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7

안토니 주교의 소식이 왔다. 지난번 어느 승려의 인편처럼 또 서찰 한 장을 들고 찾아온 사람은 삼장법사의 제자 되는 한 엄이다. 한 엄은 삼장의 문하에서 성장한 유능한 승려다.
그가 내미는 서찰을 쿰바홀이 받았다. 쿰바홀은 한 엄을 영부 주교에게로 안내하지 않고 요수아 사제의 방으로 인도했다.

“요수아 님, 손님이 오셨어요. 반가운 소식을 가져 왔네요. 안토니 주교가 박트리아에서 보낸 서찰입니다.”
“박트리아, 왜 거기에 계실까요? 지금쯤 로마에 계셔야 하는데….”
요수아는 반가우면서도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방문객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안토니 주교가 직접 전하는 서찰인가요?”
“네, 주교님은 지금 박트리아 계시는데 건강이 좋지 않으시더군요. 일행들과 함께 저희 승려들의 사원에서 요양하고 계십니다.”

요수아는 옆에 앉아있는 쿰바홀 주교를 조심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어찌된 영문일까요?”
“우선 서찰부터 살펴봅시다.”
쿰바홀이 요수아 앞 탁자에 놓인 서찰을 만지작거릴 때 시몬이 들어온다.
“시몬! 어서 와요. 안토니 주교 소식이 왔어요.”

“그래요.”
쿰바홀이 안토니의 서찰을 열었다. 첫 부분에 눈을 주었다가 요수아에게 서찰을 넘긴다.
“요수아 님이 읽어 보시오.”
요수아가 읽어 내려가다가 멈추더니 한 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많이 아프신가요?”
“몸이 아프다는 것은 연세가 있으니 그에 따른 노쇠증세인 듯 했고요. 뭔가 여행목표가 어긋나서 마음고생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저희에게는 더 깊은 말씀이 없으셨어요. 서찰 내용에 그 어른의 심경이 표현되지 않았을까요.”

요수아는 한 엄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읽어 내려갔다.
“글쎄요. 그냥 안부 내용이군요. 콘스탄티노플에서 로마에 가지 않고 돌아오다가 발길이 박트리아 쪽으로 잡혔다는군요.”

“아참, 지난번 서찰에서도 박트리아 이야기가 있었죠. 쿰 주교님.”
요수아가 쿰바홀에게 묻는다.

“그래, 그렇지요. 박트리아에 사는 승려가 서찰을 가져왔지요. 참, 여행 떠나기 훨씬 전에도 안토니 주교는 박트리아 이야기를 종종 했었어요. 또 젊었을 때는 그 곳에 상당기간 머물면서 생활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상할 것이 없군요. 그 어른이 박트리아에 대한 애정 때문에 거기에 머무시는 것이니까.”

“그럼, 저는 일어나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잠시만요.”
요수아는 한 엄과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다.
“안토니 주교님 신상관계는 서찰에 다 나와 있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박트리아 지역 분위기입니다. 안토니 주교가 이곳 장안보다 박트리아를 더욱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까 그곳 사정이 궁금하군요.”

요수아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엄이 밝은 표정으로 웃는다. 그는 대진사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안토니 서찰 한 장에 너무 민감하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아, 나는 무슨 말씀이라고…, 박트리아는 장안의 분위기와는 다릅니다. 마치 종교들의 향연을 편 것처럼 모든 분위기가 종교적입니다. 또 종교들 간의 다툼이나 질시는 거의 없고 서로를 존중하는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아시겠지만 박트리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고 곧바로 박트리아까지를 이어서 동서를 융합하는 세계제국을 세운 곳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황후가 박트리아 여인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박트리아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단명으로 세상을 떠난 후 박트리아는 동북방의 흉노세력이 대월지라는 나라를 기원전 250년경에 세웠고 이어서 스키타이(사카)족의 나라, 다시 인도의 통일왕조인 마우리아 왕국의 차지가 되기도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여러분의 종교 어른인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동방박사들이 박트리아 사람이고 또 예수님이 한때는 박트리아에서 활동했었다는 전설이 있죠.“

“아이고 한 엄이시여! 어디 박트리아뿐인가요. 사마르칸트에서도 예수님의 활동 흔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요수아였다.
“저희 코초는 물론 서역 지역에서도 예수님이 다녀가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쿰바홀의 말을 이어받은 한 엄은 북부 인도는 물론 티베트 지역에는 여러 곳에 예수님이 ‘이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문서가 있다고 말하자 모두 큰 소리로 웃어 넘겼다.
“이는 우리 예수님이 박트리아는 물론 아시아 전역과 친근하기도 하고 성격에 맞다는 증거 아닐까요?”
쿰바홀의 말에 요수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야기를 마저 하지요. 박트리아는 지금도 예수님이나 석가모니 같은 큰 스승이 가까운 시일 안에 오신다고 믿는 이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런가요? 그럼 안토니 주교님이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보다 먼저 만날 욕심으로 그곳에 남으려 하는 것일까요?”

“쿰 주교님도 그리 생각하세요. 저 요수아도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마르칸트 요한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게 뭔가요?”
시몬이다.
“안토니 주교는 어렸을 때부터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는 재림주의 오심을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재림주가 오시다니요?”
한 엄이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신다는 약속인데 이는 주님 자신이 친히 하셨고, 요한 묵시록에도 기록되어 있지요.”

요수아의 답변에 한 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불교에도 있습니다. 부처님이 늘 오고 계십니다. 보살의 경지는 불제자들에게 늘 열려 있답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부처라고 하잖소.”

쿰바홀이 아는체했다.
“뭐 그럴 수 있죠.”
다시 한 엄의 말에 쿰바홀이 나선다.
“우리 기독교의 요한복음을 읽으면 그 책의 저자가 예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이는 제자가 예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이 됩니다. 또 예수님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실 때의 모습을 ‘첫 번째 부활’의 인물로 성경은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는 부활의 은총을 받은 자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시작과 그 완성의 간격을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 놀라운 표현이십니다. 쿰바홀 주교님.”
한 엄이 쿰바홀을 추켜세운다.
“아닙니다. 그건 빈틈이 너무 많아서 자칫 궤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쿰 주교님은 누구에게 그런 신학을 배우셨나요?”

듣고만 있던 시몬이 자기보다 훨씬 연륜이 깊은 쿰바홀 주교의 언행을 궤변이라고까지 거친 표현을 하고 있었다.

“아니 시몬! 무례하군. 신학의 논쟁을 하더라도 예의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쿰 주교님의 재림예수의 표현은 매우 신선하게 들립니다. 예수님의 재림문제는 많은 일화가 있지요. 우리 기독교의 최초 선교사인 바울 선생은 마치 자기 당대에 예수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데살로니가교회를 가르치다가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고, 2세기나 3세기에도 성령중심 열광주의자들의 재림소동도 역사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지난 역사 과정에서 쿰바홀 주교님의 논리는 ‘복수 메시아’의 재림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네요. 재림예수는 어떤 모습일까요? 처음 오셨을 때처럼 나사렛 여인의 몸을 통해서일까요? 아니면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까요? 이는 자기 신앙 성장이나 발전과 함께 앞으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입니다.”
요수아의 말을 듣고는 모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한 엄은 떠났다.

요수아가 오후 시간에 대표 주교인 영부에게 안토니의 서찰을 전했다. 서찰 내용은 사절단을 대표하여 로마 교황을 만나러 간 사람이 콘스탄티노플까지만 갔으며, 총대주교를 면회했다는 간단한 내용뿐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토니 주교님이 지금 박트리아에 머물러 계신답니다.”

“거기에서 뭐하고 계신답니까?”
“그곳 박트리아에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답니다.”
기독교 신자뿐 아니라 마니교나 조로아스터교는 물론 심지어 불제자들도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데, 오시는 지상의 장소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박트리아라고 한답니다.“
“그런 유혹에 안토니 주교가 빠져있다는 말인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
“허어, 큰일이 아닙니까. 당 황제의 친서까지 가지고 간 어른이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그 어른은 평생 그런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시는군요.”
“네, 평생이라니요?”

“아주 오래 전 총주교님이 재림사상을 제게 가르쳐 주시면서 안토니 주교님의 청소년기의 방황을 말씀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요수아는 듣고만 있었다. 그 자신도 사마르칸트 요한 주교님으로부터 안토니 주교의 재림신앙을 얼핏 들은 일이 있었다.

영부 주교가 요수아에게 질문을 던진다. 빙긋이 웃으면서.
“요수아 님은 재림주 문제를 어찌 생각하시오?”
“네, 주교님. 저는 주께서 오시면 오시는 날이 그날인 줄로 압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표 주교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대진사 중심의 당나라 각지의 복음운동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도 지금과 같은 자세로 모실 것입니다.”

“그건 너무 느긋하다. 자칫 자만심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저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교회가 에베소종교회의(AD431)에서 우리들의 스승이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저주하고 추방했을 때, 그리고 우리 선임 선교사들이 에뎃사에 결집하여 교단을 세우고 신학교를 개교했던 때(AD 451년)가 재림시대를 여시는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단은 로마제국교회보다 한 단계 올라선 신앙운동을 해야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서도 흠이 없을 만큼의 교회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사명이고 요수아 사제의 신앙 고백이잖아요.”
“저뿐 아니라 제 앞에 계신 대표 주교님은 물론 우리 교단 모든 지도자와 신도들의 당당한 재림 주 영접의 자세이기를 바랍니다.”

“야, 요수아 사제는 대단한 신앙을 가졌군요.”
“어찌 그렇게 말씀하세요. 저는 대표 주교님께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영부 주교는 마리아교수와 알로펜 총주교님께 배웠지요.”
“핫, 하하하….”

쿰바홀이 주교좌 입구를 막 들어오다가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니 두 분이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쿰바홀 여기 있습니다.”
“쿰 주교님. 어서 오세요. 지금 요수아님과 재림예수 모시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습니까? 요수아 사제는 신학자입니다. 저희 교단의 큰 인재입니다.”
요수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쿰바홀 주교 앞에 선다. 고개를 숙여 마치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선생님 앞에 선 모습과 같았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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