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인 목사
한국회복사역연구소 소장

중독자 가정의 성인아이들은 역기능 가정을 끝까지 돌보려는 추적자와 도망자의 길을 선택하는 동반의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38세인 A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폭력, 외도, 경제적인 무능력에 대한 갈등으로 A씨가 중학교 1학년 때 이혼했다. 이혼 일 년 뒤 아버지는 술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시장 골목의 길모퉁이에 대폿집을 운영하면서 세 모녀는 시장 근처의 단칸방에서 살았다.

술꾼들의 술주정, 어머니의 문란한 성생활을 지켜보면서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중고등학교의 시절을 보냈다. A씨는 친구들이 대폿집 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친구들을 피하고 부모와 가정에 대한 수치심으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술주정을 받아주고, 빨래, 청소 살림 등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서 책임져주고 돌봐주는 엄마의 대리배우자 역할을 담당했다. 분노가 많았던 동생은 이러한 가정이 싫었던지 가출과 비행을 일삼는 학교의 문제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A씨는 교회에 출석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차츰 선교에 소명도 갖게 되었다. 교회의 부흥성회, 영성 세미나를 열심히 출석해 보았다. 답답하고 컬컬한 심령이 일시적으로 채워지는 듯했다. 그러던 차 모 선교단체의 제자훈련(3개월 합숙훈련, 3개월 Outreach)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머니를 동생에게 맡기고 훈련에 참여했다.

3개월 합숙훈련이 끝나고 인도로 Outreach를 떠났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돕는 것이 너무 즐겁고 보람찼다. 그는 인도의 평신도 선교사가 되어 10년 동안 인도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헌신했다. 쉬고 싶던 차에 안식년을 맞아 귀국해 어머니와 동생을 볼 수 있었다. 분노가 많고 성질이 사나운 여동생과 어머니는 자꾸 부딪혀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속이 상한 어머니는 더 심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A씨는 선교지로 돌아와 어머니와 여동생의 삶을 떠올리면서 자기만 이곳에서 행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으로 괴로웠다. 인도에서 8년째 되던 해 목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2년 후 남편이 모교회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게 되었지만 남편의 박봉으로는 전 월세를 해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여동생과 갈등의 골이 깊어져 더욱 심각한 알코올과 담배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건강이 의심될 정도로 안색도 안 좋아 보였다. 여동생은 화를 내며 더 이상 어머니를 보기 싫으니 자기는 분가하겠다고, 나머지는 언니가 책임지라고 선언했다. A씨의 부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어머니와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인지 분가를 해야 하는 것인지 구분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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