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형은 목사/말씀삶공동체/성락성결교회 담임

잘 지내셨나요? 며칠 전 아침에 문득 진하게 가을을 느끼며 ‘가을날은’ 하는 제목을 붙여 시 하나 써보았습니다.

“가을은 어느 즈음에는 / 유달리 몰래 밤에 깊어지다가 / 아침에 미처 숨지 못하고 들킨다 // 가을은 그리움으로 물어가다가 / 해지며 노을 시작되는 신비로운 시간에 / 그리움도 잊고 영원에 겨워 멈춰선다 // 가을은 소년일 적 어떤 일 떠올라 / 시간을 접으며 삶을 길이로 거닐다가 / 옆에서 손잡아주는 그대를 보고 눈물짓는다 // 가을날은 그렇게, / 가슴에 다가온 하늘의 사랑 끌어안고 / 차마 말하지 못하는 수줍음으로 깊어간다”

가을의 정서를 그날 아침 이만큼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게 어쩌면 사치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요즈음 삶이 사납고 거칠어서 말이지요.

‘꿈새’ 곧 꿈을 이루는 새벽예배라는 말을 붙여서 한 주간 동안 새벽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렸습니다. 새벽 설교에 제가 붙인 제목 중에 세 개가 이렇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제게 이 세 가지 인사말은 고등학교 때 교장이셨던 윤양모 선생님께 들어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이 ‘고안미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선진국이 되려면 이 세 가지 인사가 삶에 배어야 한다고요. 생각해 보면 그때가 70년 대 중반인데, 진지하게 문화와 정신의 선진국 얘기를 하셨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때부터 40년이 흘렀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정신의 자세가 얼마나 훈련됐는지 혼란스럽습니다.

뭐 목사로 살아가고 있고 또 목사이기 전에 그리스도인이니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교회와 연관된 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9월에 장로교단들이 총회를 했습니다. 관심을 끈 의제들 가운데 교단 통합이 있었습니다. 백석과 대신, 고신과 고려가 통합했습니다. 교단 분열이 어떤 논리로도 명분을 찾을 수 없다는 게 생각 있는 사람들 얘기지요. 그래서 거꾸로 교단 통합은 이유를 불문하고 좋다고들 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백석과 대신의 통합을 보면서 씁쓸했습니다. 몸집 불리기가 거의 대놓고 명분이 되는 모양새로 보여서 말입니다. 교단 정치도 일반 정치와 같은 논리로 움직인다는 게 현실인가 봅니다. 더 섭섭했던 것은 이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이었습니다. 교단에 소속된 교계 언론에서야, 말하자면 다른 교단에 연관된 민감한 사안이니까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교계 언론이야 정론직필의 시각에서 보도해야 마땅하지요. 특히 유신 시절에도 언론 보도에서 기독교의 양심을 지켜왔던 교계 언론사가 이 사안을 보도한 첫 꼭지가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교단 통합이 교세 불리기가 목적이라면, 그래서 교계 정치 지형도에서 세 번째 대형교단이 탄생했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그리고 대신에서 통합에 찬성하지 않고 따로 총회를 개최한 다른 의견을 적절하게 보도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언론이겠어요.

우리나라 정치도 그렇지만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참 많이 걱정됩니다. 안보법제를 통과시킨 아베 정권의 문제는 사실 미국이 배후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게 ‘팩트’인데 언론에서 그리 많이 언급되지는 않는군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아주 진지하게 동북아평화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전부터 했습니다. 아주 길게 내다보면서 진지하게 해야겠지요.

세계 전체가 신자유주의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사반세기 정도를 질주해 왔는데 금방 하차하기도 그렇고 눈에 확 들어오는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볼 때 빈익빈 부익부는 옳은 것은 아니지요. 더불어 사는 푸른 행성을 위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스러운 시대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또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 시대를 불쌍히 여기셔서 야만으로 빠져들지 않게 하옵소서!”

가을입니다. 잘 지내셔야지요. 저도 기도하며 가을을 걷겠습니다. 윤동주 시형(詩兄)의 시어처럼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계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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