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이 내 죄를 대속(代贖) 하심이라는 고백을 거부한다. 신경질적으로 거절한다. 이어지는 삼위일체 교리 또한 성부, 성자, 성령 등 3신을 믿는 다신교적 행위라고 비웃는다.

이 같은 이슬람의 오해는 콘스탄티누스(AD 313~) 이후 신플라톤 사상에 근거한 기독교 헬라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된다.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로마제국은 비잔틴 제국으로도 호칭되는데 비잔틴은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의 집중지대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누스의 비잔틴 식 요구는 기독교의 본질을 얼마간 훼손하였기에 비잔틴 식 기독교 식 사상에서 “대속신앙”이 약화되거나 이원론화 경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기독교는 카타콤 시대까지는 대속죄 신앙이 중심을 이루었기에 로마제국을 굴복시키기 직전까지 승세를 지켜냈으나 콘스탄티누스의 떡에 취하여 기독교 식 신앙의 중심 골격인 대속신앙(갈 2:20)에 상처를 입혔다.

이후 제국교회 1천 년 동안 암흑기를 헤매다가 16세기 종교개혁기에 중심을 잡았으나 17세기 이후 무신론 철학의 저항과 자본주의 시장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에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헛되이 흘려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이 아름다운 표현의 주인공은 이사야 선지자이다. 예수께서 메시아로 오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5백여 년 훨씬 이전에 이처럼 대속죄 신앙을 시로 써낼 수 있었던 영적 통찰력이 부럽다.

기독교가 대속죄 신앙에 바로 서게 되면 유대교가 찾아오고 이슬람이 달려와서 우리가 그대들을 섬기노라, 이제 드디어 그대 기독교의 모습에서 우리 모두의 메시아 냄새가 나는구나 하면서 춤을 출 것이다. 기독교여, 가까이 더 가까이로 오라. 주 예수의 대속죄 신앙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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