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기의 출발점에서…

16세기 루터와 그 친구들에 의하여 로마 가톨릭의 철벽을 깨고 드디어 새 종교 출현에 버금가는 개혁의 열망을 획득했었다. 세계는 16세기 개혁을 “기독교 개혁”이라 하지 않고 “종교 개혁”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대접해주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기독교 개혁과 종교 개혁이라는 어휘 간의 차이점이나 그것들이 가지는 암시성에 대한 경외심을 지켜내야 한다. 여러 종교들 중 하나인 기독교의 개혁운동을 종교대표성을 부여하여 “종교 개혁”이라는 용어 사용을 용인했다 함은 기독교가 일종의 부채감을 가져도 될 법한 사안이다.

모든 종교들을 대표하여 모범적인 종교의 개혁을 부탁하는 세계인의 묵시적 요구를 기독교는 인식해야 했다. 그리고 개혁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1648년 신구 기독교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는 모든 종교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종교의 개혁안을 세계 앞에 제시했어야 했다.

다시 말하면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신생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되면 가톨릭이라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 세상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유아기 과정임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성장해 가려는 많은 노력해야 했었다.

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자, 이 아이가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 과정마다 부모와 교사, 그리고 사회환경과 국가체계까지도 동원하는 등의 교육과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16세기에 태어난 기독교 신교는 역사와 신학적 진보에 소홀하여 5백여 년의 연륜을 가졌으나 소년기 이전의 유아기 적인 모습으로 역사 위에 내던짐을 받은 모습 같기도 하여 안타깝다.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검증과 자기 반성적인 고백에 둔하고 스스로 성장과 성숙을 포기한 채 허공만 바라보는 지진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기독교다.

풍편에 들으니 그래도 독일교회는 루터의 종교 개혁 500주년이 되는 2017년의 10년 전, 그러니까 2007년부터 매년 루터의 종교개혁 가치와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는 자기 살핌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그럼 어떤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난 그 일에 대해서 어느 만큼 깊이 있는 성찰을 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마르틴 루터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칭의”사상과 교리적 자신감이 있는가? 또, 루터가 야심적으로 선언했던 “만인제사론”에 대한 고뇌와 반성, 또는 그 깊은 뜻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직통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루터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표현했던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일으키리라”(요 2:19) 했던 예수님의 말씀이나 마치 고담준론의 한 획을 그어 주듯이 말했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인데 너희가 나의 거할 처소를 어디에 짓겠느냐” (사 66:1) 했던 이사야의 도움까지 받아야만 해법이 나올 개혁사상의 알짬에 대해서는 어떻게 돌파해 갈까? 이 또한 16세기적 기독교의 부채가 되는데…… .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