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주년 대담 / 한국교회의 위기 대안-지형은 목사에게 길을 묻다

▩ 일 시 : 2016년 4월 27일 오후 4시
▩ 장 소 : 성락성결교회 2층 카페
▩ 대담자 :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 담임/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신학위원장)

             양승록 편집국장(들소리신문)

 

소리만 무성한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 일어나야


   
 

○● 최근 목회자 인문학 독서모임을 마련하고 중요한 책들을 함께 읽으신 것으로 압니다. 시작하신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 한국교계를 생각할 때 개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구체적인 방법론이 문제인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사람과시스템이 모두 변해야 하는데, 그건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근본적으로 가치관과 세계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일반교육도 마찬가지이지만 신학교육의 주요한 방법이 책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사고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고전 읽고 깊이 있게 분석하고, 묵상하는 것이 신학교육의 본질이라고 보았고, 근본적인 의미의 신학교육 대안을 실험해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기독교 안팎의 고전들을 함께 읽고 실천할 것들을 짚어보고 삶과도 연결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려 합니다. 이번에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아주 좋았어요.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하반기에도 진행할 예정이고, 내년에는 평신도 리더들을 위한 독서모임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참여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은퇴까지 10여 년 남았습니다. 긴 호흡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의 생각이 바뀌도록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 한국의 교육이 깊이 사고하게 하고 같이 토론하면서 서로 끌어주는 문화가 아니어서 아쉬운데 이런 모임을 주도하신다니 반가웠습니다. 목사님은 평소에 어떻게 독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신학교에서 논문집이 교회로 많이 옵니다. 그 중에 관심 있는 것을 읽습니다. 현장목회자로서 전문적인 신학논문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 고전을 꾸준히 읽는 편입니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공통구조는 같습니다. 고전에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 공통의 관심사가 구조적으로 담겨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또 유행하는 책들도 선별해 읽습니다. 독서는 다독보다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좋은 책을 골라 깊이 있게 읽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니까요. 읽고 내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한다던지,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 한마디로 삶이 목적이니까요. 저는 한 주에 보통 한 권 정도 읽는 편입니다.

○●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 저는 말씀 묵상을 강조합니다. 한국교회에서 보통 큐티라고 말하는데 그것보다는 말씀묵상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신앙을 갖기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곧바로 말씀묵상을 배웠습니다. 70년대 중반, 큐티가 제도권으로 처음 들어오던 때였지요. 교회 선배들 중에서 열심 있는 분들이 배워 와 교회 후배들과 같이 나눴습니다. 예수 믿은 때부터 성경 66권을 묵상하는 게 신앙의 중심 기둥으로 훈련됐어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설교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데, 그럼 저의 경험이나 말씀 묵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말씀 본문에 대한 해석이 없으면 설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주제만 뽑아내어 설교하는 것이 한국교회 강단의 문제잖아요. 그날 설교 본문에 대한 주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설교 준비하면서 본문을 참 많이 들여다봅니다. 어떤 때는 설교 준비하다가 잠이 들면 아내가 놀라서 깨워요. 하지만 전 누워서도 설교 생각을 하는 거거든요.(웃음) 우스개 같지만, 설교 생각하다 잠들면 꿈을 꿀 때도 있어요. 당연한 일이지요. 어떤 때는 꿈꾸다 잠에서 깨어 떠올랐던 것을 노트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부둥켜안고 참 많이 생각합니다.

본문의 메시지가 어느 정도 잡히면 그것을 회중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합니다. 금요일이면 그 주의 설교 전체 텍스트가 주보에 싣도록 넘겨집니다. 토요일에는 완성된 설교 텍스트로 저에게 설교합니다. 신학교 설교학에서 배우는 거지만 회중에게 설교하기 전에 나에게 설교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먼저 결단하는 것입니다. 토요일은 설교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개교회주의는 한국 기독교 신교 확장에 주요했지만
폐해 심각한 현실 속 공공성 구현 절실

 

○● 한국교회가 세대교체 문제로 고민이 큰데요. 성락성결교회는 성공적인 세대교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인지요?
- 제가 부임한 지 만 11년 반쯤 됐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는 전형적인 부흥사로서 성락성결교회에서 37년 간 사역하셨어요. 제가 부임한 후 변화가 많았지요. 이 교회에 부임할 때 저를 아껴주시는 교단 선배들 중에 말리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스타일이 전혀 다른 것이 오히려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된 점도 있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전형적인 부흥강사로서 성경 본문을 깊게 주석하기보다는 기독교 복음의 가장 원색적인 부분을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은혜 받은 틀을 강하게 전하는 게 소명인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말씀에 대한 갈망이 성도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부임해 오면 어느 설교자나 회중의 반응을 느끼지요. 마치 스폰지에 물이 흡수되듯이 굉장히 말씀을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물론 적응하지 못한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선동하는 목회를 지양합니다. 바꿔갈 수 있도록 제시하되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원할 경우 지속해 가도록 합니다. 신앙은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담임 목사 스타일이 모두에게 다 맞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행히 세대교체 과정에서 생각만큼 갈등은 크지 않았습니다. 세대교체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양쪽이 모두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한국교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교계적으로 준비에 분주한 듯 보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뚜렷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지금쯤 밑그림이 나와서 같이 고민하고 역량을 모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 솔직히 이야기하면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 안합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에서 각 교단의 준비 현황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보면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더군요. 종교개혁 500주년이니까 좀더 깊이 생각하고 자각은 있겠지만 실제적인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뭐가 문제고 어떻게 가야 할까? 묘수풀이처럼 이렇게 하면 된다며 해법을 제시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따를 리도 없지요. 한국교회의 현안을 예로 들자면, 신학교 과잉배출 문제를 볼까요. 원인도 해법도 뻔한 겁니다. 신학교 운영을 위해서 과다하게 학생을 뽑는 거죠. 교단의 수급상황에 맞춰서 인원을 정해야 하는데 경영의 논리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큰 것 같은데요. 원론적이지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학교도 말씀 중심으로 교육해야 하고요. 방법은 알지만 개혁이 분출될 수 있는 에너지 비축이 아직 부족한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국교회 숫자가 더 줄어드는 겁니다. 목사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면 자연히 지원하는 숫자도 줄어들겠죠. 그럼 소명감 있는 사람만 목회하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을까요. 그런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지만, 현재로선 별로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문제와 해법은 알고 있는데 왜 실현이 어려운 걸까요? 각 교단에서 책임적인 자세로 나서야 할 텐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숫자가 확 줄어서 자각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 그럼 안 되겠죠. 새로워지기 위해 각자가 자기 소명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변화를 말하자면 개인의 변화와 구조의 변화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개인으로 보자면, 경건한 목회자와 평신도 리더들이 아직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동행하고, 깊이 깨닫고, 그런 변화의 움직임들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구조가 바뀌는 것인데요. 그러나 한국 기독교 신교의 세가 확장된 것은 각개전투 식 독특한 교회 정치구조의 요인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 가게이니 내가 최선 다해 발전시키고 늘려야 하는 식으로 해왔지요. 과거엔 그게 장점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개교회주의의 폐단에 발목 잡힌 형국입니다. 개교회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와 같은 것이잖아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요즘 논의되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공공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과 일반 사회적인 공공성 의식을 그리스도인들이 더 충분히 성서적인 측면에서 내면화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실하고 경건한 헌신적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적인 자리에서 구조, 시스템의 변화를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 구조적인 부분은 교단 차원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할 텐데요.
- 상회의 감독기능이 강화돼야 합니다. 장로교는 노회의 권한이 막강합니다. 목사의 임면을 노회가 결정하는데 학력이나 사회적으로 문제 돼도 노회가 감싸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물론 감독제도 약점은 있지요. 결정권을 가진 리더십이 부패하면 폐해가 큽니다. 가톨릭이 심하게 부패했을 때 심각한 폐해가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사회에 완벽한 제도는 없지만 상황에 따라 어떤 것이 좋은가 선택하고 결단하는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 중 핵심 부분은 만인제사장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은 목사와 평신도의 구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고 권한과 책임에서도 선을 긋고 있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의 자각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보이는데요. 어떠신지요?- 만인제사직은 각 교단의 기본적인 헌법문제입니다. 신조부터 시작해서 실제적인 교회 사역 등을 헌법이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평신도가 깨야죠. 일부에서는 평신도가 성경을 많이 알면 골치 아프다고 하지만 목회자는 물론이고 성도들도 말씀을 깊이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말씀 중심의 목회철학이 명백하면 비본질적인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지요. 목회자도 하나님이 부르셔서 말씀 가르치는 소명 때문에 그 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는 기본적으로 신분(status)이 아니라 기능(function)입니다.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지요. 말씀 앞에 거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목회자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건 범죄입니다. 만인제사직은 교회가 계속 강화해 가야 할 것입니다.

○● 교회의 현안 중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정치 참여, 이슬람, 동성애 문제 등은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나뉘는데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도 기독교를 표방한 정당들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 문제를 이야기함에 있어 겉과 속이 다르다면 그건 분명히 위선입니다. 그러나 속에서 진지하게 그 생각을 가지고 겉으로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위선은 아니지요. 기독교 정당 계열에서 자의식으로 참여한 진지한 분들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이라크를 공격한 조지 부시도 자의식에서는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고요.

그러나 제 자의식으로 기독교 정당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그렇게 강력하게 한다면 불교나 가톨릭도 정당 활동에 나설 것입니다. 그럼 종교 갈등이 심화될 수 있고, 그건 결코 성서적인 것이 아니지요. 기독교 이름을 걸고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현안에 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독교 정신과 가치관, 세계관으로 단체를 만들어 사회활동 하는 건 좋지만 정당 쪽은 아니라고 봐요.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우리가 믿는 신앙을 기준으로 신앙고백에 대한 문제에는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단에 들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선악의 문제이지요. 그러나 동성애나 이슬람 문제는 기독교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어 이슈 삼을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동성애 문제는 가톨릭과 불교도 찬성하지 않지만 나서지 않잖아요. 그런 면에서 기독교가 전략적으로 하수인 것 같습니다. 동성애가 좋다는 종교가 어디 있겠어요? 민주주의 정치에서 어떤 문제를 반대하는 의미로 정당을 구성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대처입니다. 모두를 위한 세계관과 가치관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요. 사회문제에 대해 강하게 말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공 교단, 공인인 목회자 신분으로 직접적 관여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목회자는 66권 성서 말씀을 해명하고 또 성서가 오늘에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사회를 향해 무섭게 이야기할 수 있지요.

한국교회가 사회문제에 강하게 이야기 하기에 앞서 중요한 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속에서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함부로 못 하겠구나 해야 하는데 선거 때마다 기독
교를 가장 쉽게 이용해 먹잖아요.

이번 선거에서 기독교 정당이 선거법을 위반한 경우도 많았지만 아무도 고발하지 않더군요. 혁명적인 상황이라든지 최악의 경우가 아닌 이상 민주주의 사회인데 국회에서 처리할 부분들을 실정법을 어겨가면서 주장하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니지요.

 

이슬람이나 동성애 문제, 사회 전체로 시야 넓히고
성경적 가치관 제시하는 노력 필요

 

○● 한편으로는 이슬람이나 동성애 문제에 대해 양산되는 공포심 속에 과연 이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현실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사실(fact)을 제대로 알려는 것은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동하는 바람잡이 정도의 이야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지요.

동성애 문제는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양성애적인, 동성적인 기질로 태어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의학적으로 검증된 결과조차도 서로 다르더라고요. 그럼 전문의학자와 현재까지의 검증 결과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학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적 기질을 가졌다면, 그럼 그들을 어떻게 도울까 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고요. 그게 아니라 병이라면 고칠 수 있는 방법도 이야기할 수 있지요.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일반 의학계의 권위자들을 통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어떠냐는 건 둘째 치고, 동성애가 분명히 성서의 가르침과 상충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같은 성끼리의 관계를 죄악으로 제시합니다.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1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구조는 같습니다. 본성 자체가 변화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요. 동성애는 2천 년 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아무리 다르게 보더라도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건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성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경 해석도 읽어봤지만, 일부 예외적 구절을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명백하게 기록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체로 읽어야 하니까요. 동성애가 성경에 위배되는 건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걸 죄다,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거라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생각하고 따뜻하게 품으면서 접근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에 대해 따뜻하게 배려해야지 공격적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에 대한 반대 운동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별금지’는 참으로 성경적인 단어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나섭니다. 이 세상의 메커니즘으로 볼 때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안을 반대하는 건 전략적으로 너무나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 즉 성적지향의 문제를 빼고 차별금지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해야지요. 성경의 가치관을 전하는 게 목적이라면 더욱이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슬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쿠크법을 보자면, 당시 이 문제가 논의되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비해 요즘은 자본이 그리 급하지 않다고 합니다. 사회적 현상을 감시하고 알려야 할 기관이 언론인데 양쪽으로 갈려서 눈 뜨면 알 수 있는 걸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어요. 기독교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고 전체를 보면서 기독교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외쳐서는 안 되지요.

이슬람은 종교의 하나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슬람을 제거한다? 기독교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이번에 기독교 정당 지지에 연합기관장들이 동참해 순진한 교인들을 호도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교회 리더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균형 잡힌 시각이 교회나 사회에 꽤 묵직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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