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 사랑이 결핍된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습니다.”
 

 

   
▲ 허달원 목사한샘교회 담임

월 : 욥의 신앙 인격/욥기 1:1~5
본문에서는 의인 욥의 인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1)순전했습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행위가 완전함을 의미하는데 그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였던 것입니다. 순전함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마 5:48).

2)정직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과 행동이 모두 바르고 곧은 것을 말합니다. 곧다는 말은 말씀에 따라 행동함을 말합니다.

또 욥은 3)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심지어 자식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을까 두려워 그들의 명수대로 변제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한 욥을 본받아야 합니다.

4)악에서 떠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일면 악에 젖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스스로 변명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의 악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에서 떠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악을 겸하여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 기도 : 순전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화 : 위안자의 태도/욥기 2:11~13
재앙을 당한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1)재앙을 당한 사람을 찾아 주었습니다. 사람이 재앙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약해지고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따라서 혼자 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아픔과 충격을 당하면 자아가 흔들리게 되고 정신의 평형이 깨어지고 맙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서 큰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또 2)욥과 아픔을 같이 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위로하려면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철저히 느끼고 이해해야 합니다. 말을 하는 것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욱 요긴합니다.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바라보고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그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고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서 낮아지시고 십자가의 고통까지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 영생의 길을 제시해야 하겠습니다.
▶ 기도 : 진심이 담긴 마음과 말로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수 : 욥의 비애/욥기 3:1~26
욥의 고통과 비애가 얼마나 극심한지 본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욥은 1)생일을 저주했습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당하는 쓰라린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난 날을 저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신앙을 인정하실 만큼 올바른 사람이었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생일을 저주했겠습니까. 잔인한 말 같지만 고통을 참되게 느낄 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2)죽기를 바랐습니다.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고통 속에서 절규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절규하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했던 절규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달려드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저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탄식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시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지만 결코 하나님 자신을 부인하거나 저주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신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절망이 아무리 커도 욥의 절망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욥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물음을 가지며 그에게 파고든 것입니다.
▶ 기도 : 고통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께 파고들게 하소서. 아멘.

 

 

목 : 잘못된 신앙/욥기 4:1~11
본문에서는 앨리바스의 잘못된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1)과거주의 신앙입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현재적인 것입니다. 과거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현재의 불신앙을 위로 받으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나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원하고 계십니다. 신앙은 날마다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율법주의 신앙입니다. 사람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완전해질 수 있다는 신앙이 율법주의입니다. 행위가 온전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벌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대하여 깨닫지 못합니다.

3)기복주의 신앙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기복주의는 복을 받은 정도에 따라 신앙을 판가름 합니다. 따라서 축복이 신앙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더 깊은 은혜를 깨닫기 원하십니다. 실제로 주를 바로 섬기다보면 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잘못된 신앙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 기도 : 내 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금 : 고난 중에 인생/욥기 5:1~7
고난 중에 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1)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앨리바스는 부르짖어 보아야 응답할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중에서 부르짖을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인데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아야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2)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앨리바스는 우리가 의지할 거룩한 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있는 인생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구원의 소망을 없애려는 것은 곧 사탄의 역할인 것입니다. 3)인생의 고난은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참된 생명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극심한 죄책감에 고민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 기도 : 고난의 인생 속에서도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토 : 사랑을 구하는 자 /욥기 6:14~30
본문에서는 욥이 진정으로 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성실함을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에게 성실함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성실치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고 변설만 늘어놓을 뿐, 욥의 아픔에 진정으로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런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책망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2)책망이 아니라 깨우침을 구했습니다. 책망과 깨우침의 차이는 이해와 사람이 없느냐 있느냐에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충고도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책망에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이해함과 사랑함이 없이 설교하면 이는 깨우침이 아니라 책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3)사랑을 구했습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견고히 해줍니다. 사랑은 모든 부족을 채워줍니다. 욥은 사랑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의로움과 씨름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주위에 사랑이 결핍된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습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기도 : 사랑에 사로잡혀 사는 복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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