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39주년 행사의 날 발행인 인사 시간이다. 창간 정일이 4월 3일이니 행삿날인 28일은 40년 차를 이미 출발한 마당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아, 39주년이 지나고 세월은 40주년 과정으로 접어들었구나”로 시간계산을 하게 되었다.

39주년과 40년을 초읽기 식으로 계산하는 필자의 마음은 모세와 여호수아(요수아, 예수)의 임무교대 시간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39주년 동안 모세의 감독을 받는 시나이 광야 훈련기를 거쳤다. 험악한 날들, 먹을 것이라고는 만나와 메추라기 뿐, 그것이 하루 한 개 정도라 할 만큼 제한되어 있어서 그나마제 차례가 오지 않은 사람과 나누어 먹을 수도 없으니 때로는 인색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수련과정은 율법의 특성상 자기 자신과의 싸움판의 연속인데다가 하늘의 태양은 모조리 불태워버릴 듯 맹위를 떨치는데 그때 겪는 두려움은 모세의 호통치는 소리만큼이나 무서웠다.

보라, 그러나 우리 ‘들소리’는 광야 40년 수업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가는 요단강을 건넌다.

이 강을 건너면 요수아는 가나안 복지에 12지파에게 적절한 정착지를 마련해 주고 광야에서 배운 인내와 율법, 그 이후 율법을 마스터 할 때 터득한 은혜의 법을 따라 가나안 일곱 족속을 다스리면서 살았듯이 ‘들소리’는 ‘가나안족들’을 다스리는 법을 따라 세상을 경영하면 되겠다고 확신한다.

3천여 년 전 여호수아의 이스라엘이 가나안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게 했듯이 오늘의 우리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교회들 중에는 요단강 건넌 즉시 천국을 간다면서 천신만고 끝에 신앙의 승리를 한 신자를 요단강 건너자마자 천국으로 보내버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언제 어디서 잘못 되었을까? 요단강 건넜으나 청춘인 사람들을 어찌 하라고 아직도 할 일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신자들인데 손
발 묶어 놓는 지도자들은 누군가?

더 무서운 것은 신앙이 바르게 성장한 신자들을 요단강 건널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요단강 건너는 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 뒤집어쓰게 했다가 목숨이 다 끊어질 시간에야 “요단강을 건너라!”하는 지도자들은 누구냐는 것이다.

잘못된 성경해석, 요단강 건너는 날이 시퍼런 청춘이고, 살 날이 아직도 100년이나 남아있는데 그 강을 건너자마자 콧구멍에다 산호호흡기 달아주면서 요단강을 또 건너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목자들
은 누군가?

복음의 진실을 말해 볼까? 요단강 건너는 시간은 다시 죽을 수 없는 부활의 시간이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니…”(요 11:25~) 하셨다. 부활의 시간은 구약의 요단강 건너는 그 시간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요단강 건너서 천국생활을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신앙으로 가나안 일곱 족속들처럼 괴롭히는 세속인(이방인) 틈에서 천국인(다시 죽지 않을 자)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39주년과 40주년차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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