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 연재 소설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42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78
조효근 작가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597호] 승인 2016.05.18  15:40:2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중국의 한 박물관에서 만난 옛 흔적들.

“저 드넓은 평원을 바라보게. 저기 저 왼편 저 산자락 아래가 탈루스 성인데 거기가 이슬람군의 본진이지, 그들은 호라산 압바스 왕조의 공신인 아부 무슬람과 이븐 살라히라는 명장들이 이끄는 정예군 15만 명으로 당나라군을 공격했다네.”

“당나라는 그럼 얼마 정도의 군사를 동원했나요. 장수는 누구였구요?”

“당나라는 이슬람 군에 비하여 그 절반도 되지 못하는 2만 명의 군사와 용병으로 발한나와 갈라족의 1만 명이 합세하고 있으니 군세가 비교도 되지 않아요. 그러나 다행히 장수는 당나라 제일의 고선지 장군이라네. 고 장군은 고구려의 유민으로 당나라에 귀화한 부친 고사계 장군의 아들인데 그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맞비교 되는 천하명장이었네.”

“그렇군요. 그러나 양측의 군세가 너무나 차이가 나네요. 그래서 지고 말았군요.”

“그게 아닐세. 열세의 병사를 지휘했으나 고선지 장군은 초・중반 과정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였지. 아랍 연맹군은 일단 후퇴를 해서 탈루스 성내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어요.

“그럼, 어째서 졌지요?”
“아랍군은 수성을 통해서 고선지 장군을 당해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 고선지 군은 산악전에 명수들이지만 평지에서는 자기네가 밀리지 않는다고 보았어요. 더구나 아랍군은 고선지 군의 내부 교란을 시도했었네.”

“내부 교란이라니요?”
“고 선지의 당나라군이 고용한 발한나와 갈라록 족을 매수했어요.”
“저런, 저런…”

사실 그랬다. 고선지 장군은 당나라의 입장에서 이민족 출신이다. 뿐 만 아니라 당나라는 물론 당나라의 전왕조인 수나라를 두 번이나 물리쳤고 수나라가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후 유증으로 왕조까지 문을 닫았었다. 당나라 또한 천하제일의 영웅적 황제인 당태종을 사경으로까지 몰아붙였던 고구려의 피가 흐르는 고선지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고선지 장군이 안서 도호부의 최고 책임자이니 기본적으로 10만 명의 군사를 보유해야 했으나 금번 아랍 연맹 군과의 전쟁이 몇 년 전부터 예견 되었는데 당 현종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2만 여명 이상의 군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나 고선지 장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탈루스 전투 나흘 째 되는 날, 그날이 결전의 날이었다. 아랍 이슬람군은 아랍군 정예와 돌궐족 개종자들이 연합한 10만 명이 넘는 군을 총동원 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양측 대장군들은 판단했다. 고선지에 비해서 유명세는 덜했으나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대들보 이분 살라히 또한 명장 중 명장이었다.

아랍 연맹군 10만여 명이 천천히 그러나 느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형세로 밀고 들어왔다. 고선지 부대는 적의 1차공격을 차단한 후 이제까지와는 달리 용병부대인 발한나와 갈라록 족을 앞세우도록 명령했다. 갈라록 족과 발한나 부대는 모두 경기병이다. 이들 용병부대가 전면에 서서 전투를 이어갔으나 그들은 아랍군 기병들과의 전투에서 이렇다 할 전투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채 줄행랑이었다. 고선지 군은 안서군 주력 부대인 맥도부대가 버티고 있어서 전세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혈전이었다. 고선지 군과 아랍 연합군 모두 상당한 수의 사상자를 냈다.

고선지군은 여전히 아랍군을 제압했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 과정에서 아군의 체력소모를 걱정해야 했다.

1, 2, 3차 전투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승기를 잡았던 것과 달리 나흘째날 4차 전투과정은 밀고 당기는 식의 대결을 하다 보니 체력소모를 걱정해야 했다. 수의 열세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섯째날 전투다. 양군은 오늘이야말로 승부하는 자신감을 가진 듯이 보였다. 이븐 살라이와는 달리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아부 무슬림까지 전진적인 자세로 부대를 이끌었다. 고 선지 역시 뒤질 수 없었다.

전투는 해가 기울도록 계속되었다. 팽팽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랍군은 석양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그날 전투를 끝내고 탈루스 성으로 갔는데 오늘따라 전투를 계속할 모양이다. 드넓은 벌판에 10만여 명은 더 되어 보이는 집결해 있었다.

대군이 총 출동한 저의는 무엇일까? 그러나 궁금증은 곧 풀렸다. 아랍 연맹군에 회유를 당한 갈라족과 발한나 부대가 결정적인 순간, 고선지의 당나라군을 공격하면서 당군이 무너진 것이다.

당나라 군사가 탈루스 전투에서 이슬람 군에게 패전을 하면서 중앙아시아는 이슬람의 활동무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 해는 AD 755년이다.

“스데반, 겨우 몇 년 전 일세.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아랍 이슬람 군과 당나라군의 시신들이 묻혀 있는 무덤일세. 어서 떠나세.”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이곳에서 밤을 지내고 싶습니다. 이슬람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을 털어낼 수 없어요.”

“그렇지만도 않아요. 이슬람과 기독교가 전쟁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아닙니다. 아랍군이 독자적인 능력으로 당나라군을 이긴 것이 아
니잖아요.”

“무슨 말인가?”
“네, 돌궐족입니다. 돌궐족은 당나라에 쫓겨서 중앙아시아나 페르시아와 비잔틴으로 흩어졌는데 그들이 아랍 이슬람을 만나서 개종을 했고 아랍군의 연합세력이 되어 당나라 뒤통수를 쳤어요. 저들이 우리 기독교를 공략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나는 믿어요. 이슬람은 유대교의 한 분파일 수 있어요.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나왔듯이 이슬람의 내부에서도 절반 이상은 우리 기독교와 일치관계를 이룰 수 있어요. 바로 그 부분을 우리가 놓치면 안 됩니다.”

“어떻게요?”
“우선 이슬람을 지나치게 경계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저는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아요.”

“허어, 자신감을 가지세요. 이슬람은 두렵거나 강한 존재가 아니라 그들 가슴이 텅 비어 있어요. 우리가 그들 속에 있어야 할 사랑의 분량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스승님, 저를 가르쳐 주세요.”
“스데반, 스데반이 누군가요?”
“네? 거 무슨 말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말씀입니다. 스데반이 스데반을 모르고 있으면 되는가?”

다위드의 말에 얼마간의 노여움이 서려 있는 듯 했다. 그래 스데반이다. 스데반이 유대교 실력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현했음을 성경 사도행전은 말하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가 기록된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은 “하늘은 나의
보자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 66:1~)는 말씀을 꺼냈다. 그는 아마 예수 따라 예루살렘에 갔을 때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던 모양이야. 그때 예수님이 회초리로 성전안의 장사꾼들을 후려치면서 했던 말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라”(요 2:19) 하신 말씀 말일세. 이 말씀은 스데반 당시로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선포였어요. <성전 무용론>을 말했으니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남을 길이 없었을 거야. 그러니 그가 유대인 열심 파들이 던지는 돌 세례를 받고 순교했던 것이죠. 그때, 사울이라 이름하는 율법사(후에 바울)가 스데반 죽이는 데 공신이었지. 다시 말하면 예수의 길은 목숨 내놓는 길이야. 스데반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지 말고 스데반처럼 살아야 할 거야.

“네, 뼈아프게 말씀 깨달았습니다. 깨닫고 보니 이 자리가 무서워 지내요. 어서 떠나시죠.”

스데반은 탈루스 격전장을 떠나면서 자기 자신을 꾸짖었다. 이놈아, 스데반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 뭐하냐? 사도행전 일곱 집사 중 탁월한 인물인 스데반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스데반은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가 스승으로 모시는 다위드의 언행이 가끔씩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어찌하는가? 이슬람이 유대교의 한 분파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또 성전 무용론은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낯설기도 하고 두렵게도 느껴지는 다위드와의 관계가 차츰 조심스러워 졌다.

이식쿨 호의 아름다운 수면은 마음의 평정을 아침저녁으로 선물한다. 달 밝은 밤이면 청록색 물빛이 시커먼 어둠으로 변하기는 하지만 사계절 모두 크게 차지도 않아서 한 겨울에도 알몸으로 뛰어들 수 있다. 호수의 동서 길이는 179km이고 폭은 가장 넓은 곳이 57km로 가늘고 긴 사람의 눈 모양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스데반은 다위드를 따라서 이식쿨 식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만의 시간에 메달리기를 한주간이나 보내고 있었다. 다위드가 인도하는 공부시간마저 특별기도 기간이니 양해를 구한다 해놓고 혼자서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밤마다 이식쿨 호수로 나와서 물가의 한적한 숲 속 바위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주일 째 되던 날, 밤늦은 시간 다위드 사제가 스데반의 바위언덕을 찾아왔다.

“이 사람 스데반, 무슨 기도가 스토록 심각한가요?”
다위드가 스데반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사제님. 아닙니다. 앞으로 스데반 집사 같은 인물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중입니다.”

“그래요. 감사한 일이군. 그러나 모르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 빠른 때가 있죠. 아마, 형제는 이슬람이 유대교 좌파라는 내 말에 지금 고민을 하고 있을게야. 그렇죠?”

“아, 그게…. 그러니까….”
“더듬거리지 마시오. 내가 지금까지 짐작한 바로는 그게 분명하오. 고대 이스라엘의 때, 그러니까 남북조 시대의 북왕조가 앗수리아에 의해 소멸 되었죠. 그러나 유대인들은 흩어진 북왕조 열 개지파 후손을 찾아 나선 일이 없어요.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열 개 지파 북왕조 이스라엘은 아라비아에 있었소. 또 그들 사마리아는 아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훗날을 기약하면서 살아남기로 했어요. 바로 오늘 당신과 내 앞에 위협적 존재로 나타난 이슬람이 영적 표현으로 했을 때 유대, 예루살렘파 유대인들이 버리고 외면한 바로 그 사람들이니 그들이 사마리아파 북왕조 열지 파 후손으로 보아도 크게 틀린말이 아닐 거야….”
 

조효근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