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 등골이 서늘해진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무섭게 들린다.

주께서 영광의 보좌에 오르실 때, 우리에게 물으신다. 오른쪽과 왼쪽, 양과 염소인 우리들을 함께 살피시며 물으신다.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

이 말씀을 묵상하니까, 참으로 아직도 주 예수 주변이 이처럼 살벌하구나, 주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사람들 주변이 고통의 연속이구나,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를 떠올리게 된다. 말씀의 형식은 오른쪽과 왼쪽, 오른쪽은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물을, 나그네였을 때 영접은 물론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보았다는 것이다.

무심코 이 말씀을 받아서, “주여 언제 주께서 배고프고 목마르셨으며 나그네로 떠돌았으며 병들고 감옥에 계셨었느냐”고 묻는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으니 새삼스럽게 등골이 서늘해진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무섭게 들린다.

나와 너, 우리들의 교회 가까이, 또는 교회 안에도 고통 받는 자들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통 받는 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더 무서운 말씀으로 다가온다.

너는 내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서 굶주리고, 목마르며, 정처 없는 나그네 노릇을 해 보았으며 갈아입을 옷 없이 지내보았으며, 병들어 고통하고 감옥 그 현장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져 보았느냐고 물으시는 음성이 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주변이 너무 안일하고 태평하다는 불안감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감옥에 있고, 병들고, 헐벗으며, 목마르고, 배고픈 현장에서 너와 나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치열할 필요가 있다. 고통하는 자들 곁에서, 착한 양심을 보존하고 싶어도 힘이 부족하여 나서지 못하는 이들,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여 무서운 범죄로 확대되어버린 비극들.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교회의 고통은 어떤가? 예를 들어 교회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개척단계의 교회, 더 쉬운 것으로 정직한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먼저 넉넉한 기도 시간과 말씀을 상고하고 또 탐구할 수 있기까지 신자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 있어야 한다. 또 입으로 가르치고 행동으로 모범할 자기 모습이 준비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단계에서 발전하여 최소한 교회에 헌금 좀 많이 한다고 으스대는 신자, 또 그가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를 알기에 바로 교훈하고 싶기는 하지만 반발하여 “교회가 어디 여기뿐이냐, 순진하기는…” 하면서 떠나버릴 수 있는 그 신자를 무릎 꿇리고 이 사람, 정신 차려! 하면서 꾸중할 수 있는 목회자의 고통스런 능력부터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더 큰 희생을 주께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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