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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41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77
조효근 작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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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호] 승인 2016.05.09  13: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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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안시에 자리한 기독교경신(경교) 예배당 전경.

“그래요.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에 대한 평가를 너무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서두를 게 없어요. 마침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밭에 곡식과 함께 자라는 가라지 비유 이야깁니다. 심지 않은 가라지가 섞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었는데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우리가 뽑아버릴까요 했더니 주인이 말했지요. 가만 두어라 가라지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된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둬라, 하시지 않던가요. 참으로 현명한 말씀이죠. 가라지가 분명한데도 섣불리 뽑다가 함께 엉켜있는 곡식 상하게 할까봐서 시간의 여유를 갖자는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위드가 가라지 이야기를 하자 분위기가 조금은 안정되어 갔다. 다음 말을 잇는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왜들 조용히 계십니까? 내가 혹시 심한 말을 했나 걱정이 됩니다.”

다위드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다가 청년 스데반을 주목했다. 스데반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조심스런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제가 좀 성급했습니다. 사제께서 말씀하신 가라지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태복음의 씨 뿌리는 비유 이야기는 참으로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얼마동안 같은 밭에서 살았다고 가라지가 알곡 되지는 않겠으나 알곡들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서 가라지도 얼마간 목숨을 연장하게 되는군요. 어쩌다가 가라지로 태어났는지 모르겠으나 다위드 사제, 가라지가 알곡으로 바뀔 수도 있을까요?”

가라지가 알곡으로 바뀌겠느냐는 청년 스데반의 말에 회중은 크게 웃었다.

“알곡으로 바뀔 수는 없어도 생명을 누리는 시간은 연장되는 것이죠. 생명이란 것들이 모두 그래요. 생명 누리는 어느 시간까지 살아남았다가 그 끝에는 은총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들 기독교 신자들은 특별히 잘났다는 오만스러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럼요. 주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해야죠.”
회중의 화답이 즐거운 노래처럼 들렸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착한 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귀하게 보호 받는 알곡 대접 받는 것은 우리를 죄악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 예수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노예였어요. 노예가 뭔 줄 아시죠. 죄의 노예, 죄의 노예가 되면 우리 몸에서 자제력은 물론 판단력, 도덕과 윤리의 분별력까지 없어지니까 말 그대로 인간이 그저 짐승이나 진배없죠. 이런 인간을 죄악의 사슬에서 벗겨내고 물건 값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비싼 값 지불해서 자유인 만드시고 하나님의 아들 딸 신분으로 이끌어 주신 주 예수의 대속해 주신 은혜를 어찌 우리가 소홀히 합니까. 그렇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때가 있더군요. 누구에게 말을 붙여볼 때도 상대방이 흥을 내지 않으면 말을 걸었던 내가 먼저 민망해질 때가 있었어요.”

“아, 전도할 때의 경우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상대방을 만나서 그들을 예수 앞에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성급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특히 지금 우리들이 논의하고 있는 이슬람 신자들을 상대로는 조심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스데반이 대응을 했다.

“사람들을 사귈 때 자연스럽게 마치 가족을 대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죄 용서하심의 은혜를 전달하기 전에 이미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 죄와 피를 흘리셨어요. 아직 그들 용서받을 이들이 모르고 있을 뿐, 십자가 희생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사실을 주님 자신이 알고 계시고, 또 우리들이 복음을 배워서 알고 있지요. 다만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는 내용을 전해 주는 우리는 마음이 기쁘고 감격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잘 알잖아요. 복음이 무엇이고 복음의 은혜를 받은 당사자의 생활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지요. 혜택 받은 당사자만 모르고 있으니 우리는 매우 넉넉한 마음으로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믿지 않으면 어찌하고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걱정할 필요 없어요. 상대가 받아들일 때까지 전해야 하고 또 하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을 전해 주는 전도자는 반드시 상대가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상관없이 그 사람은 주의 은혜로 용서받고 새로운 은혜의 세계로 편입된 사람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구에게 어느 귀인이 값비싼 선물을 전해주도록 해서 그 귀한 선물을 가져다 주었는데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나는 이 선물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왜 이런 선물을 조건 없이 받아야 합니까. 하면서 한동안 거절한다고 합시다. 그럼 그 선물을 전해줄 사람이 그냥 내버려둔 채 돌아서 버리면 되나요. 조금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물 받을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 귀인이 전해준 선물을 기쁘게 받아줄 때까지 그 선물과 함께 선물 받을 당사자를 지켜주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마치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와 매우 유사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자세로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선물인 복음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복음 전하는 자의 발걸음마다에는 찬송과 기쁨의 노래가 동반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당면한 이슬람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위드는 자세히, 그리고 매우 지혜로운 방법으로 함께 모인 50여 명의 청년 전도사들에게 전도사 학습을 시키고 있었다.

“사제님! 저는 당나라 출신 이세정입니다. 이곳 사마르칸트와 이식쿨 지역을 오고가면서 장사를 합니다. 이식쿨에 부모님도 함께 계시면서 이슬람 친구들과 가까이 지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인간성은 참 좋으나 예수님이 너희들의 죄를 대신하셨다는 말을 꺼내면 성깔을 부리고 신경질을 냅니다. 왜 그럴까요. 저도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고민이 많습니다.”

“이세정 형제여, 좋은 지적을 하셨어요. 아마 지금은 당나라가 탈라스 전투에서 패전한 이후 이슬람 세력이 사마르칸트는 물론이고 이식쿨 지역에 강세를 이루고 있을 겁니다.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호전성이 있고 좋은 표현으로 하면 열심이 대단한 종족의 배경까지 가지고 있지요. 저도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슬람 종교는 고대 이스라엘 종파나 기독교로부터도 후한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유대교나 기독교에 반감이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이슬람 교리를 기독교의 복음과 비교하면 충돌할 가능성이 있지요. 또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대속 죄에 대해서 낯설겁니다.”

“낯설은 정도가 아니라 대속 죄를 말했거나 강조하면 흉기를 들려고 합니다. 무서워요.”
“그건 안됩니다. 무서워 하다니… 우리 주님은 사랑하셨기에 십자가의 죽음과 형벌들을 거침없이 받아들이셨죠. 앞서 말했잖아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그릇입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는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담는 그릇이 신자입니다. 두려움이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다위드 사제님, 제가 실언을 했어요. 무섭다기보다는 약간 답답했습니다. 저도 지금 말씀하신 대로 내 몸이 주님의 사랑 담는 그릇이 되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그래요. 이슬람은 아마 그들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채우지 못해서 분노하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너나없이 가슴에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고통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시죠. 에덴에서 범죄한 아담을 쫓아낸 하나님이시니까. 그러나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을 우리 인간의 가슴에 오롯이 담아줄 수 있는 사랑의 장치가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하셨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장벽을 거두어 내셨기에 구세주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슬람 사람들의 차디찬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줘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교리적인 표현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주고 형제가 되어주고, 더 나아가서는 가족이 되어줄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말이 아닌 말, 우리의 몸행동으로 하는 사랑이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다위드와 함께 한 사마르칸트 예비 사제요 중앙아시아의 앞날을 지켜갈 인제들의 강의는 한 주간 동안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다위드는 이식쿨로 떠났다. 이세정 형제와 사마르칸트의 스데반이 동행했다. 이식쿨에는 그리스도인들보다 이슬람 신자들이 훨씬 많다고 이세정 형제가 말했다.

다위드는 이식쿨에 사마르칸트에 뒤지지 않을 지도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사마르칸트는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종교적인 힘을 기르기에는 상업 도시요 정치적인 요충지라는 점이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 다위드 일행은 천천히 이동했다. 한 달 이상 걸려서 이식쿨에 도착하기도 하고 이슬람과 당나라가 격전을 치렀던 탈라스 지역에 이르렀다.

다위드는 이식쿨에 100년의 터를 닦을 듯이 그가 살 집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스승님, 100년쯤 여기서 사실 것처럼 하시네요.”
“아닐세, 천년 살림을 준비하는 거야.”

스데반은 언제부터 다위드를 스승으로 호칭하고 다위드는 그에게 반말로 응대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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