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의 나이인 지금도 대학에서 강의하는 군사학 분야의 대부로 알려진 이종학 선생과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와의 6월 20일자 좌담에서 이 선생은 6·25 직전의 미스터리한 대목을 요약한다. ① 6월 10일 군 수뇌부의 대규모 인사이동으로 대부분 사단장이 부대를 장악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② 6월 11일 발동한 비상 경계령을 23일 24시를 기해 해제했다. ③ 6월 24일 38선 근무병력의 3분의 1을 휴가 보냈고, 나머지 병사들도 외출·외박을 시켰다. ④ 6월 24일 저녁에는 육군 장교 구락부 개관 축하 파티를 열어 총참모장(채병덕) 이하 군 수뇌부와 전국 주요 지휘관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날 북한군이 밀고 내려왔을 때 대부분 곯아 떨어져 있었다.

다음 이야기가 가능성의 힌트다. 당시 파티는 2차로 국일관에 가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술값은 당시 연합신문 주필 정국은이 냈는데 그는 휴전협정 후 간첩으로 체포되었고 1954년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재판기록이 없어졌다. 이 정도면 당시 우리 군 지휘부는 물론 주요 기관에 첩자들이 활동했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러고도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아남아 있음은 하늘의 하나님이 도우심이라 할 수 있다.

6·25 국난 66년째인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나라를 지키고 또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세월 동안 북한 권력자들의 노리개가 되고, 또 노예가 되어있는 동족의 비극을 해결해 낼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비극이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님도 주목해야 한다. 동일 언어의 단일 민족이기에 남북 분단은 지리적 나뉨에 머물지 않는다. 분단과 분열의 귀신은 남북만이 아니라 동서, 또는 사상이나 경제적 사건들에도 민감하여 조금만 다르고 얼마간의 차등도 견디지 못해서 아우성임도 분단국의 현상일 수 있다.

우리는 6·25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사람들, 또는 6·25 그 시대의 공로자들에 대한 배려, 또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론을 강화하고 북한의 2천만 인구를 난민으로 보면서 어떻게 하면 동족 모두의 안녕을 이루어 낼 것인가를 깊이 살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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