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8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고 삶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믿고 그 다음에 행동한다고 알고 있거나 배우고 나서 그것을 자기 생활로 옮긴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 늦습니다.
믿음이란 그것이 곧 행동입니다. ”

 

   
▲ 중국 투루판에서 만난 아이들. 이 아이들은 알로펜의 후예일까, 아닐까.

 

 

 

 

<기독교의 한계>

마리아 교수는 한 주간을 더 사마르칸트에 체류한 후 쿰바홀과 다위드만을 대동하고 코초 귀환을 결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생전에 알로펜이 그리워했던 쿠처를 방문하고 싶었다. 그들 일행을 태운 마차가 이식쿨 호수 가까이에 멈췄다.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고 싶었다.
“쿰 주교님 이곳에 우리 신도들이 많이 살고 있지요?”

“그럼요.”
쿰바홀은 마리아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일단은 머물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쿰바홀은 카라반 사라이로
찾아갔다. 그곳은 대상들의 숙소이다.

이식쿨에서 가장 큰 카라반 사라이다. 낙타 3백 마리를 단위로 하는 카라반 집단을 서넛 이상 동시에 머물게 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웬만한 마을 하나를 이룰 만큼의 시설이었다.
마리아 일행은 객방 하나를 얻어서 쉬고 있었다. 쿰바홀은 그 사이에도 몇 번씩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곤 하였다.

“교수님, 우리 선교단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미처 파악을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뭘요! 괜찮아요. 그보다도 이식쿨 지역 선교활동이 활발하다니 기뻐요.”
“이 모두가 총주교님의 선견지명이 드디어 열매를 맺는 것이죠. 뭐.”

“그렇긴 해요. 그러나 지금쯤은 우리들의 신앙의 수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마르칸트에서도 들었죠. 이슬람 종파가 머지않아서 우리 아시아 기독교를 추월할지가 궁금해요. 그들은 매우 전투적인 신앙 자세를 가졌어요. 이슬람 사람들의 신앙자세를 보면 어떤 부분은 저것은 바로 우리들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가 저래야 하는데 우리의 성격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이슬람 사람들에게서는 잘 드러나 있거든요.”

“교수님, 잘못 들으면 교수님이 이슬람을 찬양하고 그들을 기독교보다 더 우수한 종교로 평가한다고 하겠네요.”

“그래요. 다른 사람 핑계 대지 말고 쿰 주교님의 생각이 그렇다고 하세요. 저는 이슬람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서역, 그리고 당나라에서 지켜본 불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기독교, 그 중에서 기독교의 핍박을 받는다고 하는 우리들 네스토리우스파들도 이런식으로 살다가는 앞날이 밝을 수 없습니다.”
“…?”

쿰바홀은 마리아의 말을 듣자 가슴 속에서 덜컹 소리가 났다. 서슬 퍼런 그의 말에 뭐라고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쿰 주교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주변의 종교들 모습을 보시잖아요. 당나라 국교나 다름없는 도교는 그렇다 치고, 불교 모습을 잘 살펴 보세요. 저는 당나라의 선불교를 유심히 봅니다. 보리달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일 있으시죠. 알로펜 그 어른도 평소에 달마의 사상과 그 제자들의 삶을 무척 조심스러워하셨지요. 아직은 달마 종교의 실체라고 할까 밑 뿌리를 잘 모르니 발설하기가 어렵다 하시며 내게 당부하셨어요. 우리 눈앞에 보이는 타 종교들과 자기를 냉정하게 비교해 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러셨군요. 그래서 금번 사마르칸트 여행 중에도 그토록 엄하게 제자들을 가르치셨군요.”

“네, 그러나 쿰 주교께서도 보셨지만 우리들은 아직 멀었소. 벌써 생각이 굳어 있어요. 이제부터는 신자의 숫자가 아니라 신자의 성격을 먼저 바꿔야 합니다. 예수의 모습을 닮은 신자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다. 그릇 굽는 도공들의 모습을 보세요. 그릇 하나 쓸만한 것을 만들자고 얼마나 공을 들이고 또 잘못 구워진 그릇은 더 볼 것 없이 내던져서 깨뜨려버리잖던가요. 쿰주교님도 그런 것 보셨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노여움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인기척이 났다. 쿰바홀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청년 둘이 쿰 주교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교수님,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찾아뵈어야 하거늘 지척에서 뵙네요. 저희들 절 받으세요.”

그들은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은 산도스와 산다스로 형제간입니다.”
“오, 그래요. 산도스 형제! 반가워요. 주님이 기뻐하시겠어요.”
“아, 네….”

“교수님, 숙소를 옮기시는 것이 어떨지요?”
쿰바홀의 말이다.

“네, 저희들 공동체가 거주하는 곳이 있어요.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산도스가 말했다.

“그러시다면…, 좋은대로 합시다.”
마리아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산도스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산도스는 마리아 교수를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여기가 저희들의 회당입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큰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큰 목표라니요?”

마리아가 물었다.
“저희는 무슬림과 친하게 지냅니다. 종교가 다르다지만 저희는 크게 충돌하지 않고 지내고 있으며, 또 우리들의 스승이신 알로펜 총주교님의 가르침대로 종교간의 충돌은 큰 죄악이라 하신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리아 교수가 반색을 한다.
“그래요. 젊은이들이 어떻게 총주교님의 말씀을 그렇게 잘 배웠나요?”
“네, 저는 사마르칸트 요한 주교에게 어려서부터 복음을 배웠습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에 집을 나섰으나 요한 감독님은 늘 알로펜 총주교님 말씀과 마리아 교수님을 말씀하셨어요. 그분들처럼 복음을 온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오늘 마리아 교수님을 뵙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모르겠습니다.”

산도스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글거리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참으로 귀한 교훈을 받았네 그려.”

쿰바홀도 산도스와 산다스 형제를 향하여 덕담을 했다.
“교수님, 오늘은 어서 쉬시고요. 내일 저희와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하시죠. 저도 교수님께 보고 드릴 말씀도 있구먼요.”

“그래요. 모두들 잘 자요.”
다위드는 계속 말이 없었다. 다른 때와 달랐다.
“다위드는 왜 말이 없지?”
쿰바홀이 다위드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네, 저는 오늘 들은 말씀 중에 종교간의 충돌은 불가한 일이라 하셨다는 총 주교님의 말씀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 본 말씀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 말씀이 참 좋습니다. 종교와 종교들의 충돌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님을 저도 이 시간 명심하고 있습니다.”

“야, 대단한 아이네요. 교수님 이 아이가 누군가요?”
“네, 제가 사마르칸트 요한 감독님의 외손자인 다위드로 오늘은 마리아 교수의 애제자입니다.”
다위드의 말에 산도스와 산다스는 물론 모두가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똑똑한 아이다.
“아하, 내가 몰랐구나. 자네가 그럼 실비아 자매님의 아들이겠네?”

산도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마리아 교수의 애제자로 불러주세요.”
“네, 마리아 교수의 애제자님. 명심하겠습니다.”
쿰바홀이 다위드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산도스가 방문했다. 다위드와 마리아는 보다 일찍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뒤였다.
“교수님, 아침 식사 후 저의 이식쿨 동지들을 위해 말씀을 가르쳐 주세요. 저희가 이곳에서 좋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또한 복음의 모범을 보이도록 말입니다.”

아침 식사 후 곧 바로 산도스의 형제들이 강단에 모여들었다. 강의실이래야 크지 않은 마루방이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 예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도리의 일부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고 삶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믿고 그 다음에 행동한다고 알고 있거나 배우고 나서 그것을 자기 생활로 옮긴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 늦습니다. 믿음이란 그것이 곧 행동입니다. 그 행동은 그것 그대로 사람 사는 모습들입니다. 그러므로 배운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산도스와 산다스 형제와 함께 복음의 핵심을 배워서 알고 있으며 그 배움이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저희들도 금번에 저희 선교지를 방문하신 마리아 교수님과 쿰바홀 주교님을 결코 쉽게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저희에게 큰 가르침을 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여기서 카라반 대열을 보면서 동과 서의 나라들이 서로의 필요를 나누고 있구나 하는 걸 봅니다. 보세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크고 작은 대상행렬이 지나갑니다. 어떤 행렬에는 낙타가 무려 5백 마리 정도가 짐을 싣고 가고 그것을 지키면서 동행하는 사람들이 수백 명임을 보게 됩니다. 이곳 이식쿨 호수를 통과하여 북동쪽으로 가면 당나라가 나옵니다. 요즘은 뜸하다지만 이곳은 키르키스 민족과 투르크 민족들이 서로들 다투어가면서 정착지 욕심을 내려 한다더군요. 저희들은 저들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희는 이슬람 사람들과 장사도 같이 하고 함께 생활을 하는데 각기 예배형식은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합니다. 또 저희는 어떤 경우에도 이슬람 사람들과 다투지 않겠습니다.”

“산도스 형제, 하나 물어 봅시다. 이슬람이 산도스 형제의 재물을 달라 하고 사업처를 내놓으라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다?”
쿰바홀이 물었다.

“네, 달라면 다 주겠습니다. 성경에 있잖아요. 달라는 자에게 주라 하시잖아요. 겉옷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고 말입니다.”
산다스의 말이다.

“그럼, 너의 종교를 버리고 이슬람을 받아들이라면 어찌 하려나?”
다시 쿰바홀이 누구에겐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건 제가 말씀 드리죠. 저는 산도스 형님에게 배우고 있는 삭개오입니다. 저는 기독교를 믿지만 당신의 이슬람 종교를 기독교 만큼, 어떤 때는 그 이상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겠노라 하겠습니다. 사실 종교까지 바꿀 수도 있으나 종교는 나를 낳아 준 부모와 같은데 부모를 바꾸는 자식은 되지 않겠으나 이웃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모시듯이 내 친구인 무슬림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의 종교까지 사랑한다 하면서 이를 정직하게 실천하겠습니다.”

“야, 대단합니다. 삭개오 형제. 그런데 그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습니까?”
마리아 교수가 기분 좋은 모습으로 웃으면서 묻는다.
“제가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쿰바홀이 이어서 물었다.
“네, 삭개오는 성경에 있는 대로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부자이고 세리장이니 직장의 주요 간부일 것입니다. 저는 돈을 많이 벌어서 이식쿨 호수 지역을 훌륭한 선교기지로 만드는 데 앞장 서려고 합니다. 삭개오는 무엇보다 예수님 사랑을 받는 대표인물이니까 좋지요. 그리고 보세요. 저도 삭개오 만큼 키도 작으니 내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봅니다.”

“역시 삭개요야.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던 그 삭개오 못지 않은 인물이 되어 주시오.”
쿰바홀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마리아 일행은 사흘을 더 지체하고 이식쿨 산도스의 선교기지를 떠나서 코초 쪽으로 길을 잡았으나 도중에 마리아 교수가 쿠처에 한 번 들르자 했다.

쿰바홀이 연세를 생각하시라고 극구 만류했으나 마리아 교수는 한사코 쿠처행을 고집했다. 키질 석굴에 들려서 구마라습의 포교방법과 그가 남긴 교훈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