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3

“길에 나선 자, 먼 길을 간다는 사람은 그들이 걷는 길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지.
길이란 목적지를 두고 걷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길이 진짜 길일 때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 타클라마칸, 카슈가르의 알함브라 이슬람 사원에서 여행자의 기록을 노트에 옮기는 필자

 

코초에 와서 이틀을 지나 안토니 일행은 로마행 길에 올랐다. 지난 밤 마리아 교수와 나눈 대화 중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만나서 협조 약속만 받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마가 게르만에게 망한 AD 476년 이후 로마교구는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통치영역을 벗어난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로마교구청이 일방행정은 물론 치안도 담당하고 있으니 제국의 황제도 크게 간섭하지 않을 때였다.

마리아 교수는 안토니 주교에게 로마교구의 오랜 습관을 기억하도록 몇 번씩 다짐했다. 만약 그들 로마교구가 안토니를 만나면 더욱 기세등등해서 ‘너희는 이단자들이야. 한 번 이단자는 영원한 이단자인 줄 모르느냐’고 호통 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콘스탄티노플 황제는 당나라 황제에게 신임 받고 있는 네스토리우스 경교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이단 정죄 파문령’을 거두어들이고 ‘사면령’을 내렸던 과거가 있으며 이미 AD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당시 사막에 은둔하고 있던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에게 직접 해명하면 복권이 가능하다 했을 때 네스토리우스가 ‘이제는 더 이상 인간들의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지하겠다’고 했던 심정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허탄에 도착했을 때 안토니는 아모스에게 말했다.
“아모스여, 마리아 교수님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주교님,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그분은 여장부이시던데요. 가끔씩 그분이 풍기는 위엄은 마치 근접불가의 울타리를 치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지, 당신도 그렇게 보았지. 그분의 신학적인 견해는 아주 뚜렷해요. 그 어른의 삼위일체론을 듣고 있으면 과연 마리아 교수님은 경험, 또는 신비는 물론 철학적 기반까지는 탁월한 어른인 것을 알 수 있어요. 저 어른이 조금만 나이를 덜 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가 볼 때는 앞으로 10년 또는 20년은 우리들을 지도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만 하면 좋지. 나는 내가 로마 방문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계실까를 걱정하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기만 한다면 우리는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지요. 자, 여러분 여기가 허탄입니다. 우리 네스토리우스
선교단 일행이 처음 이곳 서역 땅을 밟았을 때 로마교구 선교단과 충돌했던 곳이기도 하지요.”
“충돌이라니요. 같은 교단 선교사들끼리 왜 충돌합니까?”쿠르간의 말이다.
“그래요. 사람이니까, 우리들의 신앙을 조금 유치하게 표현한다면 짐승수준을 거쳐서 사람, 사람인가 싶어서 안타까워하다가 드디어 천사보다 더 위의 경지인 신의 단계로 가는 거야.”
“와아, 신의 단계라니요. 그럼 우리가 신이 된다는 겁니까?”
“그래요. 그래서 유치한 표현이라고 먼저 말했잖소.”

안토니가 젊은이들과 함께 웃었다.
“아 참, 우리 선교단이 처음 이곳 허탄(우기국)에 왔을 때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요?”
“그럼 그때 주교님도 함께 오셨나요?”
“그래, 그때 나는 어린아이였어요. 열다섯 살이나 되었던가?”

안토니 주교는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허탄에 처음 왔던 때를 셈해보았다. 그는 그때 알로펜의 맹목적 추종자였다.

안토니 일행이 그들 교단의 허탄 교회에 도착했다. 초기 책임자인 스데반이나 앗스기아는 없었다. 안토니는 하루를 쉬었다가 파미르 고원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그는 자신이 적불당이라 이름 하는 불교사원에서 며칠 쉬면서 이 길을 거쳐서 우기국(허탄)으로 향할 때를 떠올려 보았다. 유승 선교사는 그때 적불당 무학스님의 아들로 있다가 총주교님의 제자가 되었었지.

“여보게들, 이 곳은 유승 사제가 우리 일행에 뛰어든 불교 사찰 적불당일세. 유승 선교사는 해 뜨는 나라 신라에서 활동 중이야. 그분이 보고 싶구먼.”
“아, 저희는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걸요.”
“그럴 수도 있지.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나라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럼, 우리 기독교보다 더 크고 훌륭한 종교도 있을까요?”
아모스의 물음이다.

“글쎄,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듣고 보니 대단히 놀라운 질문이네 그려.”
“그래요. 아모스는 저희들과는 생각하는 수준이 달라요. 저 사람은 앞으로 선교사로 크게 쓰임 받을 겁니다.”
쿠르간의 말이다.

“어찌 아모스뿐일까. 쿠르간은 물론 메르시아나 야곱도 훌륭한 인물들이 될 거야.”
“정말입니까? 저 같은 사람도 중요한 일을 해낼까요?”
메르시아가 자기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여러분은 이미 크고도 중요한 임무를 시작했어요. 내 이야기를 해서 민망하지만 나는 다섯 살부터 어머니를 따라서 진리의 스승을 찾아다녔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세상에는 참된 스승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겨우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수준이라네….”
“왜 그러세요. 주교님, 저희가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아모스가 달려와서 안토니의 등허리를 감싼다.
“주교님, 주교님은 저희의 큰 스승님이세요. 그렇지 쿠르간….”
쿠르간이 안토니 주교의 팔을 붙잡는다.
“그럼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교님!”

메르시아와 야곱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 그래, 그래, 정말 고맙구먼. 참, 이 길을 걸어서 당나라 갈 때 우리가 길을 재촉하자 당시 알로펜 우리의 스승님이 뭐라 하신 줄 아는가?”
“뭐라 하셨는데요?”
아모스의 호기심에 찬 눈이 반짝였다.
“길에 나선 자, 먼 길을 간다는 사람은 그들이 걷는 길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지. 길이란 목적지를 두고 걷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길이 진짜 길일 때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야곱이었다.

“옛사람들은 가끔 인생을 길로 표현하기도 했지. 특히 시인들이 말이야.”
아모스였다. 역시 그는 조금 달랐다.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거나 말 한마디를 해도 생각을 곁들여서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자네 같은 시인들이 말하는 것이지?”
쿠르간이였다.
“이 사람,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을 해!”
아모스의 말에 안토니가 나섰다.
“그래, 아모스. 길이란 인생이야. 그래서 인생살이는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지요.”

“그런데 주교님. 요한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내가 길이다’라고 하셨는데 총주교님이 말씀하셨다는 길과 요한복음에 나타난 길은 어떻게 다를까요? 혹시 같은 길을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요?”
“앗, 저 사람!”
안토니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들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안토니가 손가락질로 가리키는 아모스를 동시에 바라본다. 안토니가 아모스의 어깨를 툭툭 친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고 아모스를 덥석 껴안았다.
“이 사람 아모스, 당신이 말했어요.”
“왜 그러세요. 주교님?”

“그래 당신이 한 말이 맞아요. 당시 알로펜 님이 말씀하신 길 이야기는 요한복음 이야기였지. 천국 가는 길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내가 길이다’ 하셨지요. 특히 도마가 극성이었어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간다.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한다(요 14장 참조)고 하셨는데 제자들이 천국 길 모른다고 성급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주님이 내가 길이라 하셨지요. 총주교님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유치한 수준을 가볍게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을 예로 들면서 여행길 불편을 말하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 것이었어요. 알로펜 우리의 스승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셨죠.”

“그래요. 저희들이야 잠깐 먼발치에서 봬온 것뿐이지만 거룩한 사도의 길을 걸으신 어른이셨지요.”
“그래, 맞아요.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마치 칭송받은 것만큼 흐뭇하구먼.”
“안토니 주교님께서도 알로펜 총주교님과 비슷한 모습을 저희는 느끼고 있습니다.”
모두들 합창했다.

“거 무슨 벼락 맞을 소리. 감히 나 따위를 총 주교님과 비교하다니 당신들 정신이 있어!”
안토니가 벼락이 내리듯 호통 쳤다. 젊은이들의 몸이 움츠러든다. 놀란 자라 모가지처럼. 안토니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웃었다.

“미안해. 나와 함께 고생길에 나선 친구들에게 내가 좀 심했네. 그래도 그런 말을 다시는 하지 마세요. 알
로펜과 안토니는 급수가 달라요. 아시겠어요.”
“그건 잘 모르지만 저희가 주교님을 따라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길에 모험을 거는 것은 안토니 주교님이니까 동행하는 거거든요.”

쿠르간이 안토니의 말에 대한 답변을 했다.
“자, 자. 여러분 그건 그렇고. 우리가 지금 길을 말하고 있지요. 이 길은 인생이고 또 참이지. 또는 영원으로 직행 통로가 열려있는 겁니다. 조금 전 쿠르간이 생사를 모르는 길이라고 했지요. 바로 그런 길도 걸을 수 있고 또 동행자가 있으면 축복받은 길이 되는 거야. 그러니 우리는 서둘지 말고, 여행길에 마주치게 될 고통이나 또는 어려움 따위도 괘념치 말자고요.”

“네, 잘 알겠습니다.”
길은 역시 여행자에게는 만만치 않았다. 안토니 일행이 파미르의 도시 판지갠트, 부하라 사막을 경유해 아라랏산 변경을 돌아서 아르메니아까지 오는 동안 여덟 달이 지났다. 다시 보름을 더 걸어서 우르미아에 도착했다.

안토니 일행은 기진맥진이었다. 우르미아는 페르시아와 옛 아르메니아 땅으로 동로마 제국의 황성인 콘스탄티노플을 지척에 두고 있다고 해야 한다.

영토의 구분도 페르시아와 동로마의 완충지대로서 초대교회부터 매우 기독교 성향이 강한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에덴동산이 이곳이라고 주장하기도 해오는 고장이다.
안토니는 에뎃사까지 가서 그곳에서 그들이 가지고 온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까를 구첵적으로 의논하기로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믿고 도움을 받을 인물이 에뎃사에 가야만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들 일행은 무리한 여행을 강행했다. 서른 살 앞뒤의 젊은이들과 팔십 살이 훨씬 넘은 안토니가 동일한 방식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았다. 안토니가 좀 다른 것은 부하라 사막을 건너는 한 달 동안 노새 비슷한 조랑말을 타고 갔던 것뿐이다. 또 다른 점은 도중에 안토니의 기력이 다해서 쉬거나 몸져 누워버려서 허비한 날짜가 한 달쯤 된다는 정도였다.

“이거 말이야. 애당초, 내가 이런 꼴을 보일 것 같아서 다른 방도를 찾고자 했으나 모두가 나를 지목했으니 어찌하겠나. 그래서 이건 내 몫이야. 더 정확하게 이 길은 내 인생길의 마무리 과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네. 다 왔어! 저기가 에뎃사야. 내 그리운 고향이야. 어찌 내 고향인가. 우리 네스토리우스 제자들의 고향이지.”
안토니는 감격해 흐느낀다.
“….”
“곧 친구들이 마중 나올 거야. 아니야. 마중은 무슨…. 여기는 로마제국의 땅이야. 우리 기독교의 땅이라고. 장차 온 세계가 기독교를 환대하고 친구로 맞이할 것이나….”
안토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모스가 그 모습을 발견했다.
“여보게들. 스승님! 주교님!”
아모스가 울부짖는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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