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2

“교수님. 저희가 놀러가는 길이 아닌데 신붓감이나 찾으라니…, 서운합니다.”
안토니가 마리아의 말꼬리를 잡는다.
“아니오. 가고 오는 길이 쉽지 않아요. 긴장하지 말고 가는 길이나 로마 주교(교황)를 만나고,
또 돌아오는 길 또한 각기 1년씩 이상 걸릴 터이니 느긋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 선교단 활동도 인생 사는 법을 말하는 것이지 특별한 것은 아니거든….”
“네, 알겠습니다.”

 

 

   
▲ 우루무치 지역 한 가정에서 길쌈하는 부부

안토니 주교 로마 가다

안토니 주교는 서둘러서 로마 교황청까지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일행은 4명으로 그가 활동하는 뱀골에서 2명을 선택했다. 페르시아 왕국 서기부에서 활동하던 아모스와 국경 수비대 출신 쿠르간이다. 이 두 젊은이들은 기꺼이 안토니의 길고 먼 여행에 동반하기로 했다. 영부 주교가 청년 2명을 추천했다. 박트리아의 메르시아와 다메섹의 야곱이다.

소개받은 청년들 4명에게 안토니가 말했다.
“여러분, 신세계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나 이 늙은이는 두려운 길을 떠납니다. 내게 두려움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 건강이요 또 하나는 로마 교회 사람들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중에 내가 여러분의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교님, 약한 마음일랑 생각지도 마세요.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주교님과 저희들의 길을 선히 인도하

실 줄 믿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이 말을 하자 쿠르간, 메르시아, 야곱이 다 함께 동의를 표했다.
영부 주교는 교황과 로마 황제에게 전하는 당 황제의 친서를 안토니 주교에게 전하고 또 당나라 영토 안에서 소용될 신분 확인서까지 전했다.
“제가 가야 하는 길을 안토니 주교님이 가시게 되어 송구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 모두를 인도해 주실 줄 믿겠습니다.”
쿰바홀 주교와 요수아와 실비아의 아들 다위드가 예정대로 안토니 일행과 함께 다음날 새벽길을 나섰다. 그들이 난주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다시 그들은 난주 교회를 떠나 하서 주랑의 협로를 따라 마차를 몰았다. 이틀 후 코초에 도착했다. 비호처럼 달린 길이다.
사전 연락 없이 장안에서 안토니와 쿰바홀 등 일행이 도착하자 마리아 교수는 깜짝 놀랐다.
“교수님, 그간 강건하셨지요. 기도하면서도 염려했었는데 어떠신지요?”
안토니가 정감어린 목소리로 마리아 교수의 건강을 걱정했다. 쿰바홀 또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마리아 교수의 건강을 물었다.

“보시는 대로 아직은 견딜 만합니다. 내게 무슨 할 일이 더 있는지 주심의 뜻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는 누굽니까?”
“네, 교수님이 앞으로 가르치실 제자입니다. 총명한 아이입니다. 사마르칸트 요한 박사님의 외손주입니다.”
다위드가 나섰다. 그는 먼저 큰절을 마리아 교수에게 올리고는 다시 무릎 꿇고 앉아서 말했다.
“할머니 교수님, 그간 할머니를 무척이나 사모해 온 다위드입니다. 저는 할머니 교수님께로부터 알로펜 총주교님의 신앙과 신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의 이름이 다위드가 아니라 알로펜 2세가 되게 해 주세요. 저는 무지몽매하지만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다.”
“오호, 저런. 아직 어린데 총명하구먼. 그래, 그래. 알로펜 총주교님이 아마 너를 기다리셨나보다.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는데…’ 하시면서 늘 당나라 쪽 방향을 바라보셨는데 아마 이 아이를 기다리신 모양이네. 그래, 내가 너에게 들려 줄 말이 있어서 살아있는가 보구나. 이리로 오너라.”
마리아 교수가 두 손을 펴서 다위드를 품에 안았다. 등을 토닥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쿰바홀이 마리아의 품에서 다위드를 떼어 내려하자 다위드는 마리아 교수의 가슴에 몸을 묻고 움쩍도 하지 않았다.
“다위드, 이놈! 그래가지고 언제 알로펜 총주교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으려느냐?”
안토니가 짐짓 호통스럽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다위드는 재빠르게 마리아의 품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마리아를 우러러본다. 마리아는 그의 눈빛이 어찌나 영롱한지 마주보는데 그의 눈이 시릴 정도였다.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알로펜을 처음 만났을 때가 그의 나이 15살이었음을 떠올린 마리아가 다위드의 나이를 물었다.

“저의 나이 올해로 10살이옵니다. 교수님.”
“그래, 좋은 나이다. 열심히 공부해라. 네가 원하는 알로펜 총주교님의 신앙과 신학은 내가 아는 대로 일러주마.”

드보라는 진즉부터 마리아 교수 곁에 있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째서 드보라 님은 말씀이 없으신가요?”
쿰바홀이 묻는다.
“내게는 차례가 오지 않아서요.”
드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알로펜 총주교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마리아의 그림자 노릇에 철저했다. 마리아의 언행 또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모두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리아가 드보라를 다위드에게 소개했다.

“다위드, 드보라 수녀장님이시다. 늘 나를 대하듯이 잘 모시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야.”
“네, 교수님 할머니.”
“뭐, 교수님 할머니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쿰바홀이 다위드 머리통을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아마, 교수님보다는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은가보지.”
안토니의 말이었다. 안토니와 쿰바홀이 마리아 교수님을 외부 접견실로 모시고 나왔다. 로마행 일행들을 만날 차례였다.

“교수님. 저와 함께 교황청까지 동행할 청년들입니다. 이 청년은 아모스입니다. 페르시아 왕국 서기부에서 관리로 있었으며 북 왕조 사마리아가 앗수리아에 의해 패망한 후 메디아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귀한 가문 출신입니다.”

안토니의 소개를 받은 아모스가 마리아 교수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100살이 넘은 할머니 같지가 않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빛이 형형하다. 자애롭고 눈웃음치는 얼굴이면서도 눈빛은 깊은 밤 반짝이는 별빛 같다고나 할까. 마리아 교수는 아모스를 뚫어지라고 바라본다.
“그럼, 아모스 선지자의 후예겠네?”

“그렇습니다. 그 선지자께서 직계 할아버지랍니다.”
안토니가 다시 한마디 더 했다.
“자랑스러워라. 그 이름, 우리 기독교의 자랑스러운 이름이죠. 그분 선지자는 남 왕조 유다의 이사야 님과 함께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죠.”

“네, 교수님. 그러나 저희는 패망한 왕조의 후손인걸요. 지금도 저는 패망한 나라에서 떠밀려서 당나라까지 흘러갔다가 안토니 주교님을 뵙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금번의 업무를 잘 수행해서 주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렵니다.”

“그래야죠.”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와 함께 아모스에게 답했다.
“참, 교수님. 이 사람들은 저 아모스가 소개 드리죠. 여기 내 오른쪽은 쿠르간인데 페르시아 국경 수비대 장교 출신이고. 그 곁으로는 박트리아 출신 페르시아와 다메섹에서 온 야콥입니다. 우리는 모두 몸이 건강하고 또 저희들의 사명이 중함을 잘 압니다. 안토니 주교님을 도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네, 잘 다녀오겠습니다. 교수님! 저는 쿠르간입니다.”
“저는 메르시아입니다.”

“네,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다메섹 출신이시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수님의 존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야콥입니다.”
“어. 참 그런가요. 야콥 형제여. 다메섹에서 왔다고….”
마리아 교수는 다메섹이라는 말에 아득한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표정이다. 다메섹을 조용히 읊조리는 그녀의 양 볼에 가벼운 홍조를 느낄 수 있었다.

“교수님. 야콥이 교수님을 고향에서 알고 있었다고 하잖아요. 왜, 말씀이 없으세요?”
안토니가 마리아의 추억을 들먹였다.
“내게 다메섹이 뭘까?”

마리아는 안토니를 향해 묻는다.
“다메섹 신학교 교수요 도서관 직원으로 있을 때 크데시폰에서 온, 막 소년기를 거치고 있는 알로펜 군을 눈여겨봤던….”

“그만, 그만…. 별 소리를 다 하네.”
안토니는 잠시 주춤하더니 일행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교수님! 이 친구들 모두가 충각입니다. 금번에 다녀오거든 교수님이 모두 장가보내 주세요.”
“그래야죠. 그런데 뭐, 장가는 혼자서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신붓감을 구해주시라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안토니, 그런 말 마시오. 나도 남편감을 못 찾고 다 늙어 가는데 무슨 그런 욕된 말을 하는가요.”
마리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교수님은 있으시….”
“그만해요. 아모스나 쿠르간 메르시아, 그리고 야콥도 잘 들으시오. 청년들은 얼핏 보아도 30살은 가깝게 보이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가면서 또 로마에서 머물면서나 돌아오는 길에서든지 신붓감을 만나거든 데려오시오.”
마리아는 안토니가 또 자기와 알로펜 총주교를 들먹이려 하자 그의 말을 자르고 네 청년 쪽으로 말길을 돌렸다.

“교수님. 저희가 놀러가는 길이 아닌데 신붓감이나 찾으라시면…, 서운합니다.”
안토니가 마리아의 말꼬리를 잡는다.

“아니오. 가고 오는 길이 쉽지 않아요. 긴장하지 말고 가는 길이나 로마 주교(교황)를 만나고, 또 돌아오는 길 또한 각기 1년씩 이상이 걸릴 터이니 느긋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 선교단 활동도 인생 사는 법을 말하는 것이지 특별한 것은 아니거든….”
“네, 알겠습니다.”
안토니가 수긍하고 들었다.
“저 아모스 교수님께 궁금한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네, 지금 하신 말씀을 다 모르겠습니다. 선교사의 길이 저에게는 특별하고 잠시라도 방심하다가는 자칫 실족할 수 있기에 늘 긴장하고 있거든요.”
“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아직은 젊으니까 긴장하고 또 예수를 따라가는 길이 마치 또 다른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두렵기도 하겠죠. 그러나 그런 긴장감에 휩싸여 있을 경우 자칫 정직한 일상생활을 놓칠 수도 있지요.”

아모스는 물론 쿠르간, 메르시아, 야콥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그때, 쿰바홀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나요? 교수님이 좀 쉬셔야 하는데….”
“아, 그럼. 여러분의 궁금증은 내가 답변할 수 있어요.”
안토니가 마리아 교수의 말을 보충설명해 주기로 했다.

“그래요. 여러분 여기서 아마 며칠 쉬고 떠나게 될 거요. 지금 저 방에 누가 왔나 봐요. 내가 먼저 일어날게요.”
마리아가 일어서자 쿰바홀이 그 뒤를 따랐다. 안토니는 4명의 동행을 이끌고 안내 받은 숙소로 갔다. 두 사람씩 방 하나를 쓰려 했으나 일행들은 더 큰 방이 있으면 함께 있고자 했다. 안토니는 10인실을 선택했다. 10인실은 5인실 두 칸이었다. 하나는 젊은이들에게 주고 하나는 안토니의 침대와 둥그런 회의용 탁자로 배치되었다. 그들 안토니 일행은 각기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쿰보그가 달려왔다.
“주교님, 제가 여기 코초본부를 잠시 안내 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쿰보그입니다.”

“아, 쿰바홀 주교님의 아드님 사제시구나. 또 한 분이 계시죠?”
청년들이 말했다.
“네, 저의 형님 쿰가그 사제가 코초에 저와 함께 있습니다. 저희는 여기가 고향이고 형님은 사마르칸트에 계시다가 장안으로 와서 총주교님 계실 때 한동안 머물기도 했고 요즘은 이곳 코초의 활동을 강화시키는 총 주교님 방침을 따라서 여기서 일합니다.”

그들은 뒷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쿰보그가 가르치는 오른쪽은 삼장법사의 기념탑이 있고 산 아래와 함께 왼쪽의 큰 산비탈이 모두 ‘알로펜의 아시아 선교기지’였다. 전체 30만 평이 더 되는 곳에 현재 2천여 명의 수도단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 중 1천5백 명 정도는 각기 2, 3명씩 짝을 지어 순회선교단 활동을 하고 5백 명 중 절반은 포도원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수도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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