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들 통합 이뤄내고 ‘한국교회공의회’조직, 공교회성 구축

20여년 만에 달라진 이유 들여다보니 성도와 목회자들의 진정한 회개,
그와 더불어 철저한 성령의 삶 살다

 

   
▲ 2040년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사회 속에서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청사진을 그려본다.

* 답답한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종교개혁 498주년을 맞는 시간이지만 해법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국교회가 이랬으면’ 하는 청사진을 그려보았다. 미흡한 부분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와 교회들이 제 모습을 갖춰나가려면 최소한 이행돼야 할 부분 중심으로 엮어보았다. 2040년, 한국교회의 모습 이랬으면 좋겠다.


2040년 10월 현재 한국사회는 한국교회가 올해 종교개혁 주간 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교회는 소리없이 조용히 소외되고 힘겨운 이들을 지역별로 찾아 위로하고 그들의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종교개혁주간에도 교회들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진정한 사랑의 마음에 의지하여 지역 곳곳의 아픔을 간직하고 실의에 빠져있고 삶에 허덕이는 이들을 찾아 위로했다.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모습을 펼쳤다.

어떻게 한국교회가 몇 십 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을까.
세인들에게조차 걱정을 끼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한국교회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겪으며 곪아터진 살을 도려냈고, 탐욕에 젖어있던 마음들을 비워내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이 모든 것은 교회 내 구성원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성전)인 것과, 그렇게 모인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해내는 일에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특정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公)교회로서 세워져야 한다는 기도와 열망 가운데 성령의 바람이 임한 것이다.

어떻게 20여 년 만에 이런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는지 살펴본다.

●• 진정한 회개운동이 한반도를 뒤덮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였다.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창자가 아닌 대상자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이 컸다. 각 교단마다, 단체마다 진정성을 갖고 회개의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부흥사들이 그 역할을 다시 한 번 주도했다. 각 교단의 부흥사들은 자신부터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단을 지키며 자신을 다시 세워나가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동시에 신자들을 독려해나갔다. 다행히 성령님이 감읍하셨는지 교회는 날로 새로워져갔고, 교단은 교단대로 그런 부흥사들이 연합으로 성회를 일으키니 심령이 변화되어 회개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집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이런 은혜의 소식과 뉴스를 접하고 골방에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역시 회개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갈망했다. 성령님은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셔서 하나님과 합한 하나의 생명체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다.

각 교회들이 저마다 생명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교회들은 교회들대로 성령의 은총 속에 함께 자리하게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모든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임을, 그 어떤 생명체보다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놀라운 모습으로 변모되었다.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성도(교회)가 서로 교통하는 것’의 신비를 맛보았다.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교회로서 소중한 것임을, 성도라 불리우는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아갔다.

 

한국교회공의회-교회들 숫자 정확히 파악, 교회 인원과 재정 조정, 
선교와 봉사에 중복 지원과 투자 없애 

 

+ 한국교회공의회 탄생, 제 역할 톡톡히
이런 개교회 성도와 목회자들의 변화가 일어나자 교단도 자연스럽게 새로워져야 한다는 열망이 강렬해졌다. 이단도 아닌데, 서로 별도의 살림을 하면서 낭비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교단 통합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장로교단만 해도 200여 개가 된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 장로교단은 통합과 합동 두 교단으로 20년 만에 단일화를 이뤄냈다. 그 사이에 학교와 교단 정치 등 어려운 문제도 많았지만 구성원들이 모두 내려놓으니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장로교단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흐름 속에 성결교단도 하나가 됐고, 기하성 교단 역시도 통합에 성공했다. 신학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흐름 속에서 분열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영적인 거대한 회개의 흐름이 확산된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교단들을 아우르는 ‘한국교회공의회’라는 연합단체를 조직했다. 이 공의회에서는 전국에 흩어진 교회, 목회자, 신자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1~2년 사이 실시한 조사를 통해 나온 숫자를 비교적 정확히 발표했다. 숫자를 부풀릴 이유도 없었다.

1천만 성도와 5만 교회, 30만 명의 교역자라는 숫자가 바로 그것이다.

작은교회와 큰 교회가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강동구에 200여 개의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목회자와 신자들간의 소통을 통해 통폐합이 이루어져 150여 개 교회로 조성됐다. 50개의 교회는 지역별로 분리돼 통폐합된 것이지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 교회의 목회자와 신자는 150개 교회로 재배치됐다.

공의회를 통해 목회자들의 사례비 또한 비슷하게 이뤄지도록 했다. 자녀의 숫자, 지역별 경제상황을 고려해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목회자들의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는 염려하지 않도록 조정했다. 이 문제에서는 각 교단의 합의가 주요했다. 교단들의 최소 운영비 외에는 모두 공의회로 이관되도록 하여 이 문제를 조정할 수가 있었다.

선교와 봉사 문제 또한 이 방법으로 진행하니 중복 관리(운영) 부분의 낭비가 최소 20% 해소됐다.

이단 문제 역시 중구난방이 아니라 공의회에서 전문 신학자 및 목회자로 전담반을 꾸려 잘못된 부분의 연구조사 후 이들을 선도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긋나게 나갔던 목회자들은 전담반의 노력으로 되돌아왔고, 사이비문제는 ‘사이비로 영원히 남기게 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게 됐다.

대사회적 목소리 역시 정치적인 색채를 빼고 생명, 평화, 정의의 관점에서 성경을 토대로 필요할 때마다 내놓아 성도들에게 삶의 지표로 제시함은 물론 사회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기독교를 변호하려 급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기독교가 희생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 신학교 모습, 탈바꿈
교단 및 공의회가 심혈을 기울인 문제는 바로 신학교다. 교단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목회자를 양성한다는 비판, 그리고 제대로 영적인 교육을 시켜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수십년간 있었지만 이를 타개해나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거대한 영적인 흐름과 함께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공의회를 통해 신학생들의 학비는 전액 무료로 지원됐다. 이보다 먼저 학생들을 선발할 때는 인성, 환경, 영성 등 그동안의 삶을 철저히 반영해 뽑았다. 경쟁률이 평균 5:1 정도였다.

신학교에서도 신학적인 흐름을 이해하게 하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내용, 그리고 성령의 감화 감동이 아니고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성직’이란 점을 강조했다. 영성을 강화하여 ‘공부하는 신학생’이 아니라 그것은 기본이고 ‘영성을 갖춘 신학생’으로서 현장에 내보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7년간 탄탄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배려한다.

 

 

교역자들 최소 의식주 책임져서 청빈하고 순명의 길 따르게 지원,
신학생들 모두 철저히 선발하고 장학생으로 키워

 

 

●• 목회자들의 청빈, 순명

신학교에서도 목회자들의 청빈하고도 하나님 앞에서 뜻을 따르고자 하는 순명(順命)의 정신을 가르쳤듯이 그것이 목회 사역의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있다.

아내와 자녀가 있지만, 그들 역시도 ‘동역’하는 자세로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공의회에서 1년에 분기별로 영적인 훈련에 참여하도록 한다.

목회자들은 1년에 한 달 동안은 깊은 영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예 법제화해서 지킬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세속에서 살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살아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고 있다.

목회자들이 의식주 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사역에 충실하다보니 본인은 물론 신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자존감도 회복되었다. 자신의 달란트대로 직업을 갖고 목회하는 이들이 간혹 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택하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것은 큰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파격적인 내려놓음이 큰 역할을 했다.

‘종교가 망해갈수록 교회도, 목회자도, 성도도 화려한 모습’이라는 역사가들의 증언을 귀담아 들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교회 사이즈가 커진다 해도 그것을 장식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붓지 않았다. 목회자들 역시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사례비’가 아니라 ‘최소한의 사례비’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 신자들의 순수한 열망

신자들 또한 목회자 못지않은 영성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다. 목회자들의 청빈과 순명의 길을 함께 따르며 사회 속에서 ‘주님의 몸(생명체)’으로서 정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앞서 깊은 영성을 위해 날마다 말씀과 기도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그것만큼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날마다 힘쓰며 나갈 수 있는 그 물줄기를 놓지 않도록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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