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 연재 소설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47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조효근 작가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602호] 승인 2016.06.29  17:20: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중국 난주에 자리한 경신당.

“절충식 기독론이라는 말씀이시면 기독론은 정론이 없는 교리신학이 되겠군요?”

“그래, 스데반의 지적이 칼날처럼 예리하군.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어떻게 해서 내 죄를 대신하는가, 하는 과제는 예수 공부 마지막 절차일세. 신앙의 초보자들은 아침이슬 밤안개처럼, 또는 낮의 햇빛 밤의 달빛처럼 내려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예법부터 배우는 것이 좋아요.”

다위드는 스데반의 성급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으나 눈에 번쩍 뜨일 법한 대속론 논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는 무죄하시고 무흠하시다. 그런 분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셨으니 바로 그분의 그 행위가 나를 죄에서 건지셨다.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다위드가 혼자서 웃었다.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지 칠백 여년인데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나의 신앙고백 사이의 일치된 논리를 단정하게 말할 수 없다니.

“주교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고 계십니까?”

“스데반에게 대속죄 신앙을 바르게 가르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마음 속에 정돈을 했습니다. 주교님이 전에 이식쿨에서 말씀하신 그 내용이 옳다고 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 신자들은 예수의 십자가가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한 하나님의 장치임을 미처 깨닫지 못해서이고, 우리 교단 설립자이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 역시 기독론 불확실성 발언으로 정죄 추방 되셨잖아요. 그러나 주교님은 대속론 사상을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가?”

“네, 저는 주교님의 겸양을 갖춘 표현법을 존경합니다.”

“그럼, 스데반은 절충식 기독론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요?”

“네, 주교님처럼요. 단성론자에게는 분발해 주세요, 신인 양성론, 곧 대속신앙을 확신하는 이들에게는 축하드립니다 하겠습니다. 주교님처럼 상대방 평가보다는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좋습니다. 그래요,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피가 나와 너의 죄를 용서하셨으나 이는 당사자들의 신앙을 존중함이 좋습니다. 유대교가 바로 예수 십자가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불행을 유발했고, 이슬람이 예수의 대속죄 죽음을 믿지 않는 종교를 주장하고 있으니 이러해서 우리 기독교는 자기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대교나 이슬람은 기독교 신앙의 수준을 웅변해 주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맞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얻었으면서도 유대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슬람 역시 기독교의 가르침을 비웃듯이 배반한 결과를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러니까, 유대교 이슬람의 비기독교 행위는 그것으로 기독교 중간 점수라고 해야겠군요.”

“그렇지요. 유리는 좀 더 복음 앞에서 정직해져야 합니다.”

다위드와 스데반의 대화 시간에 요한이 들어왔다.

“오, 요한! 요한은 수리아어를 한다고 했죠?”

스데반이 요한을 반기면서 물었다.

“서툴러요. 아직 어린 수준이랄까.”

“그래, 아비인 내가 모르고 있었는데 요한이 언제 수리아 말을 배웠지?”

“네, 무슬림 친구 중 다마스커스 출신이 있어요. 혹시 아버지가 나를 다메섹 선교사로 보내실지 몰라서 익혀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지. 우선 금번에 수리아 출신 학자들과 사귀면서 어학뿐 아니라 배울 것이 많을 거야”

“네, 주교님 명심하겠습니다.”

요한과 스데반이 밖으로 나간 후 다위드 주교는 오리봉 오삼수도회 옆 건물 별관으로 향했다. 다메섹에서 온 신학자들이 머무는 숙소 겸 연구실이 있는 곳이다. 신학자 그룹 대표인 아울 타루자 박사의 방으로 직접 찾아갔다. 타루자 박사는 통역인 야곱과 함께 무엇인가를 의논하다가 다위드 주교의 불시 방문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타루자 박사님, 내가 결례를 했나요?”

다위드는 약간은 미안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했다.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주교님이 찾아오시니 잠시 놀랐으나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는 다위드 주교에게 자리를 권했다.

다위드는 자리에 앉자마자 타루자가 구약학자임을 의식하면서 초기 시대 마르키온의 구약 무용론이나 로마 교구에 정착을 거부하고 동방 교구인 앗수리아로 되돌아갔던 타티아누스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주교님, 동감입니다. 로마 교회나 동방 시리아 교회 모두 미숙한 시기였기에 (AD 150년~) 마르키온이나 타티아누스의 영향을 받아 교회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지요. 마르키온의 구약 무용론이나 바울 사상의 영지주의(Gnosticism)화는 더더욱 교회들에게 크게 피해를 주었지요.”

“맞습니다. 마르키온의 구약 무용론 때문에 교회들이 구약성경을 소홀히 했어요. 메시아 예수의 대속사상은 신약보다 구약에 월등하게 많은 자료가 있는데 구약은 필요 없다고 가르친 한 사람의 잘못된 지도자 때문에, 제 생각으로는 구약 무용론과 영지주의 사상이 오늘 이슬람을 역사 위에 불러냈다고까지 봅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처음 듣는 말씀이군요. 그러나 그것들의 연계성을 생각할 때 주교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타티아누스에 대해서는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럴 수 있지요. 저도 타티아누스라는 천재적인 학자에 대해서 존경심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순교자 유스티니아누스의 후계를 이어서 로마제국 교회를 더욱 든든하게 키워갔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에서 그분을 주목하고 있어요. 지금도 저는 로마 교구와 시리아 교구의 중간지점에 서고 싶어요. 앞으로 여기 당나라 기독교를 중심하여 우리 아시아 교구는 로마, 시리아와 함께 삼각 축의 형태를 유지하는 세계 교회의 틀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휴, 주교님의 꿈이 원대하시군요. 저희 신학자들이 그 뜻을 잘 받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해요. 타루자 박사님, 우선 열 명의 학자들을 삼, 삼, 삼으로 나누어서 삼 명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시편, 그리고 신약의 요한복음서를 번역해 주시고, 삼 명은 이사야, 시편, 요한복음의 주석서를 집필하시고, 나머지 삼 명은 목회학과 교회사 교육을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타루자 박사님이 인선을 직접 하시고 감독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별도의 의견이나 요구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희들도 신학자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실력차는 일반 사제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저희도 선교사로 주교님의 당나라 선교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다만, 다위드 주교님의 교단이 네스토리우스파라는 점이 가끔은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네스토리우스 교단이기에 별도의 조건을 가진 바 없습니다. 모든 관행들, 인습이나 역사 속에서 속박되었던 그 어떤 것들도 고집하지 않아요. 성경의 가르침이 오직 우리의 교훈입니다. 단, 하나 제가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기는 합니다만….”

여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다위드 주교에게 아울 타루자 박사가 계속 말하라고 재촉한다.

“말씀하세요. 무엇이든지.”

“네, 다름이 아니라 시리아 교구의 분위기는 단성론 기독교가 우위에 있다고 들었지요. 단성론과 양성론의 차이로 혹시 우리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습니다.

“네, 그러나 저희들은 대다수가 양성론 기독교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출신 마리아 교수님과 같은 신학적 태도를 가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렇죠. 저희 할머니, 저를 오늘까지 길러주신 마리아 교수님과 성향이 같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론의 차이도 괜찮다고 봅니다. 다만 예수의 신인 양성론을 추구하고 있으나 아직 그 정점에 이르지 못하여 고등학문의 진리의 완성도를 위해 구도자의 자세와 예의를 갖춘 사람이면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주교님, 존경합니다.”

타루자는 의자에서 일어서서 고개를 깊이 숙여 다위드에게 존경한다고 인사를 했다.

다위드와 타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오리봉 숲길 산책에 나섰다.

“주교님, 다마스커스의 현실은 답답하답니다. 이슬람 초기 우마이야 왕조가 압바스 칼리프조로 대체된 지 10여 년이 지나 이슬람 권력의 중심이 다메섹에서 바그다드로 옮겨갔어요. 압바스 왕조는 아랍인에 대한 페르시아인의 승리로 볼 수 있어서 저희 기독교는 견디기가 더 어려워졌어요. 주교님이 불러 주신다면 더 많은 전도자들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현 황제가 등극한 지 오래지 않아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일꾼들을 더 많이 초청하도록 하지요. 우리는 당나라 선교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당나라는 물론 중앙 아시아 깊은 곳으로까지 이슬람 세력이 밀고 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신앙의 자신감 훈련이 시급합니다.”

“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는 당나라도 중요하지만 서역의 성벽 국가들 코초나 쿠차, 카쉬카얼, 허탄은 물론 판지갠트, 사마르칸트, 이식쿨 등 지역에서 지도인물들을 양성하고 있어요. 초원의 북방세력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위드의 말에 타루자 박사는 깜짝 놀란다.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했다. 

조효근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