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73

   
▲ 살기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들, 그 삶은 고귀한 것이다.

영부 주교가 상왕인 현종을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고, 막역한 친구나 형제처럼 대하는 모습을 지켜본 새 황제 이형은 마음 깊은 곳에서 경교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하루는 황제 이형이 영부 주교를 불렀다. 영부 주교는 황제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바로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의 방이었다. 지방관의 현청 수준의 건물에서 황제가 영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어서 오십시오. 어찌 지내시옵니까. 주교님!”
“폐하, 신에게 그리 말씀하지 마소서. 폐하가 장안의 궁성으로 가셔야 합니다. 소신은 날마다 그것 하나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맙소이다. 짐의 마음에 큰 깨달음이 있소이다. 짐이 태종 대왕 만큼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도 주교의 진리 전파에 좀 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으니이다. 이제라도 짐에게 주교께서 깨달은 진리의 밝은 뜻 그 반의 반이라도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황공하옵나이다. 종이 무지하오나 신명을 다하여 폐하를 모실 것입니다.”

영부의 진심이었다. 영부는 그가 존경하는 아버지 같은 알로펜 총주교를 떠올렸다. 알로펜 총주교는 당태종에게 복음진리를 바로 가르쳤던 인물이다. 그래서 당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임을 깊이 깨달았다(深知正眞)고 전해온다. 당태종 못지않게 현 황제 이형의 부황인 현종도 경교(景敎‧基督敎)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영부 주교님, 오늘은 내가 주교와 긴한 의논이 있소이다. 내가 지금 이곳 영무(靈武‧지금의 영하회족 자치구 영무현)와 주변 5개 군에 경교 교회당(사원)을 지으려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이에 주교의 고견을 듣고 싶소이다.”

영부 주교는 깜짝 놀랐다.
“폐하, 지금 우리는 총력을 다해 무자비한 안녹산의 반군을 진멸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 같은 말씀을 하오신지요?”

젊은 황제는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영부가 놀라는 안색이기는 해도 당나라 선교 책임자가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겠는가. 황제가 반란군에게 쫓기면서 아차하면 제국이 거덜날 수도 있는 시간에 외래 종교일 뿐인 경교 예배당을 짓다니…. 그러나 황제 이형은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고 전략적 묘수를 시도하는 중이다.

현재 당 왕조의 반란 진압군 주력은 삭방(朔方), 롱우(隴右), 하서(河西), 안서(安西), 북정(北庭) 등 변방의 부대들이다. 이들은 대개 이방인들, 즉 오랑캐 출신 장수들이 지휘하는 부대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장수는 물론이고 부하 군사들이 대부분 경교 신자들이었다.
황제 이형은 바로 이 점을 중시했다. 더구나 이들 오랑캐 상인 출신들이 군수물자의 상당부분을 보충해 주고 있는데 이들 또한 대다수가 경교도들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경교의 도움을 받고 있는 황제가 이들 오랑캐들 장수와 상인들이 경교도들의 최고 어른인 영부 주교와 함께 앉아서 당나라 경교(기독교) 발전의 중요부분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올시다. 오늘의 위난을 반성하고 반군을 하루 속히 몰아내기 위한 마땅한 일이라고 짐은 생각하고 있소이다.”

“정히 그러시다면…, 폐하 우선 이곳 영부 지역에 교회당을 하나만 지으시죠.”

“아니오. 내 뜻을 따라 주시오. 우선 다섯 곳이오이다. 반란이 끝나면 전국 곳곳에 경교회당을 짓고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하도록 짐이 약속하리다.”

영부는 황공하오이다,를 거듭 말하면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스쳐가는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알로펜 총주교 이후 당나라 책임자로서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다는 자책을 늘 하던 터에 이같은 은혜를 입게 되다니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할지를 몰랐다.

“폐하, 이 종이 오늘 당장 진압군 부대 장수와 군사들에게 격려서찰을 보내겠나이다.”

“좋은 생각이오. 군사들 뿐 아니라 상인들에게도 감사의 서찰을 보내면 그들의 충성심이 하늘에 상달할 것이오.”

“네, 폐하, 폐하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영부는 자기 방으로 가서 우선 장안의 다위드에게 먼서 서찰을 보냈다. 이어서 각 지역 부대 장수들과 부대마다 있는 경교도 관리를 맡은 신자인 군사들에게 서찰을 보냈다.


당나라 기독교(경교) 발전
AD 756년 새 황제의 서두름에 의하여 반란의 시대에 경교는 교회당을 무려 다섯 곳이나 지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크게 발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일(AD 1625년) 발굴된 경교비 비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현 황제(숙종)의 기록이 나타난다.

“문명황제 숙종은 영무 등 5개 군에 경교사원을 다시 세웠다. 원래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선량한데다 홍복 운까지 열렸다. 큰 경사가 임하니 황업이 세워진 것이다”(肅宗 文明星帝, 于靈武等伍郡重立景寺, 元善資而福秨開, 大慶臨而皇業建).

며칠 후 급한 연락을 받고 다위드와 2명의 보좌 사제들이 영무 임시 황궁으로 달려왔다. 영부 주교가 다위드를 인도하여 새 황제를 알현하였다.

“폐하, 폐하의 대에 장안의 경교를 이끌어 갈 새 인물을 모시고 왔습니다. 다위드 사제입니다. 곧 주교 서품을 받은 뒤에 대표 주교로 모실 것입니다. 다위드, 황제 폐하께 예를 올리시오.”

다위드가 새 황제에게 엎드려 예를 올린다.
“다위드 사제여! 얼굴을 드시오. 그리고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아오시오. 내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렸소이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저희들이 기도가 부족하여 폐하께서 반군들의 소행을 지켜보신다 생각하니 어디로 이 부끄러운 몸을 숨겨야 하올지요. 하오나 폐하, 저희가 장안을 떠날 때의 그곳 민심은 일각을 더는 지체할 수 없다며 황제 폐하의 환궁을 기다린다는 소식입니다. 폐하, 성심을 편히 하옵시고 옥체를 보존하소서.”

“오, 다위드! 총명하시구려. 어찌 그리도 기쁜 소식을 짐에게 선물하시나이까. 여러분이 섬기는 천주님을 짐 또한 섬기나니 앞으로 짐의 제국에서 경교의 창달을 위해 내가 크게 힘써서 보답하리….”

“황제 폐하, 감읍하옵니다. 지극하신 성심을 온 몸으로 받사옵니다.”
황제는 다위드에게도 다섯 곳에 경교 교회당을 당장 건축할터이니 영부 주교와 이곳에 남아서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다위드는 영부 주교의 인도를 받아 상왕인 현종을 알현했다. 올해 칠십육 세인 현종은 노쇠한 몸이기는 했으나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이었다.

“폐하, 저 다위드는 폐하께서 강성한 제국 위에 예와 문을 가꾸어 높이셨음을 믿나이다. 하늘이 시셈을 했을까 싶을 만큼 안사의 난을 겪고 있으나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입니다. 소인은 그리 알고 있나이다.”

다위드가 현종의 문치를 높이는 뜻을 담아 위로의 말을 했다. 상황제는 껄껄껄, 웃는다. 그의 웃음소리를 모처럼 듣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부 주교도 말을 꺼냈다.

“폐하, 새 황제께서 이곳 임시 황궁인 영무를 비롯하여 다섯 곳에 경교 예배당을 건축하신다 하셨는데 이는 폐하의 신심이 하늘에 닿은 것으로 저희는 받아들여지나이다. 폐하는 진정으로 저희 경교를 외방에서 들어온 종교로 여기지 않으시는 줄 소인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나이다.”

“허허, 영부 주교도 아첨을 다 할 줄 아는가요?”
“폐하, 아니옵니다. 결코 아니옵니다. 폐하는 태종대왕께 뒤지지 않으실 만큼 올바른 진리를 사모하고 계시는 줄 믿나이다.”

“그래, 그렇다면 고맙지요. 내가 좀 더 우리 모두의 경교를 위해서 힘을 썼어야 했는데…. 이제 이렇게 늙은 몸으로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겠느뇨.”

“폐하, 폐하의 후사이신 신 황제께서 이미 저희를 위해 큰일을 시작하셨나이다.”

“그래, 앞으로 다위드 사제가 많이 도와 주셔야 할 것입니다.”
영부 주교와 다위드는 현종의 방을 나왔다. 영욕의 날들에서 벗어났으나 아들에게 비틀거리는 제국을 물려준 황제의 모습과 자기 모습을 비교해 본 영부 주교는 다위드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다위드, 궁성이 장안으로 복귀하면 우리도 직무 교대를 하세나. 이젠 나도 뒷방으로 물러설 시간이지.”

다위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그는 아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교님, 우리는 권력자들이 아닙니다. 아직도 주교님의 지도력이 필요하고 저는 아직 어립니다. 더 공부해야 합니다. 또 저는 다녀올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어디를 다녀온다는 것인가요? 책임주교의 직분을 가지고도 제국 안에서 어디든지 못 가는가. 새 황제 치세에 우리 교단도 한 번 크게 도약해야 합니다.”

“저는 제국 밖 여행을 해볼까 합니다. 안토니 주교가 머물고 있는 박트리아에 말입니다.”

“아니오. 거기가 어딥니까. 그리고 그곳은 안토니 주교의 임무에 맡겨두고 우리는 당나라 교회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우선 이곳 영무지방을 중심한 변방 교회당 건축일에 힘을 모으기로 하시죠.”

“그래, 그래야 합니다. 일단 본부에 10명 정도 인력을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요?”

“네, 주교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영부와 다위드는 진압군 군사령부에 격려문을 보낸 후 회신이 당도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찾아오는 경교도 상인들과 회합도 서둘렀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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