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然

기독교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모신다. 그분의 아들 이삭이 모리아에 제물로 드려진 사건에서 골고다 십자가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 발 양보 없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그 은혜에 동참한다. 이에 더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유대 이스라엘 종교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그 다음으로 오늘의 로마 가톨릭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또 어떠해야 하는가? 로마 가톨릭은 고대 기독교 시대의 “로마교구”였다. 그때는 “예루살렘 교구” “알렉산드리아 교구” “수리아 안디옥 교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교구” 등 5개 처의 교구가 있었다.

그러나 AD 635년 예루살렘 교구와 수리아 안디옥 교구가 이슬람에게 정복되고 AD 640년도에 알렉산드리아 교구가 또 이슬람에게 무너졌고, AD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 교구까지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사실상 AD 640년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 하나가 기독교를 대표했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콘스탄티누스(AD 313년) 이후 정치성에 휘말리고 그리스 사상(헬라사상)에 물들어 기독교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늘 의심받아 왔으니까.

사도시대, 속사도 시대, 카타콤시대, 중세기까지, 정확하게는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선언 이전까지는 우리 기독교의 혼과 영, 생명 모두가 무려 1500여년 동안 로마 가톨릭과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겨우 500여 년 채 못 된 기간을 “프로테스탄트” 또는 “리폼드”의 이름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신교)는 2천여 년의 유대-이스라엘 기간과 1천5백여 년을 로마 교구(로마 가톨릭)와 함께 했던 날들을 기억해야 한다.

무려 3500여 년 간의 영양소를 외면하고 500여 년이 미처 못되는 기독교 신교는 3500여 년 역사 속에서 축적된 자원(영양소)을 외면하면서 살아가자니 늘 모자라는 것이 지식, 지혜, 교양, 정서, 능력, 차원 높은 신앙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유대-이스라엘이나 로마 가톨릭, 심지어 아브라함 가문의 또 하나의 세계인 이슬람과의 능동적인 관계를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이 모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여 영적으로나 육체(역사)적 현실에서 가깝기도 하면 한 없이 가까운 유대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이신 메시아 예수를 죽인 집단(종교)이라 하여 멀리하고, 1500여 년은 함께 신앙으로 살아왔으면서도 가톨릭을 이단이니 삼단인지만 계산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가까이 하고자 하는 기도나 소원이 없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빈약하고 허약하기가 짝이 없는 것이다.

언제쯤 정신을 가다듬어 가톨릭을 향하여 너희는 이런저런 것을 고치라, 우리 프로테스탄트 또한 너희를 메시아 예수의 교회로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하여 16세기 개혁정신을 가다듬어 가겠다 할 수 있어야 하고, 유대교나 이슬람에 대한 관계도 사촌에 준하는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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