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81>

   
▲ 담을 넘어 일자리가 있는 이스라엘로 가려 긴 줄을 서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필자를 비롯한 관광객들의 마음은 안타까움이 그득했다.

술라귀 추장은 거침없이 말했다. 자기의 부하는 물론이고 서돌궐 족 대다수가 이미 흑해 주변 트라브죤이나 아르메니아의 아라랏 산 남동쪽으로 이동을 마쳤다고 했다.

다위드는 술라귀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를 격려했다.

“추장이시여, 로마제국을 점령하든지 그들과 동업을 하든지 저 하늘의 주인이신 분이 결정하실 일이고, 그대는 여기 머무는 동안 야곱 선생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위드는 술라귀와 야곱에게 종교는 우리들을 편 가르지 못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관계이기에 더욱 서로 신중하게 사귐을 가져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했다.

다위드의 말을 들으면서 술라귀는 질문을 하거나 반대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잔뜩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다위드가 야곱에게 술라귀가 가는 편에 다메섹에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슨 일로 입니까?”

야곱은 깜짝 놀란다.

“아시겠지만 다메섹에는 마리아 교수님을 지원하는 이들이 많이 있어요. 그동안은 시리아 교구의 신학적인 견해가 단성론 쪽에 기울어 있는 이유로 우리가 경계해 왔는데 이제는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자심감이 생겼어요.”

“그럼 다메섹 학자들을 초청할 계획이신가요?”

“그래요. 조금 전에 들으셨죠. 술라귀 추장의 말이 얼마만큼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슬람의 야심은 이미 그들이 지상에 태어날 때부터 분명합니다. 그들은 유대교보다 그들이 더 정확한 아브라함의 사명 계승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일까요?”

“기독교의 승계자가 되어 기독교 안에 묻어 있는 유대교적인 인습을 제거하고 아브라함 정신의 온전한 승계자가 되겠다는 야심이겠죠.”

“그래요. 야곱 수사도 이슬람의 존재를 바로 보신 겁니다. 이 같은 때에 우리 기독교가 단성론이다 양성론이다의 시비에 휘말려서 기독교의 힘을 스스로 악화시켜서야 됩니까?”

“그건 꼭 그렇게만 볼 필요 없습니다. 복음서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는 단성론과 양성론의 차이점을 몰랐지요. 성령시대(교회시대)가 도래했을 때에도 초기 지도자들은 단성론과 양성론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위드를 바라본다. 다위드는 야곱 수사의 두 손을 꼭 잡아 쥐고 잠시 말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환해오는 과정의 시간차로 봄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콘스탄티누스적인 기독교로 방향을 바꾸면서 부작용이 생겼어요. 우리 기독교가 급격하게 헬라 철학을 수용하면서 셈족 고유의 사상과 충돌한 것이죠.”

“그 부분이 어려워요. 좀 쉬운 설명으로 말씀해 주세요.”

“그러죠. 헬라 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변형이죠. 헬라 철학은 알렉산드로스 이후 인도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후기 철학으로 볼 수 있지요. 이는 유대교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만남과의 차이점을 가진다고 보면 좋을 것입니다. 문제는 콘스탄티누스의 영향권으로 흘러간 기독교가 헬라 철학 의존도가 높은 교리학을 주장하면서 신인 양성론, 곧 예수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기도 한다는 교리체계가 나왔으나 유대교 전승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셈족 고유의 사상에 기초한 단성론과 충돌하여 기독교가 분열되어버린 겁니다.”

“지금 우리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처지도 그래서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이군요.”

“그렇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죠. 개인적인 희생이 아니라 당시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있다가 이단으로 정죄 추방되었을 때 로마기독교는 반 토막 났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아라비아 무함마드의 이슬람이 등장했다고 보는 경세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단성론과 양성론 간의 화해를 이루지 못하면 세계 역사의 주인공 노릇에 끝내 위기가 올 것입니다.”

“사제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군요. 그럼 이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이 없어요. 지금 우리들이 진행하고 있는 당나라 선교도 이미 한계가 왔어요. 우리는 아직도 황실종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들의 큰 어른이신 알로펜 총주교님이 활동하실 때 그 어른이 당태종과의 친밀한 관계였음에도 황실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평민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했으나 황제의 비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쯤 로마제국 교회가 우리를 돕고, 로마 제국이 정치적으로 당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우리의 환경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당나라 기독교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어요. 아침저녁으로 황제의 눈치나 보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요즘은 황제의 권력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당나라도 국운이 기울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말은 가려서 해야 합니다. 우선 야곱 수사가 당장 다메섹으로 가서 실력 있는 성경학자, 성경언어학자들을 모셔 오도록 힘을 써 주시오. 내가 서찰을 써 드리리다.”

다위드는 야곱을 다메섹으로 보낸 후, 성경읽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스데반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다위드의 인품을 알아보는 이식쿨의 무슬림 사람들이 찾아와서 다위드의 성경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다위드는 구약성경 중심으로 성경내용과 쿠란이 겹치는 곳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해 주면서 조심스럽게 성경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이슬람 학자 이스마일이 다위드의 강조점에 대해서 동의하고 나섰다. 그는 다위드가 조심스러운 언행으로 자기들을 존중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다위드 사제님,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쿠란을 가진 것보다 1천년쯤 전에 성경을 가졌습니다. 저희 조상들은 그때 사막의 떠돌이 생활을 했지요. 입에서 들려오는 유대인의 독경소리를 귀로 들어 마음에 담아두는 세월을 1천여 년 지내다가 그 내용을 쿠란에 담았다고 봅니다. 대 예언자 무함마드께서 히라산에서 받은 계시들의 핵심이 대부분 유대인이나 기독교의 성경과 일치한다는 것을 볼 때 우리 세 종교는 형제들임도 드러났습니다. 저희 이식쿨 무슬림들은 다위드 사제를 우리의 지도자로 모시고 싶습니다.”

“이스마일 님, 저에게 그런 신뢰를 보여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래요. 우리는 오랜 조상의 가르침을 받아서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나 종교들의 뿌리가 같다면 형제이죠. 앞으로 우리는 형제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식쿨 생활에 재미가 난 다위드에게 어느 날 장안으로부터 아들 요한이 왔다.

“아버지, 영부 주교가 위중하십니다. 아버지가 당장 달려가셔야 합니다.”

다위드는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세월 탓이다. 영부 주교의 건강을 위하여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다위드는 장안으로 떠날 차비를 했다.

스데반이 성경읽기를 21독으로 잠시 중단하고 다위드를 따르기로 했다.

“사제님, 앞으로 3백 번 정도는 신구약을 읽으렵니다. 말씀을 읽으니 마음이 평화롭고 마치 구름 속에서 생활하는 듯 한 황홀함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을 평생 잊지 않으렵니다.”

“그래요. 3백 번의 성경읽기를 정확하게 하려면 평생 걸릴 터이니 스데반의 한평생은 구름 속 같은 황홀경이겠군요.”

다위드 일행은 이식쿨에서 장안까지 낮 밤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영부 주교를 만나고 싶었다. 마차를 타고, 말을 갈아타기도 하고 달렸으나 마음 같지가 않았다. 도둑이 출몰하는 곳은 집단으로 움직여야 하고 사막의 모래바람에 발목이 잡히는 등 40일이나 걸려서 장안에 도착했다.

영부 주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위드 앞으로 남긴 영부 주교의 당부 내용이 다위드 앞에 수북이 쌓였다.

다음날, 본부 강당에서 다위드의 주교 서품식과 당나라 기독교 최고 책임자로 추대하는 행사가 열렸다.
다위드가 발표한 내용들이다.

“우리 당나라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로마제국 기독교를 짝사랑하지 않겠다. 안토니 주교를 사절단으로 보냈으나 그 어른은 로마에 다녀왔는지에 대한 소식도 전하지 않고 박트리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수리아 기독교와 좀 더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성경번역과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주석서들을 번역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겠다. 우리들의 오삼 수도회 조직을 강화하고 이 나라 전토로 확산해 나가도록 힘쓰겠다.”

한 달쯤 후에는 야곱 수사가 편지를 보내 왔다. 수리아 학자들 10여 명이 동행하여 코초에 와 있다는 내용이다. 쿰바홀 주교가 잘 보살펴 주어서 학자들도 만족해 한다는 말도 있었다.

쿰바홀 할아버지, 다위드가 이식쿨에서 돌아오는 길에 코초에서 만났을 때 그를 가슴팍에 껴안고 말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격려해 주던 모습을 다위드는 잊지 못했다. 쿰바홀 주교의 눈물은 무엇을 뜻할까?

“다위드야, 너는 할아버지를 닮았어. 이제는 우리들의 영적 지도자가 된 다위드에게 내가 할아버지 노릇이 하고 싶으니 어찌하누, 내가 망령이 났을까요? 다위드 님.”

쿰바홀 주교는 다위드를 붙들고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고 반말과 존댓말을 뒤섞어서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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