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9

“나는 지금 마치 환생하신 구마라습 나의 스승님을 뵙고 있는 기분이구려. 나이가 어리다고 쉽게
대했더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큰 그릇의 자질이 분명하구먼. 나야말로 다위드 님을 만나서 새로운
용기를 가졌어요. ”

 

   
▲ 중국 우루무치 지역의 한 동네에서 아낙네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이 나이에 건강을 생각할 수 있으니 나는 참 복 많이 받은 여인이구나. 마리아 교수는 혼자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쿰바홀의 재촉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마실 가는 홀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따라붙으며 칭얼거리는 외동아들 같기도 했다.

쿰바홀이 아들이라…. 그래 알로펜을 낭군으로 일찍 눌러 앉혔으면 쿰바홀 같은 든든한 아들이 있을 수 있었겠지….
“인제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하시기에요!”
쿰바홀이 언사를 높였다.
“으-응, 뭐라 하셨어요?”

“내 참, 교수님 그러시기예요. 내가 얼마나 애태우고 있는지나 아세요. 총주교님 졸지에 잃어버린 후 내 마음의 하늘같은 어른은 교수님 뿐이잖아요.”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마리아 교수는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쿰 주교! 왜, 어디 아파요?”
마리아 교수는 가벼운 농담처럼 쿰 주교의 얼굴을 살피면서 빙긋이 웃었다.
“아이, 농담하지 마세요, 남 속타는 줄 모르시고….”

“허어, 저런. 속이 타다니…, 내게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던 참인가요?”
마리아 교수가 농담을 던졌다. 오늘 따라 쿰 주교에게 장난이라도 걸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알로펜과 그녀를 향해 부모를 섬기고 모시듯이 진심어린 관심은 물론 또 신앙심은 어찌나 솔직담백한지 그의 행동은 언제나 든든했다.

“왜, 그러세요. 무슨 그런 농담까지 다 하시고, 네 참.”
쿰바홀은 마리아 교수에게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또 그는 혹시 자기 행동 어느 구석에 무례함이 있었던가를 떠올려 보였다.

농담이라니, 언제나 빈틈이 없었던 마리아 교수가 농담을 다 하시니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일이었다.

“쿰 주교, 내가 얼마나 더 살겠소. 평소에 알로펜 총주교가 많이 관심을 가졌던 곳이 쿠처의 키리지 석굴입니다. 그곳에는 자기가 넘지 못할 태산이 있다시면서 안타까워 하셨죠. 그래, 그래서 이 참에 한 번 둘러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쿰 주교가 우리를 만난 이후 마치 아들이 부모 섬기듯이 해 온 날들을 내가 왜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제 이 늙은이를 내버려 두어도 됩니다. 내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요.”

“무슨 불길한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자꾸 그러시면 저를 이 불효한 자식이요 망령된 제자로 남으라는 것입니까?”
“아니오, 아니야. 쿰 주교처럼 충성스러운 사람이 어디에 있으리. 내 평생에 다시 볼 수 없는 충신이요효잡니다. 주님은 기뻐하시고 알로펜도 늘 나와 쿰 주교 이야기할 때면 나와 같은 의견이었어요. 우리의 인연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죠. 지금까지로도 만족해요. 우리 서로 그러니 안타까워 하지 말고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쿠처 동행부터 합시다. 조금 힘들지만 이는 알로펜 총주교도 기뻐하실 것이 틀림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쿰바홀은 쿠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쿠처 왕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제자들을 만났다.
“쿰바홀 주교님, 마리아 할머니 모시고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할머니 교수님, 저희들은 교수님을 너무너무나 사모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고마워요.”

마리아 교수는 쿠처의 제자들과 만나는 기회는 키질 사원 다녀온 후로 미루기로 했다. 곧 바로 다시 여행길에 오르려 했다.
“할머니 왜 서두르세요?”

다위드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글쎄다. 내가 마음이 바쁘구나. 나는 지금 구마라 습 도인을 만나보는 일이 급하다. 이제 너희들에게 줄 말은 다 끝났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쿠처의 전도사들이 들으면 서운하겠네요.”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진리를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서운하다느니 괴롭다는 표현은 옳지 않느니라. 그리고 쿠처 방문은 목적지가 구마라습 도인의 도장인 키질 사원에서 만남이 있으면 되느니라. 어서 길을 잡으라.”

다위드는 쿰바홀 주교가 쉬고 있는 방으로 가서 마리아의 뜻을 전했다.
마리아는 쿠처 왕궁에서 키질 석굴까지 한 주간을 걸려서 도착했다. 높지 않은 산세가 검독수리가 두 날개를 크게 펴서 새끼들을 감싸는 것도 같고 길다란 병풍으로 둘러친 듯한 야산을 배경으로 넓다란 분지를 이루고 있었다.

사원 경내에 들어선 마리아는 마차에서 내려 두 손으로 이마 위를 가려 내리쬐는 직사열을 피하려들었다. 쿰바홀은 혹시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가 싶어서 긴장을 하였으나 이내 긴장을 풀었다.
“참으로 도도한 흐름이 느껴지는구나. 3, 4백 년 쯤 전에 여기에 도장을 일구었다 들었는데 아늑하고 차분하구나.”

마리아 일행이 멈춰 서 있는 곳으로 승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 교수에게 시선을 맞추면서 걷는다. 마리아는 회색빛 긴 장삼을 걸치고 통바지를 입었다. 하얀 머리칼과 얼굴의 단정한 모습에서 1백살이 지난 할머니일까 싶을 만큼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승려가 가까이 오자 쿰바홀이 한걸음 앞서 나서서 인사를 드렸다.

“저희는 장안에서 왔습니다. 구마라습 성인의 도장에 들러서 배움을 얻자고 왔습니다. 저희는 네스토리우스 교단으로 기독교 사람들입니다.”
승려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허, 귀하신 어른들이 오셨군요.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에 머물고 있는 수도승 지눌타라고 합니다.”
“저는 마리아입니다. 오래 전부터 한 번 찾아오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찾아뵙습니 다. 저희에게 한 동안 머물 수 있는 석굴이 한 칸 있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말고요. 오히려 모실 수 있다면 저희에게는 영광이죠.”
“지눌타 보살이시여! 어찌 이교도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영광이라니요. 저희는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는데요. 송구합니다. 저는 여기 계시는 할머니 교수님의 제자 다위드 입니다.”
“어허, 무슨 말씀. 이교도라니요. 하늘아래 도(道)는 하나죠. 각기 표현을 달리하는 것일 뿐 저는 다위드 님에게 배움을 얻고 싶어지는데요…. 총명하군요.”

“그러시다니 저희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군요. 저는 지눌타 보살님의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다.”
쿰 주교가 나섰다.

“지눌타 도인이시어! 우리 마리아 교수님은 1백살을 넘기신 상노인입니다. 수천 리 여행길인데 먼저 쉬실 곳을 좀 부탁드립니다.”
“네네!.”
“아니오. 나 지금 기쁨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나 아직 이 정도의 여행을 할 수 있답니다.”
지눌타는 마리아 교수에게 머물던 방을 비워 주었다. 방이 세 칸이나 되고 큰 방 옆에는 접견실이 별도로 마련된 별채였다.

“별채 머무시면서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신다면 더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보살님! 제가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저를 박대하지 말아주세요.”
다위드가 면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요. 기다리겠어요.”
지눌타가 떠난 후 곧바로 젊은 승려 둘이 차와 과일을 가지고 찾아왔다.
마리아는 키질 석굴에 온 후 특별히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으나 그는 키질 도장에 머무는 승려들과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석굴들 주변을 거닐기도 하고 어떤 날은 산등성이에 올라 산 아래 펼쳐진 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혼자서 빈 동굴이 있으면 찾아가서 한나절이 넘도록 엎드려 기도하기도 하면서 쿰바홀 주교나 다위드와도 한사코 말을 삼가면서 지내고 있었다.

“다위드, 할머니와 이곳에 머물기가 좀 지루하지 않으냐?”
“아닙니다. 주교님. 저 또한 기도하면서 그 동안 배운 가르침을 정리하고 되새겨 보는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쿰 주교님도 그러시죠?”

“그럼, 그럼.”
그러고도 한 주간을 더 머무른 마리아 교수를 지눌타가 찾아왔다. 마리아는 반가이 그를 맞이했다.
“내 그렇지 않아도 내일 쯤 집을 비워드릴 작정입니다. 그간 편히 머물면서 많이 배우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간 머무시면서 저희 불제자들의 게으름도 보셨을 것이고 투쟁적이지 못하는 나약함도 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요. 무심한 듯 세상사에 쫓기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참, 우리 다위드는 이 할미가 먼저 떠날 터이니 이곳에 남아서 좀 더 배우다가 오지 않으려나.”

마리아가 다위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수님이 지시하시면 따르겠습니다.”
다위드가 쉽게 대답했다.

“그래요. 이곳에 남아서 구마라습은 불교가 무엇인지를 좀 더 배우다가 가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저 같은 철부지를 필요로 하신다니 제 마음이 우쭐해집니다. 그러나 저는 마리아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은 중이라 좀 망설여지는군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요.”
다위드가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려나 싶어서 쿰바홀은 조마조마 했다.

“그게 무엇인가?”
지눌타가 장난스럽게 표정을 지으며 다위드를 주목했다.
“저, 구마라습 도인을 장안으로 모시고 가면 어떨까요?”

“어헛, 이런 맹랑한 청년이라니….
“ 보통은 아닐세 그려.”
지눌타는 물론 마리아나 쿰바홀이 모두 함께 웃었다.
“그래 모시고 가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가?”

“송구스러운데 5호 10국 시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동진왕이 구마라습 도인을 모시는 중에 파계를 하시도록 음모를 꾸몄다는 전설이 있던데 지눌타 고승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런, 이런. 어린애가 아니라니까….”

지눌타는 얼굴에 잠시 언짢은 빛이 감돌았다.
“다위드, 뭐 그런 것을 다 묻고 있어?”

쿰바홀 또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아는 말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랜 옛날 이야기이니까 그때 사정을 잘 모르지만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큰 제국이 무너지고 작은 나라들이 경쟁하는 중에 구마라습 같은 큰 스님을 독점으로 모시려는 경쟁자들이 무슨 일인들 꾸미지 못하겠어요. 그 사건은 그만큼 구마라습이라는 어르신을 필요로 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인물이 부럽고 저도 사실 금번 마리아 할머니를 모시고 이곳 도장을 찾아온 것은 구마라습 같은 큰 어른의 자취가 어디엔가 남아 있다고 보았기에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혹시 제가 예의에 벗어난 언행을 하고 있거든 너그러히 용서해 주세요.”

“그렇구먼, 나는 지금 마치 환생하신 구마라습 나의 스승님을 뵙고 있는 기분이구려. 나이가 어리다고 쉽게 대했더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큰 그릇의 자질이 분명하구먼. 나야말로 다위드 님을 만나서 새로운 용기를 가졌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도 동진 왕이 억지로 함정을 팠던 옛 이야기를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 구마라습 스님은 천축국 고대어로 기록된 불경들을 많이 번역하셨고 그 어른의 번역은 후대의 현장법사 같은이도 두려워할 만큼 정확했어요. 아마 지금 당나라에서 활동하는 보리 달마의 제자들도 구마라습의 불도(佛道)를 많이 배우고 있을 것이에요. 또 대승불교의 큰 스승으로 모시는 많은 구도자들의 스승이 되기도 하신 분이 구마라습 스님이시지요.”

지눌타는 정성스럽게 말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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