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3

“신의 사람, 하나님을 대변하고 대신하는 수준의 사람들, 신약성경
기록에 하나님의 상속자요 후사라는 말을 바울 선생이 했는데 정확한 표현이죠.
하나님의 상속자가 신자이면 하나님, 예수님,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위일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알면 깨달음이 됩니다.”

 

 

 

 

 

   
▲ 중국 돈황의 한 시장, 열매가 풍성한 고장이다.

새벽같이 마리아 일행은 코초를 향해 말을 몰았다. 스가랴와 쿠처의 요한과 야곱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만류했으나 마리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를 달렸다.

“교수님, 너무 매몰차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 사정도 급하잖아요. 어서 가야죠.”
“마리아 할머니. 여기가 거기잖아요. 평소 같지 않으시니… 무슨 생각하시는 바라도 있으신가요?”
다위드가 마리아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 사람아. 여기가 거기는 맞아요. 그러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서두르는 거네.”
“스가랴 님, 성부성자성령은 한 분 하나님을 각기 표현해 본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성격이라 할 수 있죠. 아마 기독교 교리 이해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그러나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쉽지. 마치 아들이 아버지나 어머니 무릎 앞에 있을 때의 확인처럼 분명한 것이니까.”
다위드가 자기 말에 대꾸하는 마리아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어젯밤 마리아가 스가랴와 그 친구들에게 들려준 삼위일체 부분을 마리아 교수 억양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말했다.

쿰바홀은 껄껄껄, 웃는다. 마차 고삐를 잠시 놓치면서까지.
“쿰 주교, 어서 말을 세게 몰아요. 나 빨리 가야해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해도 다위드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으니 나 지금 서운합니다.”

“스가랴 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주님께 매달려서 사는 단계가 있고 주님의 품속에서 사는 단계가 있지요.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삼위일체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예요. 그건 지식도 아니고 그냥 사는 것이죠. 나 마리아는 이미 주 하나님 품 안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야. 그러므로 순간마다 성령의 안위가 함께 있지요. 저 하늘 구름이 저렇게 분명한 모습이듯이 내 모습을 내가 볼 수도 있어요.”

다위드는 계속 마리아의 어젯밤 강의내용을 마리아의 목소리로 모방하려고 애를 썼다.
“…….”
마리아와 쿰바홀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위드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시작한다.
“사람이란 모두 같지 않아요. 신적인 사람, 또는 신의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신들린 무당들 보셨나요. 신 내림을 얻은 무당도 스스로를 신의 딸이라고 하더군요. 이것이 동방사람들의 풍습이지요. 우리들 기독교 신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신의 사람, 하나님을 대변하고 대신하는 수준의 사람들, 신약성경 기록에 하나님의 상속자요 후사라는 말을 바울 선생이 했는데 정확한 표현이죠. 하나님의 상속자가 신자이면 하나님, 예수님,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위일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알면 깨달음이 됩니다.”

여기까지 말을 해도 마리아나 쿰바홀은 반응이 없었다. 다위드는 혹시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서 움찔 놀라고 있었다.
“다 읊었나? 기억력이 좋은데….”
쿰바홀이 다위드를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보세요. 제 팔뚝에 다 써 두었답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아무튼 다위드는 우리 네스토리우스 교단의 보배야.”
“어찌 네스토리우스 교단의 보배뿐이겠어요. 기독교 전체의 보배죠.”
“할머님, 저는 하나님의 보배가 더 좋아요.”

“그래, 맞다. 그런데 코초에 가면 누가 기다릴 것 같다 하는데 왜 반응이 없누?”
“네, 할머니 교수님. 송구합니다. 삼위일체에 빠져 있다 보니 잠시 제가 예의에 벗어났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니니라. 괜찮다. 내가 마음이 바쁘니까 너를 탓하는구나.”
“네, 할머니 교수님. 그런데 저는 지난 밤 이후 지금까지도 고민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상으로 볼 때 인간이 마치 신적인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할 거야. 나나 알로펜 총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삼위일체에서 인간의 위치는
말이지, 그 위(位)거든. 그래서 느낌이 조심스러울 거야.”
“성령님의 자리가 인간의 자리란 말씀이죠?”

“그래 단순 인간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이란 주 예수와 일체(한몸)를이룬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란다.”
“아! 두렵도다. 나 같은 인간이 어찌 그런 경지를 꿈이나 꿀 수 있으리이까?”
“다위드야. 정신 차리거라.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런 경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이 부분은 무조건 은총이니라. 그 은총으로 우리가 하늘에서 오신 주 예수를 만났고 그 은총으로 함께 살다가 함께 죽고 다시 함께 부활하는 은총의 사람들이란다. 일상의 사람들과도 다르지. 암 다르고말고….”
“아이고, 어렵군요.”

쿰바홀이 말없이 듣고 있다가 마치 한 숨을 내 쉬듯이 한마디 했다.
“아니 그럼, 쿰 주교는 주교가 이 비밀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겁니까?”
마리아 교수의 추궁에 쿰바홀은 깜짝 놀란다.
“……?”

쿰바홀은 말없이 말이 달리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 채찍을 두어 번 들었다가 그만둔다. 무심결에 말에게 보복하려다가 그만 두는 것이다.

“아닙니다. 쿰 주교님은 저에게 예수님이 저의 생명 되심을 말씀해 주신 바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건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기독론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독론이 정확하면 성령론이 또한 바로잡히지 않을까요?”
다위드는 손가락을 움직여서 덧셈을 하듯이 하면서 말했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다마는 삼위일체에 대한 대다수 교회들이 고지식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자리는 구원받은 신자가 동반하는 자리임을 강조하고 있단다.”

“아, 알겠습니다. 교수님. 이 쿰바홀이 지금 한 순간 영감이 뇌리를 번쩍 하고 스쳐갔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성부, 성자, 믿는 신자’와 똑 같은 표현이 되기도 하군요.”

“옳지, 옳아요. 이제 쿰 주교의 가슴이 열리는군요.”
“그러나 교수님, 말씀이 무섭습니다. 감히 ‘성부, 성자, 성령’으로 표현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성부, 성자, 믿는 신자’가 대신한다는 것이라니 너무너무 두렵습니다. 이건 참람죄에 해당하는지라….”
“옳습니다. 참람죄를 범하세요. 그리고 하나님 이름을 더렵혔다면서 사람들이 죽이려들면 또 한 번 죽어 주어야 합니다.”

“할머니 교수님. 삼위일체를 새롭게 바꾸고 나니, 제가 저 자신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이미 자신에게서 떠났어야지. 아직도 육신의 인간에 매달려 살면서 주여, 주여, 했더란 말이냐?”
“네, 아이고 아닙니다. 말씀을 한 단계 더 정확하게 배운 결과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신자가 무엇하는 사람인지 주님의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교수님!”

“삼위일체의 진리는 참으로 신비하군요. 어정쩡한 신자와 명실공히 믿는 신자를 뚜렷하게 구분해 주는군요.”
“그럼요. 콩 심으면 콩 나지요. 그래서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시지 않던가요. 네스토리우스를 배우다가 아시아로 쫓겨난 우리들은 서방교회보다 뛰어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쿰 주교님은 이미 알고 계셨고 어린 다위드는 오늘에서야 바르게 배웠습니다. 교수님.”
“이 아기 어른이 쿰 주교 체면도 세워줄 줄도 아는군. 헛허허.”
쿰바홀은 너털웃음을 웃고 마리아도 함께 웃었다.
그들은 5일이 더 걸려서야 코초에 당도했다. 쿰보그와 쿰가그가 달려나와서 마리아 교수와 부친인 쿰바홀을 부축했다.

“이 사람들아, 나는 괜찮아요.”
쿰바홀은 아들들을 뿌리치고 마리아 교수를 그의 처소로 조심스레 모셨다.
마리아 일행이 코초에 도착한 지 한 주일 후에 안토니 주교 소식을 들고 불승들 두 사람이 찾아왔다. 쿰바홀이 그들 승려들을 맞이하여 서재로 안내했다.

“어서들 오세요. 먼 길 다녀오시나 봅니다. 그래 우리 안토니 주교 일행의 소식을 가져오셨군요. 반갑습니다.”
건장한 30대의 승려가 안주머니에서 서찰 한 장을 조심스레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저희는 페르시아에서 온 현장법사의 도제들입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안토니 주교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박트리아의 영명사에서 받아 가져온 것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수고 많으셨어요.”

마리아가 서찰을 받아든다.
“안토니 주교가 박트리아를 경유해서 로마를 가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서찰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답니까?”

쿰바홀이 두 승려를 번갈이 바라보면서 묻는다.
“네 박트리아에는 영명사뿐 아니라 로마나 비잔틴 기독교와 왕래하는 구도자들이 많다더군요. 우리들 불승 말고도 여러 종교들이 서로 편의를 봐 주기도 하고 서찰은 물론 급한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 특이한 전통이 있답니다.”

“네, 저희도 짐작은 합니다. 그게 박트리아의 종교 문화라더군요.”
쿰바홀이 아는 체를 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짐작합니다. 그럼, 저희는 가볼까 합니다….”

“아닙니다. 하룻밤 쉬시며 저희가 보은할 시간을 주셔야죠.”
다시 쿰바홀이 그들을 말렸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저희도 코초에 사는 걸요.”

“아, 그럼 편할 대로 하십시오마는 저희도 박트리아 식 문화가 있습니다. 내 아들들 또래신데 저의 집으로
가셔서 쉴 수도 있습니다. 서로 간에 배움도 나누시면 좋지요. 또 저희에게 소중한 서찰을 가져오셨는데 그냥 헤어지기도 뭣 하고요.”
“정 그러시면 저희는 어르신 뜻에 따르겠습니다.”
승려들이 쿰바홀과 함께 마리아 서재를 나간 뒤 마리아는 안토니의 글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마리아 교수님께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파미르 고원을 넘으면서부터 체력이 바닥이 나서 동지들의 도움으로 쉬면서 움직이기를 거듭하면서 부하라를 거쳐서 아르메니아 국에 와서야 한숨을 돌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주변국들도 모두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여행에 큰 불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한 보름쯤 더 가면 에뎃사에 도착할 수 있지요. 그때부터 콘스탄티노플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체력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리아 교수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영부, 쿰바홀 주교는 교수님을 잘 모시면서 자기 임무에 충실해 주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로마에 가겠다고 하지는 않았어요. 저희 형편상 제가 다녀오는 것이 가장 좋다 여겼으나 체력이 나의 열망을 짓밟으려 합니다. 저는 어떻게든지 사명을 완수하고 살아서 마리아 교수님께 달려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략….’

마리아 교수는 빙긋이 웃는다. 안토니는 소년 같은데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가 보고 싶어진다. 건강한 몸으로 임무를 마쳐 주기를 위해서 기도해야지.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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