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9

   
▲ 둔황 모래 사막의 명사산 한 가운데의 월아천에 자리한 기념관

황제의 진노가 있으리라는 궁성 주변 분위기와는 달리 아무 일 없었다. 오히려 영부 주교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대단한 뱃심이야, 기독교가 가진 힘인가. 입당한 지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종교가 자기네보다 수백 년 앞선 타종교에 대해 배려할 수 있음에 대한 찬사였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특정 종교를 떠나서 민심이 나뉘어졌다고 보면 좋겠다. 며칠이 지난 안식일날, 코초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마리아 교수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영부는 당장 달려갈 채비를 했다.

“주교님, 그냥 장안에 계십시오. 불교가 탄압을 받고 있음은 곧 우리에게도 그 불똥이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장례식에 다녀오시자면 몇 달이 걸립니다. 장례식은 보그와 가그가 잘 치를 것입니다. 제비처럼 날아가도 불가합니다.

“…….”
쿰바홀 자신도 코초에 지금 가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장안은 물론이고 주변 도시 교회들도 둘러보고 무엇보다도 안토니가 이끌다가 자리를 비우고 로마 여행 중이니 뱀골에 가보고 싶었다.

“마리아 교수님이 섭섭하지 않을까요. 쿰 주교님!”
영부 주교는 자신 없는 말을 했다. 쿰바홀은 “마리아 교수님이 웃으십니다. 우리가 언제 체통과 격식으로 살았습니까. 이제 마리아 교수님은 알로펜 총주교님 곁에서 우리 아시아와 세계기독교 앞날을 지켜 주시고 기도하실 터이니 아무 염려 마시라”고 달래 주었다. 영부 주교는 눈물을 흘리면서 허공을 향하여 눈을 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코초에서 다위드와 드보라, 쿰보그가 장안으로 왔다. 영부는 마리아 교수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들어서는 다위드와 눈이 마주쳤다. 다위드의 눈과 그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영부 주교가 달려가서 마리아 교수의 영정을 받아들려 하자 다위드가 몸을 살짝 비틀어 거부의 뜻을 밝혔다.

“교수님 모실 자리로 가시죠.”
다위드는 언제 어른이 됐을까. 애어른이라 해야 하나. 그의 키도 훤칠하게 컸고 무엇보다도 그의 표정이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엄숙했다. 엄숙보다는 가까이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경건이었다.

영부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이 영정을 따라서 걸었다.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뒤따르고 있었다. 알로펜 총주교가 평소에 사용했던 서재 앞에 영정을 모시기로 순간 판단했다.

영부 주교가 말했다.
“여기 총주교님, 서재에 영정을 모심이 어떨지요?”
“아, 거기는 대표 주교님이 쓰시지 않나요?”
쿰바홀이다.

“아, 아닙니다. 마리아 교수님이 장안으로 오시면 편히 사용하시도록 비워두고 있습니다. 이리로 모시지요.”

영부 주교가 앞장섰다.
영정을 안치하고 영부 주교와 쿰 주교가 영정 앞에 나란히 섰다. 마리아 교수는 청정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살짝 웃고 있다.

“주교님, 상심이 많으셨죠. 저희들 코초와 사마르칸트 판지갠트 형제들이 모여서 추모제를 올리는 것도 교수님이 떠나신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였어요. 묘지는 처음 가묘 상태인대로 확정했고 장소는 저희 코초 선교단 광장 상단에 위치한 자리입니다. 저희들 마음대로 한 일이라 주교님께 매우 송구합니다.”

쿰보그의 보고를 들은 영부 주교는 오히려 큰 일을 치르는데 명색이 대표가 한 일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거듭거듭 말했고 또 수고에 대해 치하했다.

“본부에서 추모행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부는 드보라와 다위드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추모행사보다는 환영행사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드보라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 주교님, 드보라 교수님 말씀은 마리아 교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장안으로 오셨고 총 주교님과 함께 당나라와 주변 아시아 대륙 선교를 직접 지도하실 기회를 드리자는 뜻인 줄 압니다.”

다위드의 말에 쿰바홀 주교가 껄껄 웃으면서 다위드의 등을 두들겨 주고 있었다.

“주교님, 드보라에게 내가 수행했던 직무를 인계한다 하셨어요. 마리아 교수님이 알로펜 총주교님을 감독하셨듯이 드보라 수녀님이 교수님의 직분으로 영부 주교님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우실 것입니다.”

다위드가 드보라와 영부 주교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드보라 수녀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충성스럽게 일하겠습니다.”

영부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내일 오후 마리아 교수님 환영식을 가지겠습니다.”
영부는 드보라에게 다가가서 머리 숙여 인사했다.

다음날, 박트리아의 안토니 주교의 제자 두 사람이 삼장 법사의 제자인 한엄과 함께 나타났다. 마리아 교수의 추모제 시간 직전이었다.

“그래 안토니 주교 제자라고 했지요.”
쿰바홀이 페르시아 출신인 익스라와 에디커에게 확신을 했다.
“네, 저희는 안토니 주교님으로부터 메시아 예수를 배웠습니다. 장안에 가서 쿰바홀 주교님을 뵙고 박트리아 사정을 말씀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저 젊은이들은 제가 박트리아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저를 먼저 찾아온 것이랍니다.”
“그래요. 일단 추모시간 지나고 봅시다. 한엄 스님은…?”
“저도 참석하겠습니다. 마리아 교수님의 생전 소식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훌륭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쿰바홀이 한엄을 좌석으로 안내했다. 추모의 시간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드보라가 나서서 마리아 교수와 함께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알로펜 총주교님과 마리아 교수님이 이루어주신 중앙아시아와 당나라 권 선교의 틀을 소중한 유산으로 알아야 합니다. 두 어른은 백여 년 세월 동안 아시아와 세계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처럼 되게 하자는 뜻으로 우리를 이끄셨습니다. 마리아 교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시간까지 제게 당부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영부 주교님, 쿰바홀과 안토니 주교님의 이름을 부르시며 감사했노라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를 든든하게 믿고 있다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 곁에서 지켜주고 기도로 돕겠다 하셨습니다. 저는 두 분 어른을 만난 지가 40여년이 되는데 두 어른으로부터 이런 교훈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주 예수를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품속으로부터 태어난다 하셨어요. 그리고 그로부터 사는 날까지 현생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이루어 가고, 이 세상의 옷(육신)을 벗는 날 다시 영적인 몸(인격)으로 영원히 사는 이른 바 삼생(三生)을 산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이것을 두고 영생이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이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말씀드릴 때오늘 모임을 추모제가 아닌 마리아 교수님이 코초 활동을 마치고 당나라 현지에 오셔서 우리를 지도하시는 날의 환영식이라 했었지요.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저와 같은 마음이실 줄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보라의 선언이었다. 마리아의 교훈이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승려 한엄은 처음 들어본 이야기였다.

현생과 내생을 산다는 말은 불교에도 있으나 과거의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인데, 과거를 하나님의 품속에서 사는 날들이라니 신기했다. 불교의 전생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벌레와 같은 미물인지를 누가 안다 할 수 없는 것인데 기독교는 전생이 하나님 나라였다니 충격이었다.

한엄은 익스라와 에디커를 데리고 쿰바홀이 이끄는 방으로 갔다.
“지루하지 않으셨소이까? 스님!” 하면서 쿰바홀이 한엄에게 다가섰다.

“아니옵니다. 특히 삼세(三世)를 사는 기독교 이야기를 처음 듣는 터라 감격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놀랐으나 생각을 거듭해 보니 기독교의 가르침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주교님, 저희도 그렇습니다. 저희는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말씀이었어요. 안토니 주교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더군요.”

익스라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에티커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형제도 소감이 있으시면 말해 보시오. 괜찮아요. 우리는 늘 대화 할 수 있어요. 의견이 달라도 상관이 없지요.”
쿰바홀의 넉넉한 배려에 에디커가 말했다.

“저는 거북하게 들렸어요. 그렇게 되면 인간이 아니라 신(神)이 되는 거잖아요. 인간의 분수를 뛰어 넘었다고 할 수 있겠더군요.”
“네, 옳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신의 경지까지 포함하고 있지요. 거듭남의 절차는 인간본래의 모습, 곧 타락 이전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죠. 에덴에서 추방되었던 생명들에게 에덴의 주인이신 메시아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신의 권세를 가지고 살게 하셨습니다.”
다위드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에디커는 물론 한엄과 익스라도 다위드를 뒤돌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들 그러세요. 앉으세요. 제 말이 당돌했나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쿰바홀이 안토니의 건강을 걱정하자 에디커가 안토니 주교는 얼마 사시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이 있었노라고 했다.
“그럼, 안되죠. 박트리아 가는 길이 있으면 제가 한 번 다녀왔으면 합니다만….”

다위드가 박트리아에 갈 결심을 말하자 한엄승이 안내를 자청했다.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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