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7

예수님의 노예면 세상의 노예죠. 예수님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노예 같은 자세로 세상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셨는데 예수의 노예라고 입술고백은 하면서 딴소리를 하면 됩니까!

 

 

 

 

   
▲ 난주의 박물관에 자리한 고대 인물.

“우리가 여기 이곳에 모여서 이틀 동안이나 말씨름을 하기도 하고 서로 위로를 나누기도 했으나 오늘도 해가 지고 저녁이 오니까 아쉽고 서글프네요.”

마리아 교수가 석양의 해 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쿰바홀에게 말했다.
“아이고, 교수님! 왜 그러세요. 아쉬운 것이야 나도 느끼는 바지만 슬프다는 말씀은 또 무슨 뜻인가요?”
“그저 내 마음이 그냥 그렇군요. 이걸 나이 탓이라고
하겠죠.”

“아닙니다. 제가 뵙기로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무지가 스승의 마음을 몰라주는 데서 오는 섭섭함도 있으시겠죠.”

마리아가 쿰바홀의 주름진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저 사람이 알로펜을 만난 후 그래도 많이 배웠군. 마리아는 쿰바홀이 제자들 앞에서 자기의 발언을 보태지 못했음을 떠올려 보았다. 마리아가 쓸쓸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스데반이 들어왔다.

“교수님, 도와 주셔야 하겠습니다. 각 지역 선교사들의 의견은 이슬람 신자들 때문에 고충이 있다고 합니다.”
“고충이 있으면 고통해야지. 기독교에게 있어서 이슬람 문제는 탐욕과 무지의 결과이니 두고 두고 고충을 겪어야만 하겠군.”
“무슨 말씀이세요. 제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남의 말 하듯이 하십니까?”
쿰바홀이다. 퉁명스럽게 말을 했으나 그는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희들은 저녁 식사 후 연장교육을 원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그럼, 그렇게 합시다.”
저녁시간 모임이다.

“스데반 선교사님, 부하라의 실라 선교사와 그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지요?”
마리아는 부하라의 실라와 그와 행동을 같이 한 동료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부하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실라 선교사는 마리아 교수님을 마음으로 깊이 존경합니다. 그가 낮 시간에 반발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증거입니다.”

“나도 스데반 선교사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그리고 그가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알로펜 총 주교님을 무척 흠모했던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저녁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동지 여러분도 크게 쓰임 받는 인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릇이란 쓰기 나름이거든요. 초대교회 기록 중에 어떤 문서를 보니까 사도나 속사도들 중에 자기 자신을 예수님의 노예로 자임했던 이들이 있더군요.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노예로 자처했던 사도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네, 교수님. 저희도 주 예수의 노예 되겠습니다.”

갑자기 강당 안이 장정들이 부르짖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그래요. 더도 말고 여러분이나 나도 주님의 노예됨을 명예롭게 알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예이기에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이요 형제인 이슬람 종교와의 이야기를 해 봅시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저는 박트리아에서 온 쌍둥이 형 야고봅니다….”
쌍둥이 형 야고보라는 말에 모두들 와하, 하고 웃는다.
“왜들 그러시오. 나 쌍둥이 형 야고봅니다. 예수님 동생 야고보도 쌍둥이가 있다더군요.”
“아니오. 열 두 제가 중 도마가 쌍둥이지.”

여럿이 하는 말에 쌍둥이 야고보는 이 사람들이 말이 많네 그려, 하더니 주먹으로 강단을 후려친다. 꽝! 하는 소리에 모두들 깜짝 놀란다.
“여러분, 시간은 금덩이야. 금덩이! 금덩이 같은 시간을 아껴야지. 왜들 모두 그래요.”
쌍둥이 야고보는 정색 하고 말을 이었다.

“저, 교수님. 저의 활동지 박트리아는 페르시아 땅인지 인도 땅인지 당나라 땅인지 모를 만큼입니다. 종교적인 혼합성이 강합니다. 얼마 전에 이슬람 종교가 뛰어들었는데 그들은 잘 어울리려 하지 않더군요. 종종 저희들과 만나면 기독교가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울상을 짓기도 하고 도와 달라고 하소연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네, 밉거나 하지는 않으나 특별히 도와 줄 일도 없으니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지요 뭐.”
“아니오.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진심이 거기에 함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아까 뭐라고 했지요. 그리스도 예수의 노예요.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노예로 정직하게 스스로를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망설입니까? 너는 나보다 더 낫다, 너의 종교도 나의 종교보다 더 낫다고 해도 됩니다.”

“교수님,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가끔씩 자기들 종교는 마지막 예언자의 종교이니 기독교보다 큰 종교라고 하는데 어찌하려고 그같이 말하라 하십니까?”
“낫거나 크다 했지, 그렇다고 종교를 바꾸라 했나요? 모든 종교들이 기독교보다 더 크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란 마치 부모와 같아요. 이 세상에는 임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임금이 되고, 양반의 자식은 양반이 되고, 김씨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김씨가 되듯이 종교는 바꿀 수 없으나 더 낫다느니 크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종교 자랑에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은 예수처럼 세상에 빛으로 자기 모습을 장식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나는 예수의 노예다 하고 크게 선언하고 노예의 자세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잘 모셔야 하오.”

“교수님, 예수님의 노예라 했지 누가 세상의 노예라 했나요.”
스데반이었다.
“스데반, 왜 그리 둔하오! 예수님의 노예면 세상의 노예죠. 예수님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노예 같은 자세로 세상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셨는데 예수의 노예라고 입술고백은 하면서 딴소리를 하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동안에는 저희가 조금씩 둔해서 잘못 살아온 것입니다.”
“주여, 저희는 조금씩이 아니라 엉터리요 바보처럼 세상을 살았습니다. 용서하소서. 내 주 예수여! 그리고 마리아 교수님! 용서해 주세요. 저는 어제 오늘 교수님의 말씀을 듣는 척만 했지 부하라의 실라처럼 도발할 수 있는 용기는 없었습니다. 이제야 제 귀에 말씀이 들려옵니다.”

카작 지역의 유다 선교사가 울부짖는다. 선교사들은 대다수 자기 가슴을 두드리면서 신음하듯이 고통스러워했다.
“너무들 자학하지 마시오. 우리는 지금 이슬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중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유럽은 지금 이슬람 혁명이 진행되고 있어요. 당나라나 이곳 사마르칸트는 물론 서역 지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어요. 우리들 중 돌궐족 출신이 대다수지요. 여러분 동족인 돌궐인들이 가장 많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어요. 물론 우리 기독교에 입문하는 수도 적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곳 아시아 동북방 출신들은 개종하면서 지중해 쪽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우리 기독교가 당나라에 선교하러 갔던 그 해부터 아라비아를 벗어나서 지중해 동편의 이스라엘, 페니키아, 수리아, 흑해나 카스피 해에 가로막혀 있으나 광활한 땅 아나톨리아, 그리고 페르시아와 인도 땅까지 이슬람은 거대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어요. 우리 기독교가 먼저 선교했던 곳이죠. 특히 페르시아는 우리 네스토리우스 교단이 대세를 이루었고,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양의 기독교 지역보다 크고 신자들도 많았는데 갑자기 이슬람이 저 옛날 아브라함, 요셉, 모세가 활동하던 이집트 땅까지 포함해서 아시아 땅 거의 모두에서대세를 이루고 있어요. 제가 이곳 사마르칸트에 온 것은 여러분에게 당부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여러분은 소그드식 전략으로 산간이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다니면서 자비량으로 선교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당나라 대륙, 북방 몽골 지역만 우리들이 이슬람과 친분을 가지고 지내고 있을 뿐 아시아 대륙이 이슬람에게는 매우 익숙한 곳입니다. 이슬람이 역사 위에 등장하기는 요 근래 일이지만 페르시아나 인도의 남단 바닷길을 통해서 인도, 중국 땅에 아랍 상인의 이름으로 진출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이슬람도 아랍 상인의 친화력 있는 접근법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새로운 종교요 조심스런 친구들입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이슬람이 콩알만큼 작아 보였다면 말씀을 듣고 보니 그들의 모습이 태산만큼이나 커 보입니다.”
스데반이었다.

“그렇소. 정직한 고백을 해 줘서 고맙소. 잘 보신 겁니다. 이슬람은 결코 지금 서양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세력이 아닙니다. 이슬람 종교가 기독교와 어떤 형식으로 만나게 될까요? 여러분의 미래를 보는 통찰력은 어떻습니까?”

“저의 생각은 교수님이 이슬람을 너무 과장되게 대접하신 것은 아닐까 합니다만….”
석국에서 활동하는 시몬 선교사였다.

“아니요. 그럼 내가 하나 더 말씀 드리죠. 이슬람은 로마제국과 기독교가 버린 땅에서 자라난 종교입니다. 저들이 태어난 아라비아, 팔레스타인, 페니키아, 수리아, 아나톨리아, 페르시아가 모두 로마제국이 버린 땅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시몬은 눈이 동그레져 가지고 마리아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슬람이 태어난 곳은 아라비아입니다. 아라비아는 유대교나 기독교가 버린 땅, 저주 받은 이스마엘과 에서족의 터전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사마리아와 함께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저주의 떡을 먹고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들은 로마제국이 버린 땅 서아시아의 심장부에서 힘을 길러 전체 아시아를 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이 아시아입니다. 활동하셨던 갈릴리와 페니키아 수리아 접경지까지 모두 아시아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아시아의 경계로 페르시아와 앗수리아 접경인 유프라데스 강 언덕인 ‘엣뎃사’를 남북으로 선을 그어서 그 동편을 아시아로 인정하였으니 로마에게 빼앗긴 서아시아와 함께 지금 중앙아시아인 사마르칸트에서 우리들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로마의 기독교에게 쫓겨난 네스토리우스가 생각이 깊어서 아시아 선교를 선언하고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당나라는 물론 몽골과 해 뜨는 모든 나라를 찾아서 동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서쪽에서 동쪽 끝쪽으로 와서 아시아를 이슬람에게 다는 줄 수 없다는 자세로 선교를 하고 있으니 세계 기독교의 안목으로 볼 때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을 날이 곧 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자세히 듣고 보니 교수님은 아주 일찍부터 이슬람을 겨냥한 선교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하고 계시는군요.”
“그 말도 맞아요. 내 친구 알로펜 총 주교가 무함마드와 동갑내기로 다메섹 그의 외할아버지 집에서 신앙토론을 했고 무함마드의 인간적 야심까지 파악했으며, 무함마드가 종교를 만들기 전에 알로펜 총 주교는 이곳 사마르칸트, 서역, 당나라에서 진을 치고 선교를 했지요.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서역의 코초와 사마르칸트를 반드시 지켜서 장차 아시아 기독교의 본토를 만들어 달라고 내게 유언을 남겼어요. 그래서 내가 그와 같이 죽지 않고 남아서 이렇게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지요.”
“아, 알겠어요. 이 곳 사마르칸트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나를 아끼고 가르쳐 주시는 마리아 교수 할머니가 왜 내게 저 하늘 만큼 소중한지를 저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다위드였다. 열 살 짜리가 당돌하고 야무지다. 다위드를 바라보는 선교사들의 눈이 선망으로 가득 차 있다. 마리아가 다위드를 얼싸 안는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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