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 주 예수의 은혜를 받은 나는 신구약 성경을 정독하기를 시작하여 구약을 읽고 신약으로 와서 마태, 마가, 누가, 후에 요한복음을 읽어가다가 11장 25절에 이르렀다. 그리고 예수께서 마르다와 말씀하시는 중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묻는 말씀과 만나게 되었다.

이 무슨 말씀인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니. 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본문 안에 강조되어 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살아서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에서는 언제 사느냐에 궁금증을 가질 수 있으나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심으로 더는 망설이거나 궁금해할 여지가 없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육성이다. 어느 누구를 거쳐서가 아니라 마르다에게 그리고 나에게 직접 가르침을 내리신 말씀이었다.

나는 이 말씀을 믿었다. 생각 속에서가 아니라 이 말씀을 내가 성경에서 직접 만난 그 순간부터 믿기로 하였다. 이 성경을 10년 전부터 읽었는데 어찌하여 1960년 11월 18일 밤에야 내 가슴을 뚫고 들어왔을까? 나는 그때, 주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따를 수밖에 없는 절박한 환경에 있었다. 진로다, 내 인생의 갈 길을 찾는 절박한 시간이었다. 그때 요한복음 11장 25절 이하가 주는 기쁨과 확신은 분명코 마르다의 감격보다 내가 더 간절했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바로 그날 이후, 나는 오늘 현재까지 내가 주 예수의 부활생명 참여자임을 믿고 그 영광을 누리는 자의 삶을 포기하거나 어떤 미혹 앞에서 흔들려 본 일이 없다. 주 예수는 다시 죽을 수 없는 내 생명에 대한 다짐과 확신으로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셨다.

1960년 겨울에 ‘들소리’를 작명해 두고, 이 간판을 내걸면 이는 영원으로 직결, 직행하는 것이어야지 중간에 흔들리거나 좌초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붙잡혀 지내다 보니 쉽게 ‘들소리’간판을 걸고 선교단체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려 15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쳐서 1977년에야 깃발을 내걸었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흔들리기도 하고 혹독한 어려움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힘은 다시 죽을 수 없는 생명의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 절망은 없다는 믿음이었다. 이미 건너온 요단강, 내게는 ‘내가 예수와 함께 못 박혔나니’(갈 2:20)의 과정을 통과했었다. 이것이 나의 요단강이요, 죽음을 통과한 예수 동반자가 받은 은총은 부활 생명임의 확신이었다. 주 예수의 부활이 내 생명에서 새창조 활동을 시작했으니, 주 예수와 동행하는 영생의 날을 출발한 내게 죽음 따위는 없다.

죽음이라는 종류가 인간의 고통, 질병, 실패, 좌절 등의 아비인데 이미 그 죽음을 죽어버렸고 다시 죽을 수 없는 예수 생명으로 단장한 내가 무엇을 더 걱정하겠는가. 이미 영원을 향한 천국의 삶은 출발했고 한 번 죽는 죽음의 절차까지 예수 십자가 동반으로 통과절차를 마친 내게 다시 요단강을 건너야 할 필요 또한 없으니 날마다 영원한 노래, 예수께 배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오늘도 ‘들소리’ 이 강줄기를 건너 또 바다행을 준비하고 있다.
은혜의 주여 나의 오늘이신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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