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밖에 인재를 기르지 못한 해당 교파(교단)와 한국교회 모두는
인륜과 한국인 모두 앞에 사죄하는 마음뿐이다.


사람은 돌발적 위기를 만나면 당황하여 헤쳐 나갈 길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지난 번 부천에서 일어난 독일 유학파 40대 목사가 숨진 자기 딸을 방안에 11개월이나 방치했다가 경찰 수사를 받고 살인 혐의로 구속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뜩이나 사회의 시선이 차가워서 고심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청천병력이었다.

어찌하다가 그 지경이 되었을까? 그 사람,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나약하고 또 자기 허물과 죄를 고발할 수 있는 힘이 없었나. 그 부부의 정황을 다 알 수 없고 또 수사선상에는 진실의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단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래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사람, 신학대에서 강의하는 교수신분까지 가진 사람이 어찌하여 그 같은 짓을 해서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슬프고 또 부끄럽게 하는가? 자기 수련이 부족했다. 수양과 훈련이 제대로 된 인격자가 못되었다. 구원받은 확증과 거듭난 자의 교리적 징표 그 이상으로 성령 하나님께 지도와 인도를 받는 신앙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 같은 범죄를(사고를) 저지르고도 어느 누구와 상의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나? 친구도, 형제도, 부모도, 스승도, 하나님까지도 그를 도와 줄 수 없을 만큼 고립된 사람이었나? 원통한 일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그런데 구속사유에 살인죄가 첨부되었다. 그러나 본인은 한사코 살인행위를 부인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를 보고 들으면서 짜증이 났다.

그같이 된 마당에서 범죄의 실체를 구분해서 뭐하나? 생부로서 자식을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 자기 고백대로 하더라도 5일 동안 두들겨 팼는데 그 폭력행위 과정에서 본인이 지치니까 쉬어가면서 두들길 정도이면 어린 10여살의 딸이 죽지 않고 어떻게 견디겠나. 또 아무리 양보해서 살펴도 부모가 자식을 죽일 마음이야 있었을까하고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폭력행위 진행 중에 살의(殺意)가 스쳐가기도 하고 또는 잠재의식 속에서나 환상 등의 정신적 착란 현상이 발생하여 순간 또 어느 순간에 살의를 품은 몽둥이가 피해자를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피가 흐르는 자식을 그 모양 만들었고 또 ‘죽음’을 방 어느 구석에 방치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사체를 모욕한 죄까지 포함하면 나는 살인자, 살인자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자청해야 옳을 것이다. 법망을 피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본인 자신은 물론 한국교회와 하나님의 명예까지 더럽힌 마당에 더 무슨 변명을 해보려 드는가.

구차하다. 지켜보기도 지친다. 범죄가 들통난 후 수사 진행 과정이나 현장검증 과정에서도 숨으려고만 했다. 그 얼굴, 그 낯짝 드러내놓고 나는 하늘 아래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용기마저도 없는 비겁하고 참으로 나약한 사람처럼 보인다.

살면 뭐하나. 그렇다고 자결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제발 제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과 한국교회, 인륜 전체 앞에서 정직한 고백을 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밖에 인재를 기르지 못한 해당 교파(교단)와 한국교회 모두는 인륜과 한국인 모두 앞에 사죄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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