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4

“성부, 성자, 교회가 삼위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개인이거나 교회라 해도
예수의 십자가 세례(죽음)에 참여한 개인들은 개인이 교회의 구성원이기에 교회, 곧 성령 안에서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는 것은 완벽에 가까운 논리이다.”

 

   
▲ 중국 돈황의 월아천이 자리한 명사산 사막.

한 달 후, 쿰바홀이 장안으로 떠나는 날이다. 쿰가크와 쿰보그 형제가 마리아 교수 방으로 불려 왔다. 쿰바홀이 마리아 교수에게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 절대로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제가 장안으로 가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귀가 닳겠소. 날마다 그 말을 꼭 해야 하오.”
마리아는 쿰바홀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 주니 고마웠다.
“너희 두 형제는 내가 어머니로 모시는 교수님이 불편이 없으시도록 하라. 부탁이 아니라 아비로써 명령하는 것이다.”

두 아들이 한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쿰 주교님, 염려 마시고 장안의 선교본부에 가시거든 대표 주교님을 잘 보좌하셔서 당나라 사람들 중에서 인물을 많이 길러내시기나 하십시오.”
“오냐, 오냐. 너희들의 소원을 잘 알고 있느니라.”

“저희는 사마르칸트 선교부를 의식하지 않고 우리의 계획표를 따라서 활동하겠습니다. 가그 형님은 각 지역 순회 선교사들을 관리하고 저는 교수님 모시고 교육활동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신붓감을 내가 장안에서 준비하려는데 군말 없기다. 아비가 기도하고 찾아볼 것이다.”
“아버지, 저는 총 주교님처럼 독신으로 봉사하렵니다. 보그의 신붓감이나 신경쓰세요.”
쿰보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시집 장가 가는 것이야 급할 것이 없지 않겠소. 지금은 우리 교단 선교의 기초를 다질 때이니 독신자들의 활동이 더 필요합니다.”
마리아의 말을 이어 받아 다위드가 나선다.

“교수 할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독신으로 섬기겠습니다. 총 주교님은 물론 초대교회 바울 선생처럼 온 몸을 던져서 아시아 기독교의 틀을 단단히 만들어 가겠습니다.”
쿰보그가 나섰다.

“저도 장가들고 싶지 않습니다. 장가 간 자는 어찌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한다는 바울 사도의 교훈을 존중합니다. 저도 사십 살이 넘었는데 뒤늦게 장가가서 가정을 잘 꾸릴 자신도 없습니다.”
“허어, 낭패로군. 결국은 가문이 내 대에 끊기겠구나.”

쿰바홀은 약간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았다.
“저기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 삼위일체 위격 중 성령의 위격이 인간, 곧 구원받은 인간의 위상이 성령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 하였는데 제가 그동안 기도하면서 얻은 깨달음은 믿는 성도 개개인이라기보다는 교회여야 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교수님 생각은 어떠시온지요?”

“그게 옳다. 다위드 말이 옳다. 교회여야 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 개개인의 책임감을 강조하다 보니까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교회가 성령 안에서 거룩의 본마당에 설 수 있다고 해야 훨씬 안정감이 있는 것이다. 믿는 사람 개개인의 연장선에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주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가 구성된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교회가 삼위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개인이거나 교회라 해도 예수의 십자가 세례(죽음)에 참여한 개인들은 개인이 교회의 구성원이기에 교회, 곧 성령 안에서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동반자가 되는 것은 완벽에 가까운 논리이다. 다위드는 벌써 신학적 고민까지 하고 있으니 우리 교회 역사에서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송구합니다. 너무 당돌한 말을 했습니다. 꾸짖어 주세요.”
“아니야, 아니실 거야. 나도 다위드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 편해지는걸, 걱정하지 말거라.”
쿰바홀이 다위드를 거들고 나왔다.
쿰바홀은 한 주일 걸러서 장안에 도착했다.

영부 주교가 반색을 한다. 어른들이 모두 안 계셔서 너무나 허전했습니다. 마리아 교수님 건강은 어떠시냐, 코초의 노력으로 서역의 교세는 무난하냐, 사마르칸트는 어떠했느냐고 이것저것을 한꺼번에 묻는다.
“아이고, 주교님. 뭐가 급하십니까. 하나씩 말씀하시죠.”

쿰바홀은 영부 주교가 장안의 당나라 심장부를 지켜내기가 벅찼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쿰바홀은 마리아와 함께 코초는 물론 사마르칸트나 키질 석굴 다녀온 것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왕성한 활동을 하셨군요. 그래도 마리아 교수님은 걱정해 드려야 합니다. 그 어른이 우리들의 상징입니다. 잘 모셔야 합니다. 제가 모셔야 하는데….”

“아니오. 지금 잘 계십니다. 대표 주교님은 우리 교단을 잘 이끌어 주시는 것이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마리아 교수님은 백세가 넘으신 데다가 알로펜 총주교님의 살피심도 없으니 무척 허전하실 겁니다.”

“그럴까요? 요즈음은 다위드가 알로펜 총주교 대신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 무슨 말씀…?”
“그 아이가 애 어른이던데요. 내가 떠나오던 날 코초를 떠나 마리아 교수님의 삼위일체론에 도전하더라니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삼위일체론에 도전이라니요?”
“아, 글쎄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문제 중 성령은 믿는 성도와 함께 하신 성령이시라고 마리아 교수님이 강의하셨는데 다위드가 성령은 교회 안에 계신 분으로 해야만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지 않을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 더 튼튼한 논리가 된다고 마리아 교수님 면전에서 정식으로 도전하더라니까요. 참으로 대단한 천재 한 사람 나타났어요. 어찌나 놀랍던지….”

쿰바홀은 두 어깨를 움츠렸다 펴는 시늉을 하면서 영부의 표정을 살핀다.
“그래요. 거 큰 인물 되겠군요. 마치 열두 살 때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에 모인 학자들을 놀라게 했던 예수님 같군요. 거 참, 그건 우리의 복입니다.”

“아, 그렇군요.”
쿰바홀은 약간 침울해진다. 다위드의 영특함에 대한 말을 들었으면 건방진 녀석이라는 평을 해줄 줄 알았는데 그 아이를 한 술 더 떠서 열두 살 때 예루살렘을 놀라게 했던 예수님께 비유하다니….
“앗차, 이걸 깜박했군요. 안토니 주교님 소식이 왔어요.”

“뭐라고요?”
“뭘 놀라십니까? 인편으로 서찰 한 장이 왔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궁금했다고요. 그래 건강은 어떠신다던가요?”
“네, 지금은 에뎃사에 도착하셨을 겁니다. 잘 견디고 있다 하셨어요.”
“그래야지요. 그 어른은 우리의 보배입니다. 몸도 약하신데 그 먼 길을 가셨으니….”

“가신 목적 달성만 하시면 좋지요.”
“아닙니다. 우리의 의사는 물론 당 황제의 친서까지 가지고 가셨는데요. 다녀오시는 것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로마 교구나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들이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을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많은 기회가 지나가지 않았던가요.”

“대표 주교님 그래도 우리가 지금 기도하고 있으니 응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아,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 내가 성급하게 말했군요. 쿰 주교님, 저를 용서하세요. 제게는 아직도 로마교회에 대한 불신이 큰가봐요. 죄송합니다.”

영부는 그래도 우리가 지금 기도하고 있지 않으냐는 쿰바홀의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기도하는 사람이 결과도 보기 전에 부정적인 표현을 했으니 실수였다. 부끄러웠다. 강단에서 가르칠 때는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마가복음 말씀을 강조하면서 지도자가 말실수를 했으니 많이 부끄러웠다.

“주교님! 저 요수아와 크데시폰의 시몬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
영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쿰바홀의 목소리를 들을 사람들 중 실비아가 먼저 나타났다.
“영부 주교님께 보고차 가신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실비아의 기쁨에 찬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던 쿰바홀이 껄껄, 웃는다.
“실비아 님, 다위드 소식 듣고 싶어서 몸살이세요?”
쿰바홀이 말하면서 실비아를 안쓰럽다는 듯이 더는 마주보지 못했다. 어린 아들을 멀리 보냈으니 소식이
오죽 궁금했을까.

“요수아와 크데시폰의 시몬, 잘들 있었나요?”
“쿰 주교님, 잘 다녀오셨어요. 마리아 교수님은 잘 계시던가요?”
“그럼, 그럼요. 자자, 들어갑시다.”

“아닙니다. 오삼 수도회 남녀 수도사들이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십니다. 저기 보세요.”
수도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삼 수도회를 쿰 주교는 많이 걱정했었다. 숙소를 짓다가 코초에 가도록 차출되었으니 미안하기도 했다. 숫자가 불어나 있었다.

“열다섯 가정입니다. 저희는 그동안 쿰 주교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빨리 오시게 해달라고 주님께 졸랐습니다.”

“나 같은 늙은이가 뭐라고 기다려요. 눈물 나려고 하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모두 쿰바홀 주교님처럼 좋은 일꾼이 되고 싶어요. 정말입니다.”
“좋아요. 저녁 식사 후 만납시다. 오삼 수도회 숙소나 한 번 둘러보겠어요. 건축공사를 하다가 떠났으니 내가 참 면목이 없습니다.”

쿰바홀은 대충 오삼 수도회 수도사들의 숙소를 둘러본 후 요수아의 사무실로 갔다.
“실비아 님, 다위드 보고 싶었지요. 다위드는 이제 아이가 아닙니다. 몇 달 동안에 몇 살은 더 먹은 거 같아요. 벌써 마리아 교수님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그 애가 주님을 많이 사랑하거든요. 주교님.”
“네, 저도 다위드를 보고 있노라면 긴장이 되어서 조심스러울 때가 있었다니까요.”
“그 녀석, 어르신들께 걱정을 끼쳤나보네요.”
요수아의 말에 쿰바홀은 손을 내저었다.

“다위드는 천재입니다. 하나님의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감사해요. 쿰 주교님이 그 애를 잘 길러 주셨습니다.”
“실비아 님, 그런 말씀 마세요.”
“쿰 주교님, 오삼 수도회 분위기가 좋지요. 그들 뿐 아니라 과거 응시반도 지금 8명이나 모여서 공부합니다. 몇 명이 합격할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인재가 나올 것입니다.”

“참, 잘 했어요. 이제는 이 늙은이 아니어도 여러분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쿰바홀은 자기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대진사 살림살이에 만족하면서도 느닷없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알로펜 총 주교가 계실 때만 해도 자기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거니 했으나 이제는 자신감이 없어졌다. 몇 달 안에 다시 돌아온 장안의 본부 살림살이가 빈틈없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좋기는 했으나 자기 없는 기간 동안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니까 마음이 허무하기까지 했다.

“쿰 주교님, 왜 그러세요.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오삼 수도회 어른들이 날마다 쿰 주교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언제 오시느냐고 귀찮을 정도로 내게 묻곤 했답니다. 아까 그들의 모습을 보셨잖아요.”
“그럼, 나도 알지. 그럼 알고말고….”

쿰 주교는 오삼 수도회 쪽으로 가려고 일어났으나 길을 바꾸어 자기 숙소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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