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백주년을 말하는데, 그럼 그때 그 개혁은 온전한 개혁이었던가? 5백년이 되었으니 냉정한 회고를 해 볼 필요가 있다.

16세기, 그때 그 개혁은 콘스탄티누스의 벽을 넘지 못했었다. 로마, 또 유럽의 벽 또한 넘지 못한 개혁이었다. 여전히 로마식 가톨릭이나 로마식 프로테스탄트로서 지중해 스타일을 벗지 못했다.

이제 세계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에 접근하는 종교의 원형 찾기에 몰두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준비가 바로 그것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지금 세계교회 현안 중에는 기독론, 삼위일체론마저 수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교과서적인 교리에 머물러 있을 뿐, 기독론에 준하는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정통 기독론적인 삶은 내 안에 예수가 사시고 행동하는 믿음의 모습이다. 예수와 나의 삶은 성령 안에서 두 존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인 삶을 사는 믿음의 삶이다. 그런데 보라!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마치 상거래 하듯이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는 요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예수 믿음의 정통신앙은 너의 행위와 상관없이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명령은 이것이다, 하면서 예수의 모습이 내 삶의 현장에 나타나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나와 너의 오늘 모습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막연한 동작, 주여 주여 한다고 예수께서 움직여 주시지 않는다. 내 삶의 현장에 예수께서 함께 계시는 삶으로까지 성숙해가기 위하여 종교개혁 5백주년은, 온전한 개혁으로 하자. 로마나 유럽식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 예수식으로 성숙해 가는 원형 찾기 개혁시대를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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