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 광 섭 목사창현교회 담임

콩나물의 부위를 말할 때 머리를 왜 대가리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며칠 전 일이다. 오후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집에 들어가는데 현관에서부터 요리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 주방에 갔더니 콩나물이 들은 그릇에서 물이 끓고 있다. 콩나물을 데치고 있었다. “물이 끓고 있는데 불을 꺼야 되는 것 아니냐?” 하고 물었더니 콩나물 대가리가 익으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와 결혼한 지 45년이다. 5년을 연애하고 결혼했으니 50년을 함께 지낸 것이 되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졸업하기까지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했으니 알고 지낸 세월의 길이는 55년이 된다. 그래서 둘만의 생활에서 존대는 사용하지 않는다. 어쩌다 존대를 쓰면 언짢은 일이 있느냐고 할 정도다. 예외는 있다.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깍듯이 존댓말을 쓴다.

어쨌든, 콩나물 대가리가 익어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아무리 삶아 봐라, 대가리가 익는가?” 했더니 “사람의 머리는 안 익어도 콩나물 대가리는 익어요”라는 것 아닌가. “그래 네 말이 맞다” 하고 돌아섰다. 함께 살아 온 세월만큼 서로 닮아 서로의 말과 생각을 읽고 있는가 보다.

그러고 났는데 ‘익는다’라는 단어가 내 생각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슬며시 서재에 앉아서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익다’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이렇게 떴다. △열매나 씨가 다 자라서 여물다 △날것이 뜨거운 열을 받아 그 성질과 맛이 달라지다 △술이나 김치, 장 따위가 빚거나 담근 음식물이 맛이 들다 △일이나 동작 연장 따위가 손이나 몸에 여러 번 겪어 보아 몸에 익숙하다 △무엇이 눈이나 귀에 자주 보거나 들어보아 설지 않고 친숙한 느낌이 있다는 등 5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했다. 문득 목사안수 받고 성직 수행하기 45년이 되어 이제 은퇴를 한 해 앞두고 있는 나에게 자문한다. 나! 세월만큼이나 맛과 멋이 있게 익었나? 숨이 멈추어진다. 성직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 것도 같기는 하지만 설익었다. 아니, 내 스스로가 내 맛을 보아도 콩나물을 끓이다 중간에 뚜껑을 연 것처럼 비릿한 맛이 떠오른다. 틀림없다. 안 익은 것이다. 맛이 제 맛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버림받지 않고 지내 왔으니 대견하기보다 하늘과 땅의 사람에게 은혜를 입고 살아 온 것에 감사하며 책상에 앉은 채 눈물을 담은 마음의 기도를 드렸다. 아내가 익혀서 연하게 된장에 무친 콩나물로 다른 반찬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선배 목사로부터 들은 콩나물 이야기가 있다. 목회자가 귀하던 60년대 초 신학교를 졸업하고 소명과 사명감으로 가득한 심령으로 외진 시골교회 전담 전도사로 부임했다. 시골 전도사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전도사로 몇 년 헌신하다 모처럼 모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선생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성직의 어려움을 원망이 담긴 불평으로 푸념을 하게 됐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어렵고 특히 설교를 해도 알아듣는 것 같지 않고 신자들을 보아도 도무지 생활의 변화도 없어 힘들고 실망스럽고 회의를 느낀다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선생님은 그의 말을 다 들으신 후 말씀하셨다. “전도사! 콩나물시루 알지? 시루에서 콩나물을 키울 때 물을 주면 그 물이 어떻게 되나?” 제자가 “예, 그대로 아래로 흘러내리지요”라고 대답하자 침묵의 여유를 가지시고 제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시던 선생님은 “물이 다 아래로 새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크지 않는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제자는 그 후 목회에 어려움을 말하는 다른 목사들에게 그날 성생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다 아는 말이 되었다. 그 말씀을 하신 선생님이 바로 김재준 목사님이시다. 지금은 선생님의 말씀이 더 간략하게 “그래도 콩나물은 커”로 유명하다. 이 금언 같은 말씀으로 스스로 묻고 있다. 내 물이 아니라 하늘 물인 말씀을 제대로 제시간에 정성을 담아 주고 있는지? 혹시 팔아 내 돈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물을 주는 장사꾼은 아닌지? 한 수 더 떠서 그 물에 성장 촉진제가 되는 사람의 몸에 해로운 약품을 섞어서 물을 준 파렴치한 자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지?

아내가 무쳐준 콩나물처럼 대가리가 잘 익어 잘 어우러진 맛이 나는 사람, 그리고 잘 익혀 맛나게 무치겠다는 마음으로 교인과 교회와 역사와 하늘을 부름 앞에서 사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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