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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반역자가 되지 말자[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39-4>
無然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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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호] 승인 2016.02.03  14: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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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16세기였다. 곧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항의 반박문을 내걸고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종교개혁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현실이 되었다. 세월 속에서 개혁의 주체들이 변질하여 대다수가 반역자 집단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521년 루터와 쯔빙글리가 ‘변체설과 상징설’이라는 차이의 성찬론 시비를 가리지 못하여 결별한 이후 종교개혁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1530년대 제네바의 칼빈이 개혁운동에 뛰어들면서 활기를 찾는가 했으나 본격 개혁을 요구하는 취리히 쯔빙글리 7제자들이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시도하면서 다시 개혁의 봉화가 오르다가 개혁자들의 자중지란으로 로마 교황주의 교회(가톨릭)에게 어부지리를 주었다.

교회의 개혁은 그날 후 ①개혁주의 ②대의주의 ③회중주의 ④경건주의 ⑤낭만주의 ⑥전체주의 ⑦공산주의 운동으로까지 몸부림치다가 드디어 종교개혁운동의 선봉장이던 마르틴 루터의 후예들이 ‘루터파 교회’라는 둥지를 틀고 교파주의의 탐욕에 빠져듦으로 종교개혁운동은 반역자들의 무대가 되고 말았다.

종교개혁의 지식적 기반이 약한 한국교회에서는 ‘교황권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일어난 16세기 개혁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대형교회운동의 함정에 빠져서 교황권 흉내를 내면서 버티고 있으니 한국교회 다수는 로마 가톨릭의 꼭두각시가 되어가고 있다. 로마 가톨릭에는 교황이 그나마 한 명인데 한국 프로테스탄트 안에는 수많은 교황 흉내 내는 자들이 버티고 앉아서 종교개혁의 배반자 노릇을 하고 있다.

참으로 불행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로마 가톨릭은 겉으로는 미소 지으며 웃고 있으나 기독교 신교를 교회로 보지 않는다. (베니딕토 16세 교황) 뿐 아니라 후하게 대접하여 ‘집 나간 형제들’ 정도로 기독교를 얕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천만다행히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들이 잘못 걸어온 개혁교회의 전열을 가다듬고, 반성하고,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 힘을 모아서 개혁운동을 계속해 줄 수 있는 전환점에 와 있다.
드디어 찬스가 왔다. 위기는 찬스다. 개혁의 반역자 집단으로 끝나지 않고 21세기 세계 교회사의 종교개혁 선봉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왔다.

준비하라! 500주년이면 반환점이다. 반전의 찬스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다. 반드시 이 기회를 뜻 있는 한국교회들은 힘을 모아서 붙잡아야 한다. 세계 선교의 막바지에 이르러 해 뜨는 극동 아시아에서 일어난 한국교회가 드디어 16세기 개혁자들의 뜻을 받들어 21세기 세계 기독교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후진국도, 후진 기독교도 되지 말자. 잘못 길들여진 상처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교회가 다시 태어나고 반역자 집단에서 최고 최선의 충성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선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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