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기획연재
“제자훈련 통해 자생력 갖추자 꽃 피고 열매 맺히더라”생명을 살리는 창동교회(김상렬 목사), 생동력과 젊음 되찾게 된 이유 있었다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603호] 승인 2016.07.14  18:14:5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김상렬 목사

평일 오후시간, 도봉구 도봉로 106길에 위치한 창동교회(김상렬 목사)는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교회 마당 옆 카페에서는 어른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고, 그 바로 옆에는 키즈 카페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1층 교회 현관 안쪽에 자리한 예배당에서 불빛이 새어나왔고 좀더 다가가니 은은한 음악소리가 발길을 이끌었다. 확 트인 예배당, 강단의 조명에 끌려 들어가 보니 은은한 조명빛을 받고 있는 강단에는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 강단 우측에는 긴 십자가가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우뚝 서있다. 누구라도 들어가 앉아 머리를 숙이며 기도하고 싶어지게 말이다.

◐ 틀을 깨야만 했다
창동교회는 올해 45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교회다. 장년, 청년, 아동부가 모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균형잡힌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김상렬 목사는 창동교회에 제3대 목회자로 7년 전에 부임했다. 1대 목회자는 ‘보혈의 목회자’로 교단 안팎에서 유명했던 김봉업 목사였고, 그의 10년 사역을 이어 윤세흥 목사가 26년을 이끌었다. 그런 믿음의 행진을 굳건히 한 선배 목회자들과 함께 창동교회는 복음의 확신 가운데서 걸어왔다.

그러나 2009년 7월 49세에 창동교회를 부임한 김상렬 목사의 첫인상에는 철저히 세상에서 격리된 섬처럼 존재하는 교회라는 느낌, 세상을 향해 가야한다는 사명은 물론이고 새로운 심령이 들어와서 화학적 연합과 영적인 관계와 건강한 교제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경직된 묵은 땅처럼 섬으로 존재하는 교회라고 느껴졌다.

“쉽지는 않았지만, 틀을 깨고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성도들도 알았기 때문인지 말없이 잘 따라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생명력 있는 소그룹을 세워나가는 것이었다. 교회에 모이면 영적인 세움을 입고, 흩어지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소그룹의 체질개선이 시급했다. 남녀선교회를 해체하고 구역 조직을 ‘목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수동적인 교회활동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있는 역동성있는 존재로서 생명들을 세워나가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지체로 서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상반기인 지난 6월 30일까지 목장별로 5명씩 전도하자며 내세운 6305프로젝트를 통해 장년 40명이 등록했고, 추가로 15명이 예비자로 준비되고 있다.

◐ 제자훈련이 대안
김상렬 목사는 부임 이듬해부터 제자훈련을 시작, 현재까지 144명(제5기까지)의 신자들과 1년씩 제자훈련을 진행해왔다. 제자훈련을 한 번 하면 서너 시간은 기본, 총 35회의 만남을 하다보면 말씀을 통한 자극과 변화를 서로 나누면서 하나님이 만져주시는 것을 체감한다. 지식이 쌓이는 제자훈련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깨지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실천에 손발을 척척 맞추기에는 제자훈련만한 게 없다고 김 목사는 확신한다.

“제자훈련에서는 많이 울게 됩니다. 거기에서는 말씀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고, 눈물과 감동,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사람, 참 변화되기 쉽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얘기지만 제자훈련에서 말씀을 통해, 그리고 성령께서 모임에 함께 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지체들로 세워지고 ‘사람이 바뀐다’고 김 목사는 자신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도 목회적 대안은 제자훈련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이런 확신은 창동교회 부임 전 개척해서 19년간 목회했던 교회에서 충분한 경험도 한몫했다.

   
▲ 키즈카페가 들어서고 평일에도 교회는 주민들, 특히 어린 아이와 젊은 엄마 아빠들이 교회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환경들이 많이 바뀌고 있는 점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70, 80년대는 부흥회와 성령운동 등으로 성장을 외쳤다면 지금은 그것으로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회로서 어떤 부분을 부여잡고 나가야 할까.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세워가는 것, 교회 지체로 손색이 없게 자리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자훈련이었다.

◐ 소그룹, 자생력으로 살아나다
교회 내에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호칭하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통해서 세워지면 신앙 기본기가 확실해지고, 주님의 지체로서 역할자로서 연대하는 힘은 매우 크다.

학생이 공부하는 이유는 사회적 역할, 가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함이지 공부가 목적이 아닌 것처럼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교회에서 예배자로서 세워져나갈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수 있도록 성숙시키기 위함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를 찾아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동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이들의 특징은 소그룹을 통한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소그룹에서 교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 이외에도 선교와 전도, 봉사 등을 소그룹별로 진행하다보니 교회 중앙에서 이끌어갈 때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진행된다.
선교만 해도 그렇다. 교회 건축을 3년 전에 마치고 나니 선교할 여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목장을 16개 조로 편성해서 16곳의 선교지를 자체적으로 돕도록 하니 그들 스스로 자긍심도 생기고 기도와 관심과 지원이 자생적으로 일어나 활발해졌다. 마치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말이다.

전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전도, 대중적인 전도도 열심히 하지만 소그룹에서 함께 독려하며 관계 전도도 함께 진행하다보니 힘이 배가되는 것을 성도들 스스로 경험하고 있다.

상반기인 지난 6월 30일까지 목장별로 5명씩 전도하자며 내세운 6305프로젝트를 통해 장년 40명이 등록했고, 추가로 15명이 예비자로 준비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숫자는 다소 감소해 한국교회의 침체기라는 말이 실감나지만 그래도 창동교회는 전도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처음 3년 정도는 저 혼자 열심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신자들과 박자를 잘 맞춰 걷고 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평신도가 교회에서 주도적으로 일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며 흐뭇해한다.

   
▲ 성도들이 산상기도회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 빠르게 지난 7년간 일어난 일
김상렬 목사가 신자를 양육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한 내적인 작업이 제자훈련이라면 외적인 작업도 만만치 않게 병행했다.

그 첫 작품이 부임한 이듬해 카페를 오픈한 것, 교회 입구에 창고처럼 컴컴하게 있던 것을 리모델링해서 카페로 만들고 교회 본당 건물을 신축하고, 키즈카페를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교회 수준은 본당 수준’이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김 목사는 당시 본당에 8개의 기둥이 있어 답답했던 부분을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당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갈망대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오픈했던 카페가 지역에서도 호응이 좋았기 때문인지 건축 문제가 나왔을 때 반대가 없었다. 건축하면 신자들이 떠난다는 속설도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3년 전에 문을 연 키즈카페를 통해 젊은이들이 세워져가고 있다. 연배가 많은 이들이 주를 이뤘던 교회가 어느새 30, 40대 초반의 사람들 62명이 제자훈련을 통해 세워졌고, 영아부 자모실에는 30여 명, 그득하다.

김 목사가 그렇게 원하던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는 이뤄져가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사회 속에서 고령화되는 교회, 그러나 창동교회는 어쩔 수 없다며 대세에 따르지 않고 젊은 나이에 개척해서 19년간 튼튼히 목회하고 있던 김상렬 목사를 ‘구원투수’로 불러 건강하고 균형잡힌 교회로 서가는 데 성공했다.

   
▲ 부활절 칸타타 모습

◐ 죽음 저편을 보고 난 후
키즈카페가 들어서고 평일에도 교회는 주민들, 특히 어린 아이와 젊은 엄마 아빠들이 교회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이들이 본당까지 거리낌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 지체들은 통로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김 목사는 최근 몇 개월간 목회자로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아픔을 겪었다.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시한부 인생 2년’ 진단이 나왔다. 서재 옆에 웃고 있는 액자 사진을 보면서 김 목사는 ‘저것이 내 영정사진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세포 덩어리로 판명됐고,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해 5개월 만에 강단에 설 수 있는 은총을 입었다.

김 목사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성도들 또한 많은 기도로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설교단에 섰을 때 모두 주님 앞에서 큰 은총을 입은 자임을 실감했다.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역시 교회 창립의 기저가 된 ‘보혈’의 은혜를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저를 세우기 위한 방법의 시간이었다”며 “시한부라는 판명을 받았을 때 참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입으면서 다시금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 세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한국교회의 침체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물었다.
“사실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부여잡지 못하고 시대적인 조류에 편승해서 맘몬이즘에 휘둘리게 될 터인데 말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그 자녀들 또한 걱정스러울 만큼 많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현상을 김 목사는 말하면서 “그들이 교회 속의 ‘우리들’을 떠났을 뿐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하나님’을 떠난 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교회 위기 대안은 실제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로 서게 하는 것, 초대교회와 같이 삶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은 곧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삶과 더불어 이웃 속에서 ‘크리스천다운 사람’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아내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살아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양승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