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1세기 종교개혁은 만인제사론을 완성할 수 있는 교회론 제시로

“만인제사론”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 만인 제사론이 나왔는데 이것의 운동력은 농민 반란으로 나타났다. 루터는 이 사태 해결자로 등장했으나 중재에 실패했다. 영주들이 이 사건을 루터에게 주면서 당근론을 제시했다. 잘 달래서 함께 살아가자는 현실론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가톨릭 영주들의 요구보다 앞서 나갔다. 타협은 없었다. 무조건 해산하라.

루터는 농민군에게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손가락을 잘라서 혈서를 썼다. 그러나 농민군은 퇴로가 없었다. 타협안을 받아들일 것 같았는데 루터의 혈서가 나타난 것이다.

때는 1525년 7월, 농민반란군 10만 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은 노동력이 없는 자들은 죽이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려갔다.

루터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그리고 만인제사론을 들고 나타나서 개혁자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듯 했으나 그를 따르는 농노들을 죽이고 말았다. 루터에게 중재를 부탁했던 가톨릭 영주들마저 루터의 강경책에 놀라서 혀를 내둘렀었다.

왜 그랬을까? 루터는 1525년 7월, 바로 직전에 수녀 출신 카트리나와 결혼하고 피로연을 넉넉한 분위기에서 열기도 했었다. 생명 하나를 위해서 결혼을 선택했다면서 10만 명의 장정들을 사단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면서 죽이고 말았으니 루터의 종교개혁 지도자의 자질 평가가 나왔다. 1525년 7월 십만 반란군이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최소한의 요구를 배반함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루터의 만인제사론은 중보자 없이 천하 만인들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예수의 1세기 요구였으나 루터가 다루기에는 벅찼던 16세기였다. 그래서 루터만이 아니라 모든 16세기의 종교개혁은 ①오직 성경 ①오직 믿음 ①만인제사 중 만인제사론 접근에는 한계를 보였었다.

오늘의 21세기 종교개혁은 만인제사론을 완성할 수 있는 교회론 제시로 “만인제사론”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만인제사론”은 바울 선생의 교리신학과 함께 제4 복음서인 요한복음의 도움을 받아야만 뿌리를 내리게 된다.

비로소 기독교는 탈 종교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어 종교시대를 청산, 종교 아닌 종교로서 기독교의 가치를 제시하는 유일종교의 완성도를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의 절차까지도 내다 볼 수 있는 영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날을 엿볼 수 있다.

바라봄의 은혜, 그 죽으심에 동참하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만날 수 있는 주 예수의 은혜로 주께서 이끄시는 은혜의 날들을 찾아갈 수 있고, 드디어 만인제사 신앙과 신학의 절차를 이루어내는, 완성도의 날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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