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믿음으로, 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가는 길에 내가 또 다른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다. 성경 해석상, 요한복음의 경우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예수의 시신 위에 기름을 발라드까 하여 무덤을 찾아 갔었다.

그때 그녀는 무덤 입구가 열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인은 베드로와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찾아가서 사실을 말했다. 그들도 무덤으로 달려왔다. 무덤 안으로 가서 거기에 예수의 시신이 없음을 확인했다. 예수에게 입혔던 수의인 세마포와 머리에 썼던 수건이 각각 따로 개켜 놓여 있었다. 그들은 무덤에 예수가 없는 것까지는 확인했으나 부활하신 예수에 대해서 더는 알지 못하고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야속한 사람들, 평소에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 예수의 빈무덤을 확인하고도 베드로는 갈릴리로 갔다. 다른 갈릴리 출신 제자들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은 채 갈릴리로 갔다.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고 선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와 같이 한 지 3년 만에 고기잡이로 돌아갔다. 사람 낚는 어부노릇은 실패하기로 작정하고 말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산 속에서 새벽 시간 내내 예수를 찾는다. 부활하신 예수 또는 예수 시체 도둑을 함께 마음에 두었을까? 두려움과 슬픔에 우는 여인, 그때 장정 한 사람이 막달라 여인 앞에 나타났다. 예수였다. 이 여인은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 바로 이 여인이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옥합을 깨서 주 예수의 몸, 살아있는 예수의 몸에 향유, 한국식으로 하면 아직 살아있는 예수,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의 몸에 염을 하고 있었다.

가룟 유다 등이 하는 말, 어찌하여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은 돕지 않고 이같은 짓을 하게 하느냐고 예수를 향하여 시비를 할 때 예수는 가만 두라! 이 여인은 내 장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다.
바로 이 여인. 막달라는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예수의 몸에 염(장례절차 진행)을 할 줄 알았고 다른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도 무심코 지나쳐 가버릴 때 공동묘지인 그 산에서 사신(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 바로 이 여인은 인류 역사상 예수 다음으로 두번째 부활을 했다. 이렇게 믿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자도 그 여인과 함께 두번째 부활 당사자임을 자부하면서 다시 죽음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절차이니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그것(갈 2:20)으로 죽음을 처리했고, 구약식으로 하면 여호수아를 따라서 요단강을 건넜다 했으니 신약의 요단강은 십자가임을 믿는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와 함께 죽은 죽음이니 또다시 죽을 필요도 없고 이미 건넌 요단강이면 또 건널 필요도 없을 터, 믿는 자의 길을 가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 하신 예수의 말씀을 나는 지금 믿는다. 영원히 믿는다. 옛적부터 믿었노라. 이 믿음이 아니면 어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으리. 사망을 처리하지 않고 어떻게 죄와 고통과 실패와 죽음 같은 병고로부터 자유하리. 나 그래서 부활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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