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70

황제가 영부 주교를 급히 찾는다. 대진사 선교 업무는 장년기에 접어든 다위드가 많이 했다.
다위드의 올 해 나이가 마흔 다섯 살, 영부 주교는 팔십 다섯 살이다.
“주교님, 어서 가세요. 황제께서 급히 부르신다는 전갈이 거듭 왔습니다.”
다위드가 다급한 독촉을 거듭해도 영부는 쉬이 움직이질 않았다.

   
▲ 중국 난주의 한 박물관에서 만난 유적들

안사의 난
천보 14년(AD 755) 당나라는 지금 반란군이 궁성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안록산이 범양을 근거지로 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란계 소그드인 부친과 돌궐출신 모친의 피가 흐르는 인물이다. 일찍부터 당나라를 집어삼킬 욕망을 키었던 매우 음흉한 인물이었다. 그가 황제와 양귀비의 총애를 받아 반란을 일으키기 전까지 평도, 범양, 하동 등 무려 3개 절도사를 겸하였고 그의 막강한 힘은 당나라 전체 병력 30%가 넉넉했으니 무서운 세력이 되어 있었다.

황제는 갑자기 심약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경들은 어서 대책을 내세우시오.”
일부 대신들은 안록산의 거병 초기부터 대안은 고선지 장군 뿐이라고 했다. 황제는 고선지를 출병시키기도 했다. 고선지는 탈루스 전투 패배 후 몸을 낮추고 있었는데 드디어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탈루스 전쟁터에서 사라센과 투르크 연합군에 패배한 것을 이번에는 말끔히 씻어낼 다짐을 거듭하면서 병력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제의 출병 명령이 지연되고 있었다. 대신들 중에 고선지 출병 불가자들이 있었다.
“고선지도 이민족이 아닌가, 그러다가 안록산과 고선지가 합세라도 하는 날이면 그 뒷감당을 어찌한단 말이오?”

“고선지는 그런 인물이 아니죠.”
“뭐 안록산은 그런 사람이었소?”
대신들의 의견이 팽팽했다. 황제는 대신들의 가불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질문했다.

“한인 출신 장수들이 그리도 없소?”
“네, 적임자가 있기는 합니다. 안서 절도사 봉상청입니다.”
“오호, 그렇지. 그를 부르라!”

황제의 명에 의해 안서 절도사 봉상청이 정규군과 지원병을 합쳐서 6만 명으로 낙양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안록산의 반군이 낙양으로 멀어 닥치자, 변변한 전투도 해 보기 전에 봉상청의 방어군은 무너지고 말았다. 대신들은 더는 방법이 없어서 고선지를 투입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고선지는 화정궁으로 가서 황제 앞에 엎드렸다. 황제는 고선지가 입시하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어서 오라고 손을 내밀면서 무한한 신뢰를 보인다는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고 장군, 어서 빨리 반란군의 무리를 물리쳐 주시오. 내 그대에게 빠른 기병과 궁수 등 정예병을 주겠소. 어서 속히 반란군을 진입하여 내 근심을 덜어주시오.”

“네 폐하, 내 반드시 반란군을 평정하겠사오니 부디 옥체를 보중하소서.”

궁을 나온 고선지는 출정 준비를 했으나 출정 군사가 많지 않았다.
황제가 약속한 정예군도 생각보다 적었다. 낙양으로 진군하면서까지 군사를 모았으나 10만 명이 채 되지 못했다.

황제는 고선지에게 무한 신뢰를 한다 했으나 감독관으로 변영성을 보냈다. 변영성은 안서 절도사로서 탈루스 전투과정에서 고선지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다.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고선지는 천보 14년 (AD 755년) 12월에 섬주에 도착하여 진을 쳤다. 그때, 안록산에게서 고선지에게 밀사가 왔다.

“고 장군! 우리 합세합시다. 같은 처지인데 우리끼리 싸울 필요가 없지 않소.”

고선지는 소록산의 밀사에게 알았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했다. 전쟁터에서 만납시다.
고선지는 섬주에 진을 쳤으나 안록산이 이미 낙양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략을 바꾸었다. 낙양에서 장안으로 가는 길목인 동관을 지켜야 했다. 동관은 천혜의 요새이면서 당나라 보급창이었다. 동관을 잃으면 장안으로 가는 직통로가 열리고 태원창(太原倉)까지 빼앗긴다.

황제의 명령인 섬주 방어진을 지켜낼 수 없었다. 고선지가 섬주 방어를 표기하고 동관으로 이동하자 변영성이 반발했다.

“장군, 이게 무슨 짓이오. 황명을 어기다니….”
고선지는 변영성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획대로 동관 방어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고선지는 태원창을 열어 귀금속 비단 등을 그의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곡식들은 불을 놓아 모두 태워버렸다. 일단 유사시 안록산 반란군에게 태원창 보급품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고선지가 태원창을 불태운 것은 고도의 전략과 심리전이었다. 반란군들은 그들의 장수가 황제 되는 것 못지않게 전리품 욕심에 태원창을 향해 돌격해 왔으나 이미 고선지가 불태워 버리자 낙담하고 더 이상 공격해 오는 것마저도 멈칫거리고 있었다.

고선지는 동관 방어에 주력했다. 반란군은 몇 차례 공격해 왔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적의 병력 절반이 고선지 군을 공격했으나 또 실패했다. 안록산은 낙양에 머물면서 고선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고 고심하고 있었다.

고선지 또한 동관 방어에 주력할 뿐, 낙양의 안록산 공격을 쉽게 결단하지 못했다. 안록산에게는 정예군 15만 명이 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기 군사가 외양으로는 10만 명이라 하지만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선지와 늘 충돌을 했던 감군(군사 감독관) 변영성이다. 그는 낙양성 공격문제로 고선지와 다투는 것은 물론 태원창을 불태우고 금은보화나 비단 등을 부하들에게 나누어 준 일을 크게 문제 삼았다. 고선지가 국가 재산을 착복하고 자기 인심을 얻기 위해서 반역을 시도한다는 보고서를 황제에게 올렸다.

‘봉상청은 반란군은 막지 못했고 고선지는 섬주 방어선을 포기하여 수백 리를 반란군에게 내 주었고 군들에게 줄 물품을 착복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황제는 격노하여 그들의 목을 베라고 변영성에게 명을 내렸다. 황제는 고선지의 목을 자르는 데 고심하지 않았다.

영부 주교가 화청궁으로 달려갈 때는 황제는 궁을 떠나고 있었다. 여든 다섯 살, 살만큼 살았다. 황제를 기대어 살아오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선교 중심지인 장안이 반란군의 말발굽에 짓밟힌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구멍이 난 사람처럼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황제가 왜 불렀을까? 기도를 부탁하려는 것이었을까.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을까? 황제가 피난길에 올랐으니 대진사로 되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부 주교는 궁성 안으로 갔다. 종교청으로 발길을 옮겼다.

“당나라도 별 수 없구나.”
조로아스터교 사제 이반설이 영부를 보면서 말했다. 그는 늘 돌출발언을 잘 했고 페르시아 출신이랍시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당나라 관리들도 페르시아 출신이나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에게는
얼마간 배려를 해주는 것 같았다.

영부는 웃으며 걱정하는 마음이신 것을 알고 있노라고 응수 해 주었다.
“주교님, 반란군을 저지했고 며칠만 더 지나면 낙양에 묶어둔 반란군 괴수 안록산의 목을 벨 수 있는 장수를 황제가 죽인 것을 아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거 있지 않소. 탈루스 전투에서 패하기는 했어도 당나라 영토를 갑절이나 넓혀주었다는 고선지 장군을 죽였대요.”

“그게 무슨 말씀?”
“고선지 장군이 고구려 출신이고 반란군 안록산도 소그드인과 투르크인의 자식인지라 이민족 장수들끼리 합세하게 되면 제국이 거덜나게 되었기에 할 수 없었다나 봐요.”

“그래도 그렇지. 반란군이 황성으로 진격해 오는 길을 막았고 머지않아 반격하여 반란군을 완전 진압할 수 있는 장수를 죽이다니….”
“그러니 황제가 도망갔잖아요.”

“이반설 사제님, 여기 더 계실 참입니까?”
영부는 이반설의 답을 듣기 전에 종교청을 빠져 나서고 있었다. 이반설도 영부를 따라 나선다.

“주교님, 노구이신데 걷기는 괜찮으신가요?”
이반설의 걱정이었다. 영부는 말없이 오른손을 흔들어 이반설과 작별하고 대진사로 돌아왔다.
“주교님, 왜 이렇게 빨리 오십니까?”

“황제가 떠났어요. 피난길을…”
영부는 다위드를 붙잡고 걱정을 털어 놓는다.
“어찌 그렇게 급하게 되었을까요?”
“다위드 사제는 걱정 안 돼요?”
“주교님, 무슨 말씀이세요. 주교님이 계시잖아요.”
“응, 뭐 주교님이야. 주님이시겠지.”
“그럼요. 주님도 계시고 주교님도 제 곁에 계시는걸요.”
“그래도 정세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저희가 무엇을 어찌하겠어요? 상대가 적군이 아니고 황제의 실정을 반란군도 알겠지만 온 백성들이 알고 있잖아요. 또 저희들이야 당나라 들어올 때 다 죽은 목숨이라고 할까, 다른 말로 하면 목숨을 내 주고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데 봄이건 겨울이건 무슨 상관있겠어요.”

“그래, 역시 다위드는 인물이야. 나 이제 다 늙었는데 다위드가 내 자리를 지켜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주교님, 무슨 약한 말씀을 하세요. 주교님 백세 되실 때까지는 피하실 수 없으세요. 저 같은 수준으로는 아직 어림도 없습니다. 주교님, 주교님을 바라보면서 일하는 우리의 동역자들이 얼만 줄 아세요. 저희들의 용기를 꺾지 마세요.”

영부 주교는 늙었다. 나이도 늙었고 마음이나 지도자의 의지도 나약해 졌다. 그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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