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1

“바울 선생이 각 처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듯이 페르시아 영토 안에서도
바울과 같은 인물이 초기에 일어나서 복음의 기반을 강화했으면 이슬람 종교가 그렇게 쉽게
페르시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이 같은 역사를 깊이 반성하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사막의 먼지는 쉽지 않다. 투루판의 한 주민이 말을 이용해 물건을 옮기고 있다.

스가랴는 마리아 교수의 요구를 따라 마차와 함께 묵어갈 숙소를 향해 갔다. 마리아 교수의 마차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스가랴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할머니의 모습이 바위처럼 무거워 보이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바람결에 스치는 그의 몸을 둘러싼 목소리가 펄럭이는 것과 함께 금방 바람에 흩어질 듯한 신기루 같기도 해서 였다. 사막의 바람이 분다. 석양 빛 노을에 비치는 모래먼지들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부추기는가. 마차가 멈춘다.

스가랴도 말을 세웠다.
“스가랴 님, 저 앞에 있는 주막거리에서 숙소를 찾아봅시다.”
쿰바홀이 말했다.

“아닙니다. 조금만 더 가면 더 큰 장소가 나옵니다. 여기는 누추해서 안 됩니다.”
“그래요?”

“네, 그곳에 가면 우리가 만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쿰바홀이 머리를 끄덕이자 스가랴가 말을 세게 몰아 마차 앞으로 달려갔다. 마차도 속도를 냈다. 한 시간 정도를 더 갔더니 조그마한 오아시스 마을이 나왔다. 입구에 말을 멈추고 선 스가랴가 말했다.
“교수님, 이곳에 안전한 숙소가 있어요. 또 우리들 형제 둘이 활동하고 있고요.”
“고마워요. 스가랴 님.”

마리아 교수가 마차에서 내려 서는데 스가랴가 부축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스가랴는 마을 상가 주인과 몇 마디 주고받는다. 관리인이 스가랴와 함께 상가 뒤로 간다. 관리인이 곧 다시 나와 쿰바홀을 향해 마차를 몰고 집 마당으로 가도록 안내했다. 관리인은 집 마당 오른편 방을 사용하라고 했다.

마리아와 다위드도 마차에서 내려 방으로 갔다. 다위드는 한 마디 말이 없이 있다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감사합니다를 거듭 말하고는 집 주위를 한 번 둘러 본다.
마루로 올라 선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이 아니라 가운데는 거실이 있고 널찍한 방이 3칸이나 있는 독채였다.

그들이 사막의 별장 같은 숙소에 만족하고 있을 때 스가랴가 두 청년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교수님, 편히 자리 잡으세요. 이곳은 여기 같이 온 제 친구들이 교수님을 위해 준비해 둔 숙소랍니다.”
“무슨 소리요. 우리가 오늘 여기 올 줄을 알고 있었단 말이요?”

쿰바홀이 두 청년을 바라보면서 궁금해 했다.
“먼저 교수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스가랴님의 제자들입니다. 소그드 상인들 소속입니다. 이 방은 복음 전하는 집입니다. 영업집이 아니고 저희들의 소유입니다. 아니, 교수님과 쿰바홀 주교님의 집입니다.”

“허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네요.”
쿰바홀이 웃으며 말하자 마리아 교수도 한 마디 했다.
“어휴, 나는 내 집에 온 것 같이 편해지네 그려.”
“저 다위드는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습니다. 스가랴 선배님.”
“뭐, 선배님?”

“그래요. 그리고 두 분 형들은 이름을 뭐라고 하세요. 저는 두 번째 알로펜으로 선택된 다위드입니다.”
“뭐, 두 번째 알로펜. 조그만 친구가 당돌하군 그래. 그래 내 이름은 쿠처 요한이고….”
“나는 요한의 형제 쿠처 야곱일세. 자네는 좀 당돌하구먼.”
요한과 야곱이 다위드의 도발적인 발언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다위드 말이 맞소! 일찍이 뜻을 세운 사람은 그 뜻을 성취할 수 있어요. 다위드의 포부를 나는 믿고 있어요.”

마리아 교수가 정색하고 다위드를 두둔했다. 다위드를 힐난했던 쿠처의 요한과 야곱은 깜짝 놀랐다. 마리아 교수가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를 두둔하다니 저 아이가 신앙의 천재라도 된다는 것인가 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두 청년은 너무 겁을 먹지 말게. 자네들 덕분에 오늘은 좋은 숙소에서 우리들이 편히 쉬게 됐으니 내가 돈을 좀 줄 터이니 오늘 저녁은 허리띠 풀고 한 번 포식을 해보면 어떨까?”
쿰바홀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기도 해서 입담 좋게 말했다.

“주교님, 아닙니다. 저희는 코초로 서둘러 가는 길에 스가랴 님의 간청으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모르기는 해도 쿠처 선교에 필요한 요구가 있을 것이고, 그럴 경우 할머니 교수님은 가르침을 내리셔야 하는데 잔치를 벌일 시간이 있겠어요.”
다위드가 쿰바홀 주교에게 면박을 주고 있었다.

“어허, 그래도 존경심을 지켜야지. 그게 무슨 말버릇인고…”
마리아 교수는 다위드를 가볍게 꾸짖었다. 어린놈이 건방지다면서 혼쭐을 내려던 쿰바홀이 부아가 치미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또 마리아가 선수를 치는 뜻도 알았으니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생각해 보니까 다위드의 생각이 맞군요. 여보게들, 잔치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리로 둘러앉아서 쿠처의 선교 현황이나 들어봅시다.”

“네, 선교 보고도 드리고 마리아 교수님과 주교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저희가 잘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가랴가 한 마디 했다.

“그럼, 이제 된 건가요. 모두들 오늘은 우리 예수님 이야기하면서 은혜로운 사귐을 가집시다.”
마리가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쿠처의 요한과 야곱에게도 자리를 권하며 다가왔다.
“저희들 쿠처 선교부는 카슈가르까지 활동을 벌이고 있어서 활동지역이 너무 방대하거든요. 장안의 주교청에 말씀드려서 카슈가르는 별도 책임자를 지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 쿠처는 아시다시피 불교가 왕성합니다.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가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전설이 있어서인지 많은 승려들이 곳곳에서 존경을 받지요. 금번에 직접 가 보셨으니 아시겠으나 키질 석굴 지역은 구마라습 도인의 성지나 다름없어서 쿠처는 물론 서역과 당나라, 그리고 천축국까지도 소문이 자자합니다. 참 부럽습니다.

스가랴의 말을 받아서 마리아가 나섰다.
“잘 보셨어요. 그래서 내가 쿰주교에게 간청해서 이곳에 왔지요. 나와 여러분의 스승 되시는 알로펜 총 주교님은 페르시아 출신이십니다. 우리 기독교가 로마와 페르시아의 두 기반 위에 세계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하셨는데 로마 기독교가 미처 페르시아에 기독교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라비아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파고들어서 기독교의 아시아는 물론 세계종교 기반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늘 애통해 하셨어요. 총 주교님 떠나실 때 내게 특별히 당부하시기를 이곳 서역 국가들과 중앙아시아에 반드시 아시아 기독교 본부를 설치하고 당나라는 물론 저 북방 초원의 나라까지 아시아의 하늘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를 어찌하오. 내가 총주교님보다 한 살 많은 늙은이로서 나는 여러분의 분발과 헌신을 기다릴 뿐이니….”

“아닙니다. 교수님은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편히 말씀을 계속해 주세요.”
스가랴가 마리아 앞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정중하게 말했다.
“앉아요. 어려워하지 말아요. 나를 그냥 할머니로 불러도 좋아요. 참,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요. 알로펜 총 주교님은 청년시절부터 천축의 불교를 많이 아셔요. 지금 당나라에서 기세를 올리는 보리달마의 선불교는 물론 현장법사 등 특히 쿠처의 구마라습 같은 위인에 대해서도 공부하셨고, 주변의 종교나 철학들을 통해서 우리 기독교의 부족은 무엇이고 타종교들보다 우월한 점은 얼마나 되는가를 깊이 탐구하신 학자이시죠.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우리 앞날의 무엇을 걱정하셨나요?”
스가랴가 말했다.
“그래 말하지요. 당나라의 벽이 너무 두텁다는 거예요. 당나라는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제국을 이룬 진시황 시대가 현재로부터 9백여 년 전이지만 진시황의 제국보다 더 멀리 1천여 년 전부터 문지가 있었고 철학과 종교가 시작된 어마어마한 문명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는 로마제국 식으로 중국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 방식이라고 하셨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가랴는 점점 궁금증만 더해 갔다. 도무지 이해 못 할 말을 이어가는 마리아 교수의 말이 미덥지 않기까지 했다. 중국이나 당나라 따위가 하나님 아들이 직접 내려오셔서 이룩한 기독교 앞에서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해온 스가랴의 가슴은 오히려 마리아 교수의 말에 용기를 잃어갔다.

“그래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운 우리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결코 당나라와 그들의 조상들에게 뒤지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가 우리들 조상들이 지켜낸 신앙과 탐구의 전통을 지켜왔느냐고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앞서 말한 페르시아를 사막에서 일어난 이슬람 종교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해요. 왜냐하면 페르시아는 일찍이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 터전으로 주신 땅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5백여 년 전, 바벨론 포로기에 고레스 대왕을 미리 준비시키셔서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에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게 되었지요. 예수님이 오신 후 페르시아 제국 각처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잖아요. 바울 선생이 각 처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듯이 페르시아 영토 안에서도 바울과 같은 인물이 초기에 일어나서 복음의 기반을 강화했으면 이슬람 종교가 그렇게 쉽게 페르시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이 같은 역사를 깊이 반성하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리아의 열정에 찬 말을 듣고 있던 스가랴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의 말씀은 정말 저로서는 처음 듣는 말씀이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은 유럽선교를 했던 바울 선생 활동기와는 다른 점이 있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면 바울 선생의 활동기의 소아시아나 그리스는 페르시아처럼 강력한 군주국가가 아니었기에 좀 달랐다든지 말입니다.”
“그래요. 스가랴 님. 말 잘했어요. 바울 선생의 선교지대와 페르시아는 성격이 다를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그 같은 성격을 미리 파악하여 페르시아 제국의 호감을 얻어낼 수 있는 전도자(선교사)를 양성해 냈어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도 로마 제국의 기독교와 페르시아 기독교는 물론 양 제국 사이에도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서투르기도 하고 아쉬운 점들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게 뭔가요?”

“한마디로 로마 제국과 로마의 기독교가 페르시아 제국을 얕잡아 본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페르시아의 샤프르 2세에게 ‘오만스런 편지’를 보낸 것이 혹독한 페르시아 교회의 박해로 연결되어 단숨에 20여만 명의 순교자가 발생했어요. 그 여파로 로마 기독교와 대등한 페르시아 교회의 교구제도와 ‘니케아 신조’를 함께 수용하고 성경의 정경(캐논)화 등이 갖춰져서 두 제국의 교구가 대등한 관계를 이루기 시작했다가 샤프르 2세의 핍박과정에서 관계까지 무너졌어요. 참 억울하고 분해요. 앞뒤 생각 없이 우월감에 취한 로마 황제의 편지 한 장이 결국은 빌미가 되어 그로부터 3백여 년 후 페르시아 제국은 기독교 반대 종교의 중심기반이 되고 말았답니다. 역사를 배우고 기독교의 높은 수준에 알맞은 지도자들이 나와야만 우리 기독교는 이제라도 기대가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지금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당나라는 페르시아보다 더 전통과 역사가 깊고 철학과 종교가 탁월해요. 먼저 교회가 이곳 서역과 당나라에서 뿌리내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교수님, 그걸 어떻게 해요?”

스가랴와 그의 두 친구가 동시에 말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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