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74

   
▲ 당나라에서 경교로 불리었던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 돈황의 이 사막을 그들도 걸었을 것이다.

황제의 독려로 경교 사원들이 속속 건축되었다. 더불어서 각 지역 군사령관들의 충성심 또한 돋보이고 있었다.

안녹산의 반란 세력들은 장안의 궁성을 지켜내지 못했다. 황제의 친위군인 금군 세력이 진압군의 엄호를 받으면서 장안을 탈환했다.
궁성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영부 주교는 다위드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다위드, 황제가 우리 교단을 돕고 싶다고 오늘도 말했어요. 가능하다면 제국의 절반을 내 주어도 좋다는 거였어요.”

다위드는 웃었다. 황제나 영부 주교가 둘 다 순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 황제의 치세가 길지는 못하겠다는 느낌을 가졌다. 황제의 생각하는 바가 저렇게 헤퍼서야 어떻게 당나라 같은 대국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다위드는 황제가 자기네 기독교에게 당나라 땅 절반을 주고 싶을 만큼 고마워하는 마음이 어느 만큼 길게 갈까를 생각하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 황제의 통치 말기에 당나라 군사가 탈루스 전투에서 이슬람 주력군에게 패전한 사실이다. 당시 당나라군을 이끈 장군은 고구려 유민 출신 장수로서 전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명장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더를 능가하는 장수가 아라비아의 이슬람 군대에게 패전했다는 점이다.

당태종을 닮았다는 현종이 아시아 최고의 명장인 고선지를 앞세워 대응했던 탈루스 전투에서 아라비아의 이슬람에게 패전했다면 아라비아의 이슬람이 중국을 집어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위드, 내 말에는 응대가 없고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거야?”
영부 주교의 말씨는 거칠어 보였어도 할아버지가 어여쁜 손주 앞에서 느긋한 표정을 잃지 않은 것처럼 다위드의 답변을 재촉했다.
“네, 네! 송구합니다. 제가 잠시 당나라에 위협을 가하는 이슬람 군대를 생각했나이다. 그들이 비록 당나라의 변경이라지만 탈루스 지역을 장악했으면 알로펜 총주교께서 필생의 노력으로 가꾸어 두신 중앙아시아 우리들의 선교지가 어찌 될까를 염려했나이다. 네, 대단히 송구하옵니다. 참, 그리고 주교님이 말씀하신 황제의 배려에 대해서는 고맙기는 하지만 우리들대로 당나라 선교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대책을 말인가?”
“네, 제가 마리아 교수님으로부터 중국인들의 사상에 대해서 배운 바로는 중국은 천축국 출신 붓다가 창립한 불교를 이미 사상적 흐름으로 볼 때 중국 종교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천축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중국의 언어로 번역했으며 중국인들은 산스크리트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통 알아들을 수 없구려.”
영부 주교는 세상 떠난 마리아 교수가 아니라 다위드가 약간은 무섭다는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높임말을 쓰고 있었다.

“네, 주교님. 사상이란 언어의 옷을 입는데, 중국의 언어는 곧 사상입니다. 중국은 상고대 사회부터 언어와 사상이 한 덩어리였어요. 그래서 이 나라가 무섭답니다. 인도의 불교(佛敎)는 중국에서는 불교(不敎), 곧 종교 아닌 것이 되었어요. 이를 다시 정리하면 인도 종교는 해체가 되어서 중국의 중국식 불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 알겠소. 천축의 불교를 중국 종교로 만든 중국이 우리의 그리스도교 또한 중국식 종교로 만들어버릴 수 있겠다는 뜻인가요?”
“네, 그런 의미도 있기는 하죠….”
이제는 다위드가 영부의 기세에 밀리고 있었다.

“그런 소리 마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여기 당나라 땅에서 외로운 섬사람들처럼 사는 입장이지만 로마 본토는 물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는, 아라비아의 이슬람도 좀 더 안정된 단계로 나아가면 아브라함의 한 자손 아닙니까. 유대교까지, 도도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우리의 종교를 당나라가 불교를 집어삼키듯 할 수는 없지요.”

영부 주교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했다. 다위드가 답변할 말을 찾으려고 한동안 뜸을 들여야 했다.

“주교님, 주교님 말씀은 역시 주교님답습니다. 전혀 연세를 느낄 수 없습니다. 마치 헌헌장부라더니 주교님은 우리 기독교를 지켜내는 대장군이십니다.”

“허어, 말을 돌리지 말고 다위드가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계속해 보시오.”

“네, 주교님. 저는 황제가 우리를 향해 고마워하시는 마음은 알겠는
데 그러면 그럴수록 황제의 힘이 전 황제인 현종이나 당태종 만큼은 어림도 없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황제의 치세기간이 걱정될 만큼 황제의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좋아요. 나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이런 때 일수록 우리의 선교 영역을 더욱 넓혀야 합니다. 장안에만 집중하지 말고 동해안이나 남쪽 해안지역의 선교에 주력해야 합니다. 황제가 도움을 주겠다 하시면 동쪽으로 산둥성 지역에 기반을 든든히 하여 신라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보고 남쪽으로도 바다 건너면 많은 나라들이 있지요. 그곳들과의 관계는 물론 서역이나 중앙아시아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서 이슬람의 동태를 살펴야 합니다. 북방에도 이동민족들이 부족단위 생활을 하면서 세력화 하려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좋습니다. 당장에 주교님이 큰 포부를 밝히셨으니 일단 서역으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다위드, 내가 한 말 잊지 않으셨지요?”
“무슨 말씀이신데요?”

“허허, 전란이 끝나면 나하고 임무를 바꾸자 했잖아요?”
“아, 무슨 말씀이시라고…, 주교님 저는 아직 어립니다. 주교님께 몇 년 더 배워도 늦지 않습니다. 제가 당장이라도 서역을 다녀올까 합니다. 허락해 주세요.”

“아니야. 황제도 바뀌었으니 우리도 한 번 바꾸어서 일해 봅시다. 내가 서역으로 사마르칸트로 한 바퀴 돌아오지 뭐.”

“아닙니다. 주교님은 연세도 있으시니 장안을 지키시면서 저희 각 지역을 지도해 주셔야 합니다.”

다위드는 영부 주교의 허락도 없이 주교청을 나왔다.
그날 밤, 다위드는 부친 요수아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모처럼 집에 가니 모친 실비아는 물론 시몬 아저씨도 와 있었다.

“아들, 오랜만이야. 어찌 이렇게 부모님께 소홀히 하는가?”
실비아가 다위드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에게로 당긴다. 마치 품에 안으려는 듯했다. 그러나 다위드의 상체가 모친 실비아의 갑절은 되니 오히려 자기 몸이 다위드 품에 안기는 것 같았다.

“시몬 사제님, 오랜만에 뵙네요. 아버지는 요즘 어떠세요?”
다위드는 시몬과 부친 요수아 앞에 단정히 앉았다.
다위드의 아내 세루비아가 다과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다위드에게 목례를 하고 말없이 시어머니 실비아 곁에 앉는다.

“내 손자 요한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다위드는 아는가?”
실비아는 다위드의 아들 요한이 무엇을 하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 요한이는 자기 몫의 중한 일을 합니다. 나는 그 애의 활동을 존중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 애가 무슬림들과 어울리는 것이 나는 영 불안해서 저녁이면 잠이 안 와요.”

“저런, 실비아! 왜 그리 약해졌어요. 요한이는 요한 감독님을 닮았어요. 장차 다위드 못지않게 일할 터이니 두고 보시오.”

요수아는 며느리 세루비아와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네, 저도 믿어요. 요한이는 이미 성년이 다 되었어요. 그 아이는 사마르칸트의 유명한 감독님은 물론 요한복음서의 기록자인 요한을 닮았다고 저는 생각해요. 또 못지않게 큰일을 할 거예요.”

“야, 세루비아는 역시 요한이 어머니답구나. 대단한 믿음을 가진 모친이구나.”

“네, 잘 알겠습니다. 저는 아무런 걱정이 없고요. 딱 하나, 지금 우리 교단이 당나라에서 별로 큰 존재가 못됩니다. 당나라에 온 지 백년이 넘었는데 황제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은 황실종교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 나도 다위드와 동감이오. 다위드,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봐요.”

크테시폰의 시몬이 말했다.
“네, 아저씨! 저는 황실의 직접보호가 싫어요. 본디 종교는 권력 위에 있어서도 안 되고 그 밑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권력과 종교를 함께 거머쥐어서는 더욱 안 되지요.”

“그래요. 이슬람은 권력과 종교가 함께 움직이니까 당장은 큰일을 하는 것 같으나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 거야.”

요수아도 의견을 말했다.
“저는 무형의 종교, 종교의 실체가 없어진다면 그것이 최고의 이상이겠으나 그건 쉽지 않겠고 가능하면 없는 듯이 있어주는 방식이 좋을 것 같아요.”

다위드의 말에 요수아가 강하게 부정하고 나섰다.
“그건 아니다. 그건 꿈이야. 종교가 자기 형체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당나라는 우리 기독교를 마치 자기 종교로 만들고 싶어서 ‘기독교’라는 이름도 못쓰게 하고 의미도 없는 ‘경교’라 하여, 뭐 빛나는 종교라는데 그들의 저의는 기독교는 받아들이지 않고 기독교의 정신만 받아서 자기네 혼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야….”

“어머나, 알고 계셨어요. 요수아께서도….”
“그럼, 사마르칸트 감독님께 배웠지.”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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