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72

   
▲ 중국 투루판에서 만난 할아버지.

영부 주교는 황제의 곁에 머물고자 했으나 금군들의 위세에 밀려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금군들은 양귀비의 시신까지 확인했으면서도 황제에게 무엇인가를 더 원하는 것 같았다.
뭘까? 저들이 원하는 것이 황제의 옥좌일까? 영부 주교는 궁금했다. 발걸음을 옮겨 황제의 어가 쪽으로 가 보았다. 황제는 울고 있다가 영부를 향해 손짓했다. 황제 가까이 더 다가가자 황제가 빙긋이 웃는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영부의 음성이 떨렸다. 울음 섞인 말이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권력무상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평소에는 화려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황제는 낙천적이고 호화롭고 예술적라고 해야했고 시인 묵객들의 친구요 시인이요 가무를 즐기는 기예인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쫒기는 한 사람의 늙은이였다.

“내게로 가까이. 이리로 오르시오.”
“아니옵니다. 신이 어찌 감히 폐하의 어가에 동승을 하다니 말이 됩니까. 천부당만부당이옵니다.”

“아니오. 아닙니다. 이 판국에…, 그리고 주교는 내 사부(師父)시오 큰 어른이십니다. 괘념치 말고 오르시오.”

마치 그때 금군 사령관이 가까이로 오고 있었다.
“여보게. 짐이 지금 몹시 아프도다. 내 잠깐 주교의 위로를 받고자 하는 거니 그리 아시게.”

금군 사령관은 잠시 생각하더니 영부 주교가 어가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고맙구나.”
황제는 누구에겐가 고맙다는 말을 했으나 덜덜 떨고 있었다.
“폐하! 마음을 편히 가지소서. 폐하의 군대가 곧 안사의 반군을 궤멸할 것입니다.”

“안사의 난”으로 표기하는 것은 안녹산과 그의 고향 친구요 안녹산의 책사이기도 한 사사명의 이름 첫 자를 각각 따내서 안사의 난, 곧 안녹산의 반란을 말하기도 한다.

“고맙소이다. 그러나 내 지금 이 꼴이 무엇이요. 나 영무에 이르거든 태자에게 양위하고 대진사에 가서 주교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고 싶으니 나를 받아 주시오.”

“폐하, 받자옵기 민망하옵니다. 폐하는 아직도 강건하시옵니다. 양위라는 말씀 더는 입 밖에 꺼내시면 아니 되옵니다.”

“아니오. 나는 이미 결심을 했소이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짐이 무슨 염치로 황제의 자리에 더 남아 있겠소. 아니 될….”

그때 금군 사령관이 어가 가까이로 오고 있었다. 황제는 하던 말을 뚝 끊고 허공을 응시하며 헛웃음을 웃고 있었다.

“폐하, 주교님을 제가 모시고 싶나이다.”
“그래, 좀 더 내 곁에 계시도록 하면 좋겠는데….”
“하오나 이는 법도에 없는 일인지라 소장이 더는 조심스러워서요.”
“그런가….”

황제는 영부 주교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폐하, 이 종이 계속해서 폐하 곁에 있나이다.”
“오호, 고맙지요.”

힘없는 황제 옆자리에서 내려온 영부는 금군 사령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어가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영부 주교는 다시 한 번 권력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대당제국의 황제의 자리도 별 것이 아님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안녹산이 장안까지 밀고 들어와서 황제 궁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낙양에서 “대연 황제”로 등극했다. 연호를 성무(聖武)로 고친 안녹산은 수많은 황금과 보물을 뿌려 궁전을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성대한 등극식을 가졌으며 역대 중국의 황제궁으로 유명한 장안성에 입성한 것이다.

안녹산은 명실공히 대당제국의 황제를 자처했다. 그를 따르는 공로자들에게 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성대한 축제를 열게 하였다. 궁전 곳곳에 건장한 장수들이 도열하고 성루마다 청홍백의 깃발이 나부끼고 황궁 대청 아래에는 수백 명의 나팔수와 고수들이 나팔을 들고
서 있었다.

안녹산은 황제가 되었다. 정오의 시각이 되자 안녹산은 황금빛 비단을 걸친 육중한 몸을 이끌고 보좌에 올랐다. 문무백관 군사들이 일제히 엎드려 만세를 외친다.

“만세! 만세! 만만세!”
“오늘은 대연제국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건국일이다.”
안녹산이 큰 눈을 굴리며 만조맥관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한 번 씩 휘둘러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화답하여 대연전 광장에는 폭죽이 휘날리고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 시간, 당황제 이융기는 영무에서 아들에게 양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더는 대당제국을 이끌 수 없구나. 이제는 쉬고 싶다.”

황제는 몇 달 사이에 병든 노인처럼 그의 형색이 초췌해 있었다. 아
들은 차마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짓고 있었다.

황제가 아들에게 가까이 오라 하더니 그의 등을 토닥여 준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안녹산이라는 간교하고 탐욕스런 반란자의 끝도 곧 오리라. 짐이 너무 오래 옥좌를 탐했노라. 하늘의 천명과 선황들의 음덕으로 밖으로는 동돌궐, 토번, 거란 등 오랑캐들을 물리치고 국경을 튼튼히 방비하고 태평천하를 유지한 지 몇십 년이더냐. 그러나 이제는 너의 때가 왔느니라.”

태자 이 형은 개원(開元) 26년인 AD 738년 태자가 되었다. 부황과 쓰촨(四川)으로 가다가 마외(馬嵬)로 가서 새 황제로 등극했다(.AD 756년) 황제 현종은 태상황(太上皇)으로 받들었다.

영부주교는 아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내 준 이융기와 계속해서 피난생활을 함께 했다. 대진사에서 젊은 사제들이 달려와서 속히 장안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보시게들, 황제도 때가 되니까 그 짐을 벗는데 나 또한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네. 다위드의 지도력이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어요. 제국도 새 황제를 맞이했듯이 우리 교단도 새로운 지도력을 필요로 합니다. 내 걱정 말고 여러분은 어서 장안으로 돌아가서 내 뜻을 전하게들. 나는 황제께서 옥체를 회복하시고 또 머지않아 안사의 난이 평정될 터이니 그때 황제를 모시고 가겠네.”

사제들 일부가 장안으로 달려가서 다위드 사제에게 영부 주교의 뜻을 전했다. 다위드는 영부 주교의 아름다운 심지를 좋게 보았다. 황제가 어려운 때에 곁에서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년이 불행해진 현종 황제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영부 주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부는 날마다 현종의 처소로 갔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는 사람들끼리 마주 앉아서 서로의 인생을 말했다. 현종의 경우는 황제의 자리에 있을 때 대진사의 선교 목표를 위해서 별로 해 준 것이 없어 미안했노라고 했다.

“폐하, 그런 말씀은 거두시옵소서. 저희는 폐하의 치세 동안에 받은 은혜를 다 헤아릴 수 없나이다.”

“아니오. 주교는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시오. 은혜를 입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은혜가 아니라 실은 제국을 다스리다보면 무리수를 많이 두지요. 지나놓고 보면 후회스러운 일들 뿐이니까 용서받고 싶은 마음으로 주교의 선교활동에 얼마간 도움을 준 것 뿐이었지.”
“그리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아니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오. 경교는 말이오. 참된 종교입니다. 도교나 불교처럼 번거롭지 않고 사람 사는 법칙을 신비한 종교행위로 감추려 들지 않아서 좋아요. 나는 황제로서 특정 종교를 두둔하기는 조심스러웠으나 경교는 말이지 얼마나 당당한가요. 열심히 일하자 하고 병들면 치료하는 의술을 발전시키고 우맹을 깨우치느라 곳곳에 학당을 세우고 농사 일에도 기술이 있다고 가르치는 경교의 방침은 새로운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짐은 믿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짐이 경교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너무 좋아하다보니 마치 그대들의 독립적인 종교의 입장이 오해되지나 않았을지가 나는 늘 걱정이었지요.”

영부 주교는 현종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는데 황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인 줄 아시죠. 쉽게 말하면 주교가 지금도 상황인 짐 곁에
있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말하겠지요. 경교라는 종교는 당나라 황제의 종교, 마치 황실의 소유나 되는 것처럼 오해를 한단 말입니
다.”

“아하,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저희 기독교 그러니까 저희들 빛나는 종교인 경교를 너무 좋아하신 나머지 폐하의 제국과 저희 종교가 동일체인 것으로 보인 것이죠.”

“그렇구먼. 역시 주교의 판단은 현명해요.”
“네, 폐하. 태종 대왕께서 아끼셨던 알로펜 총주교님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때 일을 회고하면 태종 대왕의 아낌을 받았던 알로펜 총 주교는 대왕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장안 변경의 하층민들 지역 선교에 몰두하셨어요. 때로는 태종 황제께서 역정을 내셨는데도 종교와 제국의 얼마간의 갈등도 이겨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래, 나도 알고 있소이다. 그렇지, 그런데 지금 영부주교가 짐의 곁에 있으니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폐하, 망극하옵니다. 심기를 든든히 하소서.”
영부는 80살 가까운 현종의 하루하루가 걱정되었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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