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교도소 생활 속 ‘말씀’으로 변화 받고 출소, 20년간 뜨겁게 살고 있는 조 용 진 목사(예수사랑교회)

   
▲ 조용진 목사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조용진, 거지왕초에게 붙들려 훔치고, 빼앗고, 때리며 소년원 들락


출소 후 20년째 조용진 목사(63, 예수사랑교회)는 전국 교도소를 순회·방문하며 전체 강의 및 집회로 그들을 격려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수감자들이 그의 말에남다른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역시도‘죄수’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흉악범으로 12년 4개월간 형을 살았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로 총 18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생활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자리에 서 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 ‘동태눈깔 조용진’ 모욕감

조용진은 남들과 다르게 11살 때가 되어서 학교를 다녔다. 먹이를 달라고 짹짹짹 거리는 제비새끼들을 한참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가 제비집을 쑤셔서 그 이물질이 조용진의 눈에 들어가 양쪽 눈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3년간 전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살아가다가 물체가 2, 3개로 보이자 겨우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글도 전혀 모르고, 칠판 바로 앞자리에서도 잘 보이지 않으니 공부가 영 재미없어 딴전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분필을 던지면서 ‘조용진, 동태눈깔’이라고 호령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과 동시에 60여 명의 학생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조용진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수치감과 모멸감으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것이 그의 학창시절의 끝이었다. 이름도 잘 쓸 줄 모르고 한글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조용진은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거지왕초에게 붙잡혔다. 이제까지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은 저리가라였다.

깡통 주면서 ‘밥 얻어와라’ 명령하면 복종해야 했다. 밥을 적게 얻어온다든지 고기가 없으면 그 깡통은 조용진 머리로 날라오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쓰러져 기절했다. 맞는 게 일일 정도였다. 때려라, 물건을 훔쳐와라, 뺏어와라고 하면 그 말대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소년원에 들락거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조용진에게는 교도소가 천국이었다. 밖에서는 거지생활과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고, 잘 안되면 맞아죽을만큼 매를 맞았는데 교도소에서는 옷도, 밥도 주고 잠까지 그냥 재워주고, 머리까지 알아서 척척 깎아주는 것이 아닌가. 조용진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교도소가 우리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통독 23번째 시작했을 때 성경의 내용이 그제서 들어오다…
부활의 주님, 구원의 확신 받아


+ 한글을 배워 성경 읽다

그러던 어느 날 흉악한 일을 저질러 무기징역에 보호감호 10년의 형을 받았다. 얼마나 악랄한 범죄면 무기징역이 끝나도 10년은 필히 살아야 하는 보호감호까지 더해졌을까. 수갑을 2개나 차고, 그것도 모자라 수갑을 또 하나 찰 정도였다.

조용진은 22명이 함께 머무는 ‘감방’에서 신입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예수 믿느냐’를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면 반은 죽여 놓는다. 집사라는 크리스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경험 때문이었다. 한번은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을 두들겨 때리니 ‘그만 때리라’며 말문이 터진 일도 있었다.

교도관들에게도 폭언을 서슴지 않는 조용진에게 어느 날 한 교도관이 찾아와 ‘조용진 형제, 내가 당신 담당인데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조용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한글도 모르고 내 이름 석 자도 못 쓰는데 예수를 믿으라니, 누굴 약 올리나?

그래서 그 교도관이 갖다 준 성경과 찬송을 발기발기 찢어 그의 얼굴에 던지며 욕을 했다. 그렇게 몇 개월간 날마다 했는데 그래도 또 찾아오자 귀찮아 못 오게 하려고 이번에는 그 교도관 얼굴에 가래침을 뱉으며 “십 원도, 백 원도 아니고 구원을 받으라니 그게 뭔데 나에게 그러냐”며 욕을 해댔다.

그런데 그 교도관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하는 게 아닌가.
“하나님, 조용진 형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저럽니다. 일찍 하나님을 알았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 먼저 전도하지 못한 제가 죄인입니다.”

조용진은 그 기도소리에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어떤 이는 예수 믿는 자라고 하며 거짓말을 하는데 이 교도관이 믿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구나. 그가 믿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하나님이기에 저런가. 성경에는 어떤 내용이 있길래 구원을 받으라고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그렇게 조금씩 성경에 대해 궁금증이 일 무렵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이 법대생인데 특수강도로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저놈은 나에게 한글을 잘 가르쳐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제안했다.

“한 달 안에 독학으로 나에게 한글을 깨우치게 하면 너는 나의 스승이 되는 거고, 못하면 너는 징역 위에 징역을 살게 될 테니 양자택일을 하라.”

그러자 그는 한 달 안에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총각이 아가씨를 만나서 가슴이 뛰는 설레임, 그때 조용진의 마음이 그랬다.

그 시도는 적중했다. 한 달도 안 된 19일 만에 조용진은 혼자 더듬더듬 글을 읽을 수 있는 단계가 됐다. 서른두 살 때였다.

그러자 조용진은 그 교도관이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먼저 읽으라는 권유에 읽기 시작했는데, 한글이 익숙지 않아 뜻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조용진은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름 석 자도 못 쓰던 조용진, 32세에 감방에서 19일만에 한글 깨치다.
울며 전도하는 교도관의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 생겨 성경 통독 시작

 

+ 성경 속 죄인들과의 동질감

성경을 읽어도 제대로 뜻을 알 수가 없으니 한 구절을 읽기 위해서는 1천 번을 읽어야 겨우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암송이 되었다.

그렇게 눈만 뜨면 성경 읽는 재미에 푹 빠졌지만 성경 22독을 했어도 도무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23독을 하기 시작하는데, 성령께서 열어주셔서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성경 내부가 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어보겠노라고 한글을 배웠는데, 마태복음의 예수 계보인 ‘낳고 낳고’를 읽다보니 21세기에 조용진도 포함된 것을 발견했다.

이런 변화된 은혜의 삶은 그의 무기수형을 17년 유기형으로 감형받게 하여 청송교도소에서 지내게 됐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화장실을 갔는데 이상하게 음성이 들린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다’며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신자들이 교회로 오는 1킬로미터의 거리를 과실수를 따먹으면서 오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 이후에 더 깊이 성경에 몰입하게 됐다. 말씀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 그런데 입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와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였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용서하셨으니 너도 그렇게 용서하라는 말씀이셨다.

조용진의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 때리고 욕하려 들면 마음속에서 성경 말씀들이 튀어나와 ‘용서하라, 사랑하라, 겸손하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했던 조용진은 공부하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치르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9년 6개월 만에야 합격했다. 감옥에서 함께 했던 형제들 50여 명이 모두 조용진의 ‘스승’이었다. 구구단, 함수, 한문 등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마친 초등학교 과정 때문인지 중학교는 1년 만에 합격했고, 통신으로 하는 신학도 2군데서 4년 과정을 졸업했다.
“한마디로 법무부에서 유치원부터 대학원과정을 모두 마친 셈이지요.”

 

   
 

+ 죄인이 죄인을 구원하다

험악한 죄수, 꼴통에서 예수 또라이로 변화하더니 조용진은 지금은 목사다.
17년 유기수에서 12년 4개월 만에 출소했는데, 사실은 그 안에서 6년을 더 자진해서 살았다. 신학공부에 열심히 하며 성경을 탐독하고 있었는데 나가서 뭐하겠는가, 여기서 주님이 나를 양육시키고 계시지 않는가 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경을 읽으니 교도소 출신이 국무총리가 된 얘기(요셉), 살인자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모세) 된 이야기 등 죄인이 구원받게 되는 일들 투성이었습니다.”

신기했다. 그리고 거기서 힘을 얻었다. 나도 그런 죄인인데….
그리고 간음한 여인이 사형 받는 제도 속에서 그를 예수 앞에 데려오자 그 죄가 사면 되는 것을 보면서 “죽을 사람도 살리는 예수,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삶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35세 때였다.
“처음에는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의아했는데, 성경 인물들 중에 말썽꾼이 많았고, 교도소 출신도 있고, 십자가 옆 강도가 구원 받는 것을 보고 100% 구원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 것은 다 버려도 아깝지 않았다. 영원한 것이 있는데, 사도 바울 같이 예수 안에서 올인하자. 내 모든 것을 예수께 걸자. 지금까지 40년간 내 맘대로 살아왔는데, 이후에는 예수로 살자.

조용진의 결심은 요동치 않았다. 그 안에서 자격증도 5개 따고 기독교 회장도 하면서 열심히 매진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전도했던 교도관은 판사에게 ‘조용진, 이 수용자를 제가 직책을 걸고 책임지겠으니 한번만 선처를 베풀어 달라’며 탄원서를 써주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면 공무원이 자기 직책을 걸고 이 정도까지 할까. 재판장이 탄원서를 수용할지 여부를 판결하기 전 조용진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다짐하라는 얘기를 하라고 해서 울면서 얘기했더니 모든 판사가 울며 감형을 받아들였다.

12년 4개월 만에 출소한 조용진은 출소 4일 만에 막노동판에 가서 일했다. ‘나를 유능하게 만들어주신 스승님(수용자들), 괴수를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신 교도관에게 보답하고자 청송 교도소 형제들에게 영치금을 넣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년간 자비량으로 전국교도소를 다니며 사역하고 있다.

출소해서 신학을 하며 지금의 아내(박종애 강도사)를 반려자로 만나 힘있게 사역하고 있으며, 총신대학원 논문 과정 마지막을 하고 있다.

자비량으로 하기 때문에 복숭아 농장(주은농장)을 운영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출소자를 취업시켜 안정적인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취업박람회를 열기도 하고, 출소자 2명을 데리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수익금은 전국 교도소 사역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120회 정도 했는데, 한 번 갈 때마다 500여 명의 수용자와 직원들이 먹을 음식, 그리고 꼭 필요한 이들의 영치금까지 감당하려면 적잖은 재정이 필요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식사하는 시간, 교회 권사님이 동석했다. 목사님이 교도소로 가지고 가는 음식은 최고급으로 준비해서 간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제 스승들(수용자)에게 찾아가는데 어떻게 아무거나 들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직원들까지 모자라지 않게, 흡족하게 준비해서 간다. 그 권사는 15년 이상 한결같은 조용진 목사의 모습에 늘 배움이 많다고 말한다.

 

출소 후 복숭아 농장하며 자비량 교정사역 20년…천연비누 개발해 자금 조달

 

+ 죄인들의 표상이 되고 싶어

강도사 생활을 12년간 하고, 목사안수 받은 지는 만 4년이 된다. 출소한 이들 중에서 예수 믿어 변화됐다고 하는데, 어느날 보니 또다시 재범한 이들이 많은 속에서 조용진은 ‘진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목사안수도 받지 않으려는 생각이 많았다.

전과자 수식어가 붙어있으면 교도소 직원들도 잘 인정하지 않는 풍토였다. 그래서 조용진 목사는 나 한 사람이라도 인정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컸다.

그 결실은 이루어져 법무부에서 출간한 책에도 간증수기로 조용진 목사의 이야기가 실렸고, 이번에는 법무 연수원 7급 공무원들이 전국 교도소에 배치되기 전에 받는 연수교육 강사로 초빙을 받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여주교도소 교도관이 찾아와 교정위원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힘껏 활동하고 있다. 흉악범 출신에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만큼 인정을 받은 것이다.

   
▲ 로하브 비누 개발자인 큰딸 주은 양, 서울신대를 졸업했다. 조용진 목사 가족 모두는 이 제품으로 자비량 사역에 큰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 장사꾼의 방식이 아닌 ‘복음의 사람’으로서 판로자를 찾고 있다.

한편 딸 ‘주은’이가 천연비누(로하브, ROHAB)를 개발해서 지난해 10월 특허를 받았다. 여드름, 아토피, 무좀, 습진, 가려움증 등 산야초로 만든 천연비누를 사용해 본 이들의 반응이 벌써부터 뜨겁다.

조용진 목사가 공부하는 총신대 신대원 동기 목회자들, 전국 교도소 관계자들, 집회 초청한 교회들에서 소식을 듣고 사용한 이들의 재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진 목사 부부는 이 비누가 만만치 않은 가격(5만원)이지만 피부가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선물과 같은 것이 되고, 판매이익금으로는 교정사역을 더 잘 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복음에 방해되면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한다.

상업성을 배제하고 판매에 달란트가 있는 기독인을 만나 자신들은 개발과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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