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4

“네. 제 생각에는 갈릴리 예수의 가난 공부를 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아닙니다. 저는 할머니 교수님께 배웠습니다. 제가 코초에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데요.
할머니의 가난은 유별나세요. 제가 장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모시는 생활 때보다
훨씬 더 경건함을 배웠어요. 할머니의 가난은 경건이시고….”

 

 

 

 

   
▲ 중국 난주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는 옛 당나라 여인.

사마르칸트, 강국(強國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도시는 파미르고원에 서서 아랄 해와 카스피 해 중간쯤을 향하여 직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있다.

소그드인 연락망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 도시는 중국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수리아 다마스커스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실크로드 전성기의 중간 기착지였다. 당나라와 로마 무역의 중개자가 되기도 한 분주한 도시, 농업을 기초로 했지만 상업이 발달하여 5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재벌급 소그드인들이 경제권을 쥔 융성한 도시였다.

이 도시에 기독교 신자가 등장하기는 1세기 중반이었다는 전설이 있거니와 알로펜의 제자들이 둥지를 틀고 승승장구하는 도시였다. 알로펜이 당나라 입국 10여 년부터 눈여겨 보아 둔 도시는 앞으로도 1천년은 더 중앙아시아 선교 중심지로 삼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사마르칸트다.

마리아 교수 일행이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자 알로펜의 제자들이 마리아 교수와 쿰바홀 주교를 열렬히 환영했다. 마리아 교수의 손을 꼭 잡고 두리번거리는 다위드는 외할아버지 요한 주교의 아들 빌립에게 덥석 안겼다.
외삼촌이었다.
“네가 내 사랑하는 누이 실비아의 아들이냐?”
“네, 외삼촌! 안녕하셨어요. 저는 마리아 교수님의 제자 된 몸으로 사마르칸트 선교본부 방문차 왔습니다.”

“어허, 외삼촌에게 무슨….”
쿰바홀이 다위드의 당돌함을 나무랐다.
“오냐. 그러니까 사사로이 온 것이 아니라 공적 방문이라는 뜻이로구나.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다위드가 좋구나.”
빌립은 다위드를 더 안아주고 싶었으나 내려가고 싶다하여 그를 놓아주었다.

“마리아 교수님. 이곳에는 얼마나 머무실 작정이세요.”
쿰바홀이 조용히 물었다.
“그야 형편대로 해야죠. 또 내가 할 일이 있으면 더 있다 가겠으나 아니면 코초로 쉬이 돌아가야죠.”
빌립이 나섰다. 마리아 교수를 요한 주교가 사용하시던 별채로 모셨다. 마리아가 사양했으나 요한 주교의 서재도 곁에 있고 번거로움을 피해 드리고 싶어서였다. 다위드는 빌립의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외삼촌, 저는 마리아 교수님 가까이에서 모셔야 합니다. 외할아버지 서재에서 머물면서 교수님께 공부하던 것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제 청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렇지만 교수님이 피곤하실 수 있다. 네가 너무 서둘면 안될 거야.”
빌립이 말했으나 다위드는 말이 없었다. 마리아가 웃으면서 빌립에게 그냥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주교좌 본부에 간 마리아와 쿰바홀은 사마르칸트 선교현황을 청취했다. 사마르칸트는 부하라, 히바, 타쉬갠트, 페르가나 등 직할 조직들이 각기 자유롭게 활동한다. 요한 주교가 하늘로 떠난 후 부주교 야고보가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사마르칸트가 코초의 선교지휘를 하지만 상하관계가 아니다. 충분히 토의하며 장안, 코초, 사마르칸트 중 어느 곳에서도 주인행세를 한다거나 지시 내리는 관계는 아니다. 현재는 당나라 수도인 장안 영부 주교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으나 장차는 사마르칸트 교구가 전체 아시아의 선교본부가 되어야 한다는 계획을 알로펜 총주교가 세워둔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사마르칸트 선교부도 코초와 마찬가지로 1천여 명의 선교사들이 자비량 활동을 하고 있다. 둘이나 셋이 짝을 지어 각 지역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소그드인들과 외형상 다를 바 없는 상인들 행색이다. 그러나 그들은 물건을 팔고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산골이나 들판 등 가릴 것 없이 사람 사는 곳이면 찾아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한다. 가난한 집에는 먹을 것을 준다. 주택환경을 깨끗하게 바꿔주고 큰 마을 중심에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여 책임자를 두고 관리한다. 선교사들은 30명 또는 50명 단위로 책임자를 두고 상부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루 뒤에 부하라 출장에서 돌아온 야고보 주교가 마리아 교수 앞에 앉아서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했다.
“교수님,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걱정을 덜었습니다. 총주교님 떠나신 뒤로는 교수님 걱정 뿐입니다.”
“이 사람 야고보! 내가 주교를 아들처럼 생각하는데 어머니 같은 내게 근심을 주려 하는가? 어서 눈물을 거두시오. 지금은 거룩한 선교지 사마르칸트의 최고 어른인데 그렇게 약해서야….”

마리아가 야고보 주교에게 마치 아들에게 하듯이 다정하게 말했다. 야고보는 마리아가 장안으로 가기 전 이곳에 있을 때 많이 살펴주었던 영부 주교 또래였다.
야고보는 말없이 눈물을 그렁거리면서도 마리아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그럼.”
그제야 야고보가 환하게 웃는다.
“교수님, 어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저는 뒤늦게야 발견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마리아는 야고보가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요한 주교를 두고 하는 말인지를 직감으로 알았다. 알로펜 총주교가 세상을 버린 시기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야고보는 요한의 제자였다. 그의 심정을 알고 있기에 짐짓 모른척하며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요한 주교님이 사마르칸트 지역을 지도하실 때 어느 누구 한 사람 거역하거나 말썽을 피우는 일이 없었거든요.”
“그럼 지금은 어느 누가 야고보 주교의 뜻을 따르지 않는단 말인가요?”
“아, 아닙니다. 그러나 또 말썽없이 조용하다고 다 말을 잘 듣는 것인가요.”
“그건 또 무슨…?”

“아닙니다. 그 분위기가 다름을 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은 조용합니다. 모두들 자기 소임을 잘 감당하고 있지요.”
“그럼 되는 거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때 그들 곁에 다위드가 무릎걸음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서더니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할머니 교수님. 그건 생동감이나 또는 활기있는 생명력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지금은 잘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걱정이신 듯 합니다. 그렇지요? 야고보 주교님.”
“어허, 저런. 이 아이가 실비아의 아들이죠?”

“그래요. 다위드는 제2의 알로펜이 되겠노라고 나를 졸라댑니다. 이 늙은 할머니가 그래서 고민도 많지요.”
“고민은 무슨, 걱정 마세요. 실비아의 모습은 물론 요한 박사님의 순수한 지혜를 겹으로 상속받은 듯 합니다.”

“뭐, 상속이라고?”
“네, 이 아이는 분명 요한 박사는 물론 알로펜 총주교님과 마리아 교수님의 신앙과 순결한 지도를 제대로 상속받는 행운아일 듯 합니다.”
“그리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리.”
마리아가 한 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래요. 우리 교단이 현재 너무 잘 움직이니까 한편으로는 은근히 겁이 납니다. 사단의 저항이 약해진다는 뜻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교수님, 저희 사마르칸트 영내의 선교단들은 온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입니다.”
“고맙지요. 그러나 생명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다위드가 지금 말했죠. 저 아이가 한 말이 아마 천사의 음성인가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까운 시일 안에 각 지역 지도자들을 한 번 소집해 주시죠. 아마 그때 의견들을 나누다 보면 우리의 공동과제가 나타날 것입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교수님께 말씀드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한 가지, 내가 늘 생각 속에 두고 있는 고민이 있어요. 이곳은 물론 코초의 선교조직도 소그드인들의 조직을 활용하잖아요. 그런데 소그드인들은 몽골, 투르크 지역과 페르시아는 물론 인도의 일부 지역, 심지어 로마제국 영토까지도 조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위구르제국의 일원이 되어 있고 또 우리 기독교를 현혹시키고 사단의 술수를 부리는 마니교를 공식적으로 신봉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신생 종교인 이슬람보다 마니교를 더 경계하고 저들 마니교나 이슬람 공부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타종교에 대한 신학과 사상 측면에서는 전임 요한 주교가 말 그대로 박사님이시니까 여러분은 잘 배웠겠으나 이 늙은이의 마음에는 장차 중국이나 서역의 성곽국가들이나 이곳 중앙아시아의 정치세력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들 네스토리우스 제자들이 기독교의 좋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늘 새기고 있어요. 아니면 자칫 위기가 다가올 수 있어요.”

“위기가 뭔가요?”
“글쎄올시다.”
마리아가 말의 간격에 쉼표를 걸어놓는다. 두 사람 사이에 앉아있는 다위드가 눈을 반짝이다가 고개 갸우뚱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어른들 앞에서 한 말씀 올릴까요? 진즉부터 생각해오던 내용입니다마는.”
“그래요. 제2의 알로펜 되시는 분이 말씀해 보시게.”

야고보 주교였다. 그는 다위드의 등을 가볍게 두둘겨 준다.
“네. 제 생각에는 갈릴리 예수의 가난 공부를 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위드의 이 말에 마리아가 자기앞의 탁자를 친다.
“옳거니!”

“네. 그렇습니다. 다위드가 저보다 더 낫습니다. 어디서 이런 총명이 나타났을까요.”
야고보가 좋아라 했다.
“아닙니다. 저는 할머니 교수님께 배웠습니다. 제가 코초에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데요. 할머니의 가난은 유별나세요. 제가 장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모시는 생활 때보다 훨씬 더 경건함을 배웠어요. 할머니의 가난은 경건이시고, 또한….”
다위드가 잠시 말을 멈춘다.

“왜, 또한이 뭐야?”
야고보 주교가 독촉한다.
“네, 또한 말로 할 수 없는 힘이 할머니 주변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았어요.”
여기까지 말을 하던 다위드가 마리아의 품으로 달려간다. 그녀의 치마폭 속으로 숨는다.
“…….”

야고보는 말문을 닫고 허공을 응시한다.
마리아 또한 다위드를 받아주면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이 없다.
“이 아이가 대견하죠. 그래요. 내가 배운 가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난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심령의 가난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자의 가난을 말합니다. 자칫 절약하고 음식을 동냥해서 먹고 어떤 승려들처럼 승려복을 계속해서 기워입고 덕지덕지 누더기를 만들어서 입고 다니면서 자기 가난을 은근히 뽐내는 그런 가난이 아닙니다. 심령의 가난은 예수의 가난이죠. 다위드가 말한 ‘갈릴리 예수’의 가난입니다. 참 저 아이가 갈릴리 예수를 따로 말하고 있으니 저런 모습을 보면 역시 진리는 머리통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가 봐요.”

“네, 그렇습니다. 심령의 가난, 갈릴리 예수의 가난을 좀 더 말씀해 주시죠. 교수님.”
“글쎄요. 이 또한 말로써 배우는 것이 아닐 듯 합니다. 배움이 그렇다면 가르침도 같을 것이죠. 그런데 갈릴리 예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 전에도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그들 중에 여럿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선생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이름으로, 메시아의 이름으로 나타난 예수께서 저들 갈릴리 어부들에게 어느만큼 설득력을 가졌을까요? 아마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고 함께 하늘나라 일을 해 가면서 차츰 예수는 갈리리 사람들에게 보통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발전했겠지요. 그러다가 예루살렘에서 죽게 된 형편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줄 것이 많으나 아직은 너희가 내 말을 깨닫지 못하니 어찌하랴(요 16:12 참조)’ 했으니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깨달음의 시간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부활과 동시 갈릴리로 먼저 가서 제자들을 기다린다 하신 말씀(마 28장, 막 16장, 눅 24장, 요 20장 참조)을 생각하면서 갈릴리 예수를 그리워해야겠지요.”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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