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구성원 20% 정도이면 그 종교는 자기 보호용이 아니고 
민족 전체의 방향과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총선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여야당들의 공천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정상배들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선거판의 이슈 역시 탐욕과 게걸스러운 모습들뿐이다. 북한 핵 문제로 유엔이 긴장하고 한반도를 노리는 열강들의 수싸움은 치열한데 정작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팔짱을 끼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구경꾼 꼴을 하고 있다.

그들 가까이에는 한국교회도 끼어들어 동성애가 어쩌고 이슬람이 어슬렁거린다면서 집토끼만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또 다른 탐욕의 군침을 꿀꺽거리고 있다.

기독교 신자가 국가구성원 20% 정도이면 그 종교는 자기 보호용이 아니고 민족 전체의 방향과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기독교는 또 나라와 세계를 구원해야 할 메시아의 길을 지켜야 한다. 다시 기독교는 자기 포기이며 자기 박탈로까지 이어가면서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인류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보라. 미국 공화당 대통령 유력 후보자인 트럼프가 한반도는 전쟁을 하든지 말든지, 흥하든지 망하는지 저희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지 않던가. 이 말이 무섭다. 트럼프의 이 말은 당장은 아니어도 10여년 이내에 미국의 주요정책이 될 수 있다.

그럼, 북한이 그때까지만 버티어 내면 한반도는 절대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때는 북한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한반도 곧 대한민국을 노리던 100년 전 청, 러, 일 강대국들이 대한제국을 먹어 삼키려 들었던 그때 그 꼴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금번 선거 과정을 통해서 드러난 여야당들의 정책과 그들의 성향분석을 해보니 도무지 믿음직스럽지 않다.

왜 이렇게 쉽게 정치를 생각할까? 우리 민족성 어디에 이토록 허약함이 자리하고 있을까? 하기는 수천 년 역사를 가졌다면서 그 흔한 종교 하나 못 만들고 쓸만한 철학자 하나 못 길러낸 것을 보면 본디 대단할 것이 없는 민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막바지 시대인 19세기 말 이 땅에 기독교가 자리 잡으면서 하나님 계시사의 바닥치기를 통해서 세계가 다시 창조의 본체 회복기로 찾아갈 기회가 왔었다. 그러나 그때 대한제국은 강대국들의 각축장 희생물이 되었고 그 후유증은 볼썽사나운 오늘의 남북관계로 드러나고 말았다.

휴전선 턱밑에 자리한 대한민국의 수도권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벌집형태로 살고 있다. 호랑이 아가리 곁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온갖 더러운 거짓의 향연은 물론 돈이면 다 살 수 있는 거래처가 즐비하고 위선으로 단련된 혓바닥을 가진 뱀들의 놀이터가 좀 많은가.

어떻게 할까? 혁명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혁명의 당사자가 되어야 할까? 아, 어지럽다. 우리에게 잠시 긴급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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