제나 밤은 깊어져 있었다.
서울 옥수동에 자리한 성동교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초창기 멤버들 몇 명과 함께 하며 교회 개척의 책임자로 나섰던 이영훈 전도사는 이제 목회 45년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후임목사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자랑스러운 원로목사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다. 8월 30일 주일 원로목사로 추대 받은 이영훈 목사는 새로운 후임목사(최윤영) 선임을 마치고 지난 1년간 함께 해보니 “무엇보다 성동교회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어서 이제까지의 사역을 딛고 비상(飛上)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영훈 목사를 만나러 찾아간 교회는 임시예배처소였다. 지금쯤이면 건축이 마무리돼야 하지만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지역 사정상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체돼 이제야 건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건축이 마무리 되고 은퇴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건축이 좀 늦어진 것 같아 아쉬우시겠습니다.
- 재개발단지의 도로 공사 문제로 이 지역 전체가 착공이 좀 늦어졌습니다. 이제야 시작하게 됐으니 내년까지는 공사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저도 원로목사로서 건축이 마무리되고 준공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잘 보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지역개발 얘기가 수십 년 전부터 계속 있었기 때문에 신자도 개인 살림을 미리미리 생각했었고, 교회 차원에서도 준비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건축 비용 때문에 무리하지 않을 수 있게 됐어요. 신자들도 좁긴 하지만 모두들 ‘내 집’ 마련도 했고요.

옥수동의 산동네로 일컬어지는 이곳에서 지역 교회로서 주민들과 함께 45년을 해왔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거처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지역 주민들과 일부 신자들과의 이별은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성동교회와 함께 해온 신자들 중 상당수는 3,4대가 대를 이어 참여하고 있고, 가족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며 여전히 함께 하기를 희망하며 기둥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감사한 일입니다.

▲ 45년 사역, 목사님의 인생 전부가 담긴 세월인데,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 저는 해방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었고, 특히 옥수동은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더 짙은 정이 묻어났고, 그만큼 순수했습니다. 저에게는 목회하면서 말씀 사랑, 영혼 사랑, 교회 사랑이라는 세 가지를 견지하고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서 나의 신앙을 키워왔고, 힘겨운 지역 속 사역에서 고생스러운 자국들이 있지만 행복했습니다.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보니 교회는 바로 성도들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성도들이 교회이고, 성도들이 교회를 이뤄가는 지체로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으로 세워져가는 모습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일반 평신도가 목회자의 영적 수준까지 함량이 발전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큐티 묵상을 오랫동안 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 말씀하신 큐티 묵상집 <생명의 샘가> 얘기시군요. 올해로 30주년을 맞게 된 이 운동 또한 성동교회가 잉태한 유산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 제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영적 생활을 함양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것을 신자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목회자의 영적 인도함에만 머무르지 말고 직접 하나님과 마주 대면하는 존재로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다행히 성도들이 잘 따라주었고, 한국교회와 함께 하고픈 열망이 생겨서 나누기 시작한 <생명의 샘가>는 국내외 교회들과 군 선교지, 단체들이 활용하고 있을 정도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이 큐티 운동이 앞으로도 잘 발전돼서 신자들의 영적인 삶에 좋은 자양분을 제공하는 순수한 매개체로서 침체되고 있는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목회 사역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많아 힘겨울 때도 적지 않으셨을 텐데,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나요?
- 개척 당시, 그리고 자립하기까지 참으로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네요. 제 나이 때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교회를 일궈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다만 45년간 안식년 없이 달려온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 선교지를 돌아보기 위해 한 달 정도 교회를 비운 것 외에는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요즘 한국교회에서는 대물림하는 일들이 적지 않은데, 성동교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눈에 띕니다.
- 개인적으로 목회자의 입장에서 자녀가 목회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상황은 대물림이나 세습에 대한 지탄들이 있어서 과도기인 것 같긴 합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일평생 정성을 기울여놓고 후임자에게 덥석 물려주고 가는 심정이 어떠냐’고요. 제 아들이 한번은 성동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그러더군요. ‘저는 이영훈 목사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목회의 길을 가고 싶다’고요.

제가 늘 그 아들목사에게도 얘기했던 것이지요. 아버지가 쌓아놓은 사역의 현장이 아닌 본인의 이름으로 하나님 나라를 개척하는 것이 보람된 것이라고요.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 또한 내 교회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처음 예배당을 건축하고 기도하는데, 성동교회가 보이면서 저에게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 결심으로 전 재산을 교단 유지재단에 헌납했습니다.

▲ 은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 은퇴한다는 것은 이제 죽음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단계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부름 받을 것인가 하는 준비과정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 내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하고, 뒤돌아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후일의 준비를 의식하면서 하니까 마음 비우는데 보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은퇴하면 선교사라는 의식으로 살고 싶습니다. 교회에 머물든지, 다른 지역을 방문하든지 복음을 들고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고 더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특히 말씀을 통해 경건한 삶이 더 깊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후임목사인 최윤영 목사와 성동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실 듯합니다.
- 후임목사님이 나이가 좀 젊긴(43세) 해도 성동교회에서 부교역자로 7년간 사역했던 분이어서 성동교회를 이해하고 함께 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4년간 성동교회 40주년 기념교회로 개척해 나가서 성실하게 교회를 일궈놓은 것도 검증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성동교회 40년사>의 편집 책임자로 활약하면서 성동교회의 개척 정신이나 저의 목회 철학, 영적인 성장의 과정 등 그동안의 성동교회사를 연대별로 연구하고 배웠고, 신자들과도 접촉하고 대화하며 더 진솔하게 성동교회를 이해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성동교회는 곤고한 영혼들이 머물고 쉬며 힘을 얻는 교회로 자리매김했고,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가져온 ‘거룩한 씨’로서의 ‘그루터기 교회’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사랑하는 영적 샘터로 발전하고 지속돼 하나님 나라에 작은 공헌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 짓는 교회 외형도 ‘방주’ 모양을 띠게 될 터인데, 이 시대 속에서 방주 역할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년간 후임목사와 사역을 같이 해 왔는데, 교회 규모도 커지고,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새로운 지역으로 조성될 계획에 있어 후임목사는 어떻게 부흥시킬 것인가 하는 부분에도 골몰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 당연한 거룩한 부담이겠지만 저는 ‘천천히 걸어가라. 조급해지지 말라. 목회는 되어지는 것이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조언합니다. 목회는 목회자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되어져가야 하는 것을 저는 실감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후임목회자와 원로목사의 관계가 아름답게 계속돼 한국교회에 좋은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에게 대물림하지 않아도 교회가 혼란스럽지 않고, 세대교체 된 후임자가 초심을 잃지 않고 교회 역사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교회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그 길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

   
 

▲ 앞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의 자리에 계실 텐테, 현재 한국교회를 바라보시면서 타개할 수 있는 해법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영적으로 추락을 하고 영향력을 상실했는지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골고다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도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에는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움켜쥐는 데 급급하다보니 영향력이 없고 공염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신자들이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세속에서도, 사탄의 권세 앞에서도 매번 실패하는 것은 말씀을 들으면서 올바로 듣고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자기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지 말고 묵묵히 지고 가는 목회자와 성도들로 가득 차는 교회이면 세상도 우리를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양승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