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2

“구리에 거울의 성분이 있어서 닦기만 해도 거울이 되듯이 인간 모두는 닦기만 하면 모두가
부처라고 가르치는 불교의 힘과 그들의 여유를 기독교는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
우리 기독교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는 물론 로마교회 이후 지나온 200여 년 동안 잘 다듬으면
큰 인물 될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얼마나 많이 죽였더냐”

 

 

 

 

   
▲ 중국 북부에 위치한 우루무치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쉽고 짧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
마리아 교수는 혼잣말 하듯이 했다. 윗목 벽 상단을 바라보면서 숫자를 헤아릴 때 머릿속으로 확인할 때처럼 머리가 미세하게 앞뒤로 흔들렸다. 그가 긴장해 있다고 판단했을까.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숨소리도 죽이는 듯한 분위기였다.

“글쎄말이죠…, 어떻게 말해야 하나. 타종교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데….”
“교수님, 소신껏 말씀하세요. 저만 빼고는 다 젊은이들인데요 뭐.”
쿰바홀이 마리아를 거들었다.

“젊은이들이니까 더 어렵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타종교를 의식할 필요는 없으나 가능하면 예의상 타종교 이야기는 삼가는 게 좋아요. 자기 종교도 다 모르면서 남의 종교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건 바람하지 않아요.”

“할머니 상대를 비교하는 식이 아니라면 큰 문제 있을까요. 다 내 종교이거니 하면 말입니다.”
다위드였다.
“옳지, 그래요. 다 내 종교 또 우리 종교예요. 세계에는 여러 종교가 있겠으나 모두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을 자기 민족의 사상적 배경을 반영하면서 표현하고 제도화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축국에 등장한 불교나 중국의 폭넓은 사상이 말하고 있는 철학적 종교심은 세계 어느 지역의 종교보다 다양하면서도 심오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요. 아마, 앞으로 로마제국의 기독교가 아시아로 건너올 때는 태산이요 또 철벽같은 장애를 느낄 거예요.”

“교수님, 이미 우리들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당나라에 자리 잡았고, 서역 일대는 물론 중앙아시아나 북방 몽골의 초원까지도 전파되고 있잖아요. 저희들 코초나 사마르칸트의 선교단 사람들이 소그드 전법으로 아시아 세계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스가랴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포부는 좋으나 아닙니다. 로마제국이나 제국의 기독교가 아시아로 건너올 용기가 부족함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위드다. 그는 눈이 똥그래진 모습으로 마리아의 옷자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로마교회는 우리가 장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 수십 년인데 단 한 번 우리를 찾아주지 않았어요. 동로마 콘스탄티노플 황제가 우리의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이단정죄를 무혐의로 복권시켰으나 동서 로마교회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잖아요.”

“아닙니다. 지금 안토니 주교님이 로마교회 지도부와 만나면 곧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으로 압니다.”
“그래, 다위드가 말 잘 했어요. 그러기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면서 기다립시다.”
쿰바홀이 다위드의 지혜로운 말솜씨를 칭찬하면서 그의 등허리를 가볍게 만져준다.
“그래요. 이럴 때는 다위드가 나를 놀라게 한다니까, 어떤 때는 이 아이가 이러다가 뭐가 되려나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마리아도 다위드를 칭찬하고 나섰다.
“어르신들, 어린 것이라고 함부로 말씀하시면 되나요.”
다위드가 쿰바홀을 바라보면서 한 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안돼요. 장차 우리들의 아시아 교회 큰 지도자 되실 분인데요. 누가 감히 함부로 대합니까.”
쿰바홀이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중국은 지금 당나라 모습에서도 대단한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당나라는 중국의 중심 종족인 한족(漢族)의 나라가 아닙니다. 직전 황제인 당태종만 해도 한족과 돌궐족의 혼혈 태생이고, 당나라 지도부에는 북방족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혈통만 아니라 타민족을 중국 본토족인 한족과 쉽게 동화시키는 흡인력이 있고 세계 어느 나라, 심지어 서양사람일지라도 능력이 있으면 정부 대신(大臣)으로 등용시키잖아요. 장안의 우리 본부에서도 과거응시반 공부를 지금 시키고 있어요. 우리들 안에는 페르시아 출신 시리아 출신들이 많이 있죠. 그들 중에서도 머지않아서 당나라 중앙정부의 관료로 등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 이전의 나라들을 보면 사마르칸트 공부시간에도 말했습니다마는 중국의 하, 은, 주나라가 성경의 연대로 말하면 다윗왕 때 정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1천 3백여 년 전부터 하나라가 시작되었고, 문제는 그 나라들의 문자가 바로 그때부터 역사와 문화, 학문 곧 철학과 사상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섭습니다. 소름이 칠 만큼 중국은 크고도 강한 나라입니다. 그들은 공자 중심의 유교, 노자의 후예들이 만든 도교가 있으나 두 종교는 철학 중심의 종교로서 종교도 같고 사상집단도 같아서 그들의 사상성이나 논리적 힘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최상의 자리에 천제(天帝)가 있고 다음은 황제 곧 천자(天子)가 있으며, 그리고 천자가 친히 섬긴다는 백성이 있는데 그들은 하늘과 땅의 중간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중용지도(中庸之道)의 형세를 유지하는 사상적 완벽성을 가집니다.”

“대단하군요. 그럼 천제, 천자, 중용이라는 형식이 우리 종교의 삼위일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스가랴가 묻는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거리고 있었다.

“글쎄요. 스가랴 선교사가 중국사상에서 삼위일체를 떠올리니, 한 말씀 더 드리겠다는데 천축의 불교는 불(佛), 법(法), 승(僧)을 말하여 그쪽은 더 기독교의 삼위일치 냄새를 피웁니다만 다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교는 아직 삼위일체의 철학적 완결점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구 참…”
“왜 그러세요. 교수님!”

쿰바홀이 의자에서 상체를 든다.
“아, 아닙니다. 답답해서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말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지 600년이 넘었는데 기독교가 삼위일체를 잘 모른다니….”

“그럼, 할머니는 알고 계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다위드다.

“아이구, 예쁜 청년아….”
마리아가 다위드를 덥석 안으려 하다가 동작을 멈춘다. 그러나 그는 다위드의 두 눈을 뚫어져라고 쳐다본다. 그의 눈 또한 별처럼 반짝인다. 그러다가 눈 가장자리에 가볍게 물기를 머금는다.
“할머니, 제게 가르쳐 주세요. 우리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가르쳐만 주시면 천제, 천자, 중용은 물론 불, 법, 승과의 차이점은 자연히 밝혀지고 종교들 간의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위드, 방심은 금물이다. 중국사상은 물론 인도 불교는 사람이 곧 부처다. 구리에 거울의 성분이 있어서 닦기만 해도 거울이 되듯이 인간 모두는 닦기만 하면 모두가 부처라고 가르치는 불교의 힘과 그들의 여유를 기독교는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 우리 기독교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는 물론 로마교회 이후 지나온 200여 년 동안 잘 다듬으면 큰 인물 될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얼마나 많이 죽였더냐, 네스토리우스 같은 이는 너무 탁월하니까 동방 아시아로 길을 잡아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장담은 금물이다.”

마리아는 여기서 말을 멈춘다. 그의 눈에 긴장감이 서려 있다. 어떤 분노라고 표현함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교단이 그럼 로마파 기독교와 같다는 것인가요?”
쿰바홀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 피가 그 피 아닐까요? 우리에게도 로마 기독교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단, 우리는 핍박받는 자 네스토리우스의 혼과 한을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지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요르단 사막으로 쫓겨나던 AD 431년부터 시리아와 리비아 사막을 떠밀려다니다가 숨을 거두던 AD 451년까지 20년 동안 그 어른이 사막의 미친개 취급을 받으면서 소명의 기회나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목줄을 끊어서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기도 않았던 로마 기독교가 얼마나 잔인했던가를 나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알고서 우리들의 원한으로 되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취약점이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공부하라는 겁니다.”

“취약점이 뭔가요, 교수 할머님!”
다위드가 취약점을 배우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 그럼. 취약점을 말해 주지요. 기독교 정통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표현을 다양하게 하고 있는 점에 대해 울고 웃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스가랴 선교사의 질문이다.
“그러죠. 우리 기독 교안에는 예수님은 신의 나타남이었지 실제로 사람의 몸으로 오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행한 예수님의 활동은 신이기에 가능하여 그의 행동에는 인간의 고통이 없었다는 소위 영지주의자들이고, 또 한 부류는 예수는 신이 아니고 우리 인간과 똑 같은 피조물로서 한 사람의 성인이요 성자일 뿐이라는 사람들, 그리고는 정통파들인데 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다. 그러나 사람이시면서 또 그는 하나님이시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세 등분으로 구분하는 경우는 크게 문제됩니다. 이 세 가지 교리를 각각 선택하면서 정통과 비정통하고 정통과 이단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이는 교리적 측면이고 더 조심스러운 경우는 성경 내용을 비판하면서 그 내용 속에서 신화는 제거하고 설화도 분류한다. 여러 형태의 예수생애 기록자들의 기록물 내용을 모두 들추어내서 옥석을 가려보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요구에 우리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누가가 쓴 복음서에도 나옵니다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평소부터 예수를 가까이서 만나거나 대화를 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또는 이웃들로부터 전해오는 예수님 이야기 등에 대하여 말로 전하는 사람 뿐 아니라 글(문서)로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많은 이야기가 여러 형식으로 문서화된 것을 초대교회부터 정경(正經)이 확정될 때까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보면 됩니다. 많은 순서들이 모두가 일정한 수준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었기에 교회 감독들의 모임에서 옥석을 가릴 수도 있고, 신령한 신앙자들에게 선별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옥석을 구분하듯이 구분하는 것입니다. 설사 수준이 낮은 문서로 떠도는 예수 이야기가 있다고 했을 때 그런 종류에 대해서 혐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교회 변방에서 떠돌아다니는 예수님 이야기 중에는, 예를 들어 예수님이 여자관계가 있다, 아무개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 있다, 애인이 있다, 그 자손들이 어디에서 산다, 예수님이 공중에 날라다니는 것을 보았다, 죽은 자를 살렸다고 성경에는 써 있으나 죽은 자를 살기리는커녕 앉은뱅이를 고쳐주지 못해서 낭패를 본 현장을 목격했다는 문서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문서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의 단계와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자기들 눈에 비친 예수님을 표현했다는 것이 혹시 무질서하게 보일지라도 저마다 자기 수준에서 예수님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음을 인정할 때 우리들 기독교 사람들이 오히려 당당해 보일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중국종교나 사상과 인도불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마무리 지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쿰바홀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보다는 천제, 천자, 중용지도나 불, 법, 승으로 표현되는 아시아 종교를 알려면 우리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제대로 배우면 됩니다. 제 생각이 당돌했으면 용서하세요.”
다위드가 자리에 알어서서 말했다. 특히 쿰바홀 주교에게는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춘다.
“그래 맞다. 다위드!”
“그래요. 쿰 주교님 말씀대로 다위드가 지혜롭게 잘 말했어요. 우리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만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마리아가 각 사람을 모두 둘러보며 말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