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0

“마리아는 쿠처 선교부를 비껴서 코초를 향해서 길을 서둘렀다.
가는 길에 행군하는 군부대와 마주쳤다. 마차가 출렁거린다. 쿰바홀이 마차에서 뛰어 내렸다.
당나라 군이다. 쿠처에는 당나라의 ‘안서도호부’가 있다. 서북 변방을 지키는 군대인데
십만 병사라는 내용은 알고 있었다. 쿰바홀이 말머리를 길 가로 돌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

 

 

 

   
▲ 중국 투루판의 어느 교회 앞. 십자가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었다(2010년).


“저 다위드는 당돌하다는 평은 감내하겠는데 경솔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구마라습 고승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우리의 알로펜 총 주교님이 여기 계시는 마리아 교수님과 대화하시는 것을 어깨 너머로 잠시 들은 것이 제 실력의 전부랍니다.”

“그래요. 그때 두 분 어른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지눌타는 미소를 머금은 채 다위드의 총명을 확인해 보려는 것 같았다.
“그때 두 분은 우리 교단 선교사들의 하나님 말씀 탐구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해서 장차 중국인의 터전인 당나라에 기독교를 뿌리 내릴 수 있을까를 걱정하셨어요. 두 분의 근심어린 대화에 제가 끼어들 수는 없었으나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요.”

“그-으래요? 그럼, 하고 싶은 말씀을 여쭈어 보았었나요?”
“아니요. 용기를 내지 못했었지요.”
“그래, 참 아쉽네요. 그럼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이면…, 지눌타 스님께 여쭙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래요. 그럼 말해 봐요.”
“저는 금번 쿠처국에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키질 석굴을 방문하여 며칠 묵으면서 깊이 느끼는 바 인데요. 과연 이만한 도장이 있어야만 진리탐구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 생각은 제가 이곳
에 한 3년 정도 머물러 이곳의 승려들과 공부하는 법을 익혔으면 하거든요. 진리의 도장에서 자기 모습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저 같은 젊은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으나 이런 모습이면 앞으로도 불교는 만년 정도는 거뜬한 생명력을 지닐 것 같군요.”

“그래요. 그럼 다위드는 3년 공부로 만년 수명의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 아닙니다. 만년 수명이란 무한한 생명력이니까 수도의 기간은 최소한 1백년은 감수해야지요.”
“그렇습니다. 마리아 교수님 어찌 이렇듯 영특한 제자를 두셨습니까. 참으로 소승은 부럽습니다.”
지눌타가 마리아 교수를 바라보면서 다위드 칭찬을 했다. 마리아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다시 다위드가 말했다.

“지눌타 큰 스님! 구라마습 스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러지요. 구마라습 스님은 이곳 쿠처에서 태어나셨으나 어머님이 출가 하실 때 어머니를 따르기로 했지요. 그때가 다섯 살 때인 데 어찌나 총명하던지 그 어린 나이에도 산승 노릇을 하는 데 어른들이 불편하지 않으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뵈옵는 다위드 님에게서 구마라습 스님의 어릴 때를 연상하고 있어요. 그 어른은 천축국을 여행하시면서 박트리아라는 지역에 관심이 많으셨답니다. 박트리아이면 페르시아 동북방 끝자락에 위치한 구도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 그 곳은 저 옛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시아 침공할 때 주둔했던 중심지라고 하던가. 그 곳에 알렉산드로스의 도시를 만들었다고 했어요. 그곳에서는 그 분의 조국인 마케도니아 철학자들과 박트리아 지역의 학자들을 만나게 했다더군. 그래서 각기 가진 실력을 나누고자 했어요.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자산이 남아 있는 박트리아에서 후일에 그리스도 예수가 탄생할 기반을 만들었답니다. 물론 예수님은 팔레스티나에서 태어나셨지만 예수 성인이 등장하기 전부터 박트리아는 예수의 사람들에게 친근한 나라지요. 예수 이후에도 그의 제자들이 많이 활동하던 곳이 박트리아입니다. 아마 다위드는 언젠가는 박트리아 여행을 한 번 하게 되면 그곳에서 구마라습 같은 분도 만나고 여러분의 스승이신 알로펜 같은 어른들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들으니 지눌타 스님은 또 다른 무엇을 알고 계시는 듯 합니다. 거북해 하지 마시고 말씀해 주셔도 되는데요….”
다위드는 마리아 할머니가 조금은 불편해 하는 표정을 지으시자, 말을 끊었다.
“글쎄요. 말이란 때로는 먼저 본 뒤에 해야 할 말이 있거든….”

지눌타도 말이 조심스러워 지고 있었다.
쿰바홀은 키질 석굴에 온 후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눌타와의 대화를 나누는 자리인데도 집중력을 보이지 않았다. 지눌타도 그 분위기를 아는지 쿰바홀을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다위드는 박트리아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마리아 할머니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시니까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언제나 친근하기만 했던 할머니가 오늘따라 말씀도 없으시고 다위드가 상대하는 지눌타와의 대화에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찻잔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다위드가 천연덕스럽게 마리아 교수에게 말했다.

“할머니, 혹시 제가 여기 남아 있을까 싶어서 걱정하고 계세요?”
“응, 난 다위드가 할머니를 떠나서 구마라습 도인에게로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란다.”
마리아 교수가 활짝 웃었다.

“그래요. 지눌타 스님이 절더러 구마라습 고승님 어릴 때 같다 하시니까 잠시 우쭐해 졌어요. 그러나 저는
여기에 남을 생각은 없구요. 구마라습 고승을 장안으로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하참,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소년이군요. 장차 기독교에 큰 인물 되실 것 같군요. 축하드립니다.”
마리아는 지눌타의 정중한 인사에 답례하면서 그가 들려준 덕담이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위드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등을 토탁이기도 했다.

다음날 길 떠나는 마리아와 쿰바홀 주교와 다위드를 보내는 지눌타는 다위드에게 책 한권을 주었다.
“기독교의 구마라습 같은 인물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구마라습님의 친필로 된 불경 한 권을 선물 하겠어요. 화엄경 사본입니다.”

다위드에게 주마 했으면서도 지눌타는 마리아 교수에게 책을 건넨다.
마리아는 키질 석굴이 좋았다. 그러나 마냥 머물 수 없는 몸을 안타까워 하면서 구처국 선교부로 향했다.
“다위드, 키질 석굴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지?”

마리아 할머니가 다위드의 옆 얼굴을 지켜 보면서 물었다. 다위드는 말없이 살짝 마리아 교수와 눈을 마주친다. 그는 그리고는 말없이 마차의 정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리아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마차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가고 있었다. 쿰바홀이 다위드를 나무랬다.
“어른이 묻는 데 답을 하지 않으면 불경스러운 것이니라.”

“네,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질문에 저는 답변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할머니 교수님. 저는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무슨 충격인데, 말을 해야 알지.”

쿰바홀이 다그친다.
“어서 말해 보렴.”
마리아도 말을 권유한다.

“네, 교수님. 두 분 어른도 보셨을 터인 데, 석굴 상단 북쪽에 위치한 부처님들 세 분이 나란히 둘러서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있던 기도굴을 보면서 저는 놀랐어요. 그 벽화 한 점이 1백년 정도 걸렸다는 안내 승려의 소갯말을 들었거든요. 그것도 그 그림을 할아버지가 그리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 그리고 손자된 자가 겨우 완성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냐, 뭣이 그리 놀라웠던고?”

마리아는 근엄한 목소리로 추궁하듯이 물었다.
“네, 교수님. 제가 지금 깨달은 것은 저 자신이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 갑자기 조심스러워 졌어요. 용서해 주세요. 3대가 그렸다는 그림을 본 충격이 특별히 더 했습니다. 말 보다는 할 일을 하는 것이 먼저로구나. 벽화 한 장 그리는 데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대를 물려가면서 완성해 가는 그 모습에서 불교의 중요한 한 모습을 보았어요. 앞으로 저는 좀 더 진중한 자세로 기도와 공부해 몰두코자 하옵니다.”

“그래요. 나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그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느리라.”
“교수님, 저는 박트리아에 가보고 싶습니다.”
쿰바홀 주교다.

“그러시겠죠. 저도 전부터 바라는 바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알로펜 총주교님으로부터 박트리아 이야기
를 수십년 전에 들었어요. 아마, 그 어른은 박트리아 현지에 가셨고 그 곳에서 한동안 생활을 했다더군요.”

“아, 그래요. 그런데 왜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말씀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박트리아에서 배운 종교적 관용이나 종교는 새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살고 가셨지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쿰바홀은 마리아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마리아의 답변이 종잡을 수 없는 말인데도 딱 꼬집어서 지적을 못하고 우물거린다는 자책을 했다.
그들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쿠처 선교부에 들렸으나 책임자들이 없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몸을 움직인다 싶었으나 그는 불편한 몸이었다. 쿰바홀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주교님, 그냥 코초로 갑시다. 길을 제촉합시다.”

마리아는 쿠처 선교부를 비껴서 코초를 향해서 길을 서둘렀다. 가는 길에 행군을 하는 군부대와 마주쳤다. 마차가 출렁거린다. 쿰바홀이 마차에서 뛰어 내렸다. 당나라 군이다. 쿠처에는 당나라의 ‘안서도호부’가 있다. 서북 변방을 지키는 군대인데 십만 병사라는 내용은 알고 있었다. 쿰바홀이 말머리를 길 가로 돌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앞서 가는 행군대 장수가 멈춰 선다. 장수가 마차를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귀한 분을 모시고 가는가?”
쿰바홀이 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장수의 말에 응대를 했다.
“장안에 있는 기독교 총 사령관의 모친이 마차 안에 계십니다.”
장수는 총사령관 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차렷 자세를 취한 채 마차 안을 향해 군례를 취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마리아 교수가 마차에서 내리려 했다. 쿰바홀이 달려가서 가만히 계시라고 말했다.
장수가 말했다.

“군 행렬을 한 쪽으로 비킬 터이니 잘 모시도록 하시오.”
말을 마친 장수는 마리아 쪽으로 한 발 다가서서 잘 모실터이니 편히 가시라고 인사를 한다.
군 행렬이 멈춘 사이 쿰바홀은 마차를 조금은 빠르게 몰았다. 군 행렬을 비켜서 한 참을 가고 있는데 말 한 필이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멈추라고 깃발을 흔들었다. 쿰바홀은 마차를 멈췄다.

“주교님, 어쩌자고 저희를 팽게치십니까?”
말에서 내린 사람은 쿠처의 선교사인 앗스기아의 아들 스가랴였다.
스가랴는 마리아 앞에 나타나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었다.
“왜 이러는가? 이 사람아. 이 늙은이 안 죽었어!”

마리아 교수는 스가랴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어머니가 막내 아들을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못 가십니다. 저희들이 교수님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안쓰럽지도 않으세요.”
스가랴는 완강했다. 그를 그냥 두고는 떠날 수 없다고 쿰바홀이 먼저 판단했다.
“어찌한다. 이 고집쟁이. 제 애비를 닮아서 더는 말릴 수 없겠는데….”

쿰바홀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보시게. 우리는 모두 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몸이야. 세상정에 메달릴 수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나를 걱정하니… 그렇다고 쿠처로 되돌아 갈 수는 없고 잠시 더 가면 쉬어갈 숙소가 나올거야. 거기까지 가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세나.”
마리아가 말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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