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자기 인생을 사신 예수처럼 오늘의 너와 나는
오직 십자가 죽음의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메시아 예수, 우리 인류의 구세주는 요한복음의 시각으로는 6장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면 너희 속에 생명이 있느니라”하신 말씀을 남기시고 곧바로 십자가를 향해 달음질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신 속도는 6장까지가 사실상 공생애 3년차이기 때문에 죽으시는 해이며, 11장, 12장 이후는 마지막 유월절 기간에 해당한다.

이 같은 요한복음서의 지면 배열을 보면,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수는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명령으로 알고 계셨다.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행위)이신데 하나님의 요구가 오로지 십자가 죽음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오늘의 기독교, 세계 기독교의 승부는 오로지 십자가이다. 지성과 철학을 안다는 유식한 기독교 신자도 그 사람의 마지막 행위(믿음)는 십자가 죽음을 선택함으로 완성된다. 심지어 1818년에 태어나서 유물론 철학의 황제처럼 살았던 카알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으나 그의 사상적 흐름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소원은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 그것을 고통당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처럼이라고 했었다. 마르크스를 변질시킨 그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겠으나 마르크스의 사상, 헤겔 좌파의 영웅사상 형태인 임금 노동자 운동은 그의 사상의 완성도를 십자가의 예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를 편 사람은 예일대학교 역사학 교수였던 프랭크 터너(1944~2010)이고, 필자 또한 오래 전부터 카알 마르크스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은총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또 한 사람 무함마드(AD 570~632) 역시 그의 종교인 이슬람 구조를 보면 오직 하나님 또는 무슬림으로서의 복종하는 인생, 천국에서의 인간 완성, 인류 전체가 하나님 앞에 복종할 때까지 그의 모든 가르침이 메시아 예수 앞에서의 배움이었다.

유대 이스라엘의 모세까지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형제 중에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 하였다. 모세는 마지막 선지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했다. 그러므로 모세(율법)의 완성은 메시아 예수가 되는 것이니 유대교와의 관계 또한 기독교가 할 나름이다.

바로 그분,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 앞에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처럼 십자가로 달려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예수 앞에서 딴 궁리가 필요 없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신 말씀을 지켜 십자가로 자기 인생을 사신 예수처럼 오늘의 너와 나는 오직 십자가 죽음의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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