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 연재 소설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50장안과 낙양(뤼양)의 벌 떼 전략
조효근 작가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605호] 승인 2016.07.27  13:28:1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아버지, 저에게도 계획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수년 동안 이슬람 친구들과 지내면서 그들 세계관의 강점과 약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아버지 총주교님의 가르침을 받겠으나 이슬람의 속성과 그들의 태생적 비밀은 별도로 그들 세계로 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입니다.”

요한을 바라보는 다위드 총주교는 정신이 번쩍 났다. 품 안에 자식이라더니, 내가 아들 요한을 너무 어리게 보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장하구나! 내가 너를 너무 어리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내가 너를 어린 아이로 결코 보지 않았고 너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한다. 그런데 말이다. 혹시 네가 이 아비의 이슬람 지식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가슴결에 스쳐가는구나.”

“아, 아니예요. 아버지, 아버지의 학구적이고 실험적 탐구력을 저는 존경합니다. 제게 아버지의 탐구열이 반의 반만 있다 하여도 감사할 것입니다. 아버지, 결코 그게 아니라 저도 앞으로 우리 기독교 문제는 이슬람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제가 좀 긴장해 있는 참입니다.”

“아들아, 너는 내 곁에서 더 배우거라. 시간이 부족하구나.”

“네, 정히 그러시면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다위드 총주교는 이슬람 대책과 전성기가 끝나고 국력이 쇠잔해 가는 당나라 선교를 어떻게 대처해 가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양날의 칼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총주교 다위드는 입궐하라는 전갈을 황궁으로부터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황제에게 진언을 드리고 도움을 요청하려던 차에 그는 준비된 마음으로 황제 앞에 나아갔다.

당 현종의 손자이기는 하지만 현종만큼 위엄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당 태종이 굳건히 일으켜 놓은 세계 최대의 왕국이 아니다. 국력과 함께 문화의 꽃을 피웠던 태평성대의 당 현종 시대가 안록산의 국권침탈의 반역으로 빛을 잃었다. 그 뒷수습을 하느라고 세월을 다 보낸 그의 선황 숙종의 뒤를 이은 지금의 황제는 환관들과 공동통치를 하는 군주라고 주변에서 수군덕거릴 만큼 유약했다.

“총주교, 얼굴을 드시오. 만나고 싶었소이다. 조금 가까이로 오시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어인 말씀이시온지요. 언제든지 부르시면 소인이 어찌 낮밤을 가리오리이까.”

“고맙소 총주교. 그 말씀이 너무 고맙소이다. 혹시 내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하여 보자 하였는데 요즘 교단은 잘 되어갑니까?”

“네, 폐하의 감은지덕으로 모두 평안하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폐하께서 부르시면 찾아뵙고, 윤허를 받고 싶은 소원이 하나 있었나이다.”

“그래 그래. 말씀해 보구려.”

황제는 모처럼 기분이 좋은지 말을 하다가 침을 꿀꺽 삼키며 기분 좋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마도 외로움이랄까 소외감에 짓눌려 지내오던 감정의 표현일 것이라고 다위드는 생각했다. 순간 어떻게 하면 황제에게 힘을 실어 드릴까를 생각하면서 말을 꺼냈다.

“폐하, 하층민들을 향해서 저희 경교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싶나이다. 고아나 과부는 물론이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신분이 천한 이들을 부모형제처럼 껴안아 주고 싶습니다. 이는 저희 기독교가 전문적이고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인데 그동안 여의치가 않았나이다.”
“그래, 바로 그거요. 나도 총주교를 만나면 그 일을 부탁하려던 참이었어요.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마음이 잘 통할꼬.”

“감읍, 감읍이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이로소이다.”

“그래, 염려 마시오. 선황제들께서 당신들 교단의 요청을 거절해 온 사실도 짐은 잘 알고 있소. 이제 안사의 난도 대강 정리가 되었으니 천민들이나 가난하고 고달픈 자들의 고통을 치유해 주는 일을 제국이 감당할 일이지만 경교가 나서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그래, 총주교 필요한 것, 비용이 필요할 경우 짐이 얼마간 도울 수 있소이다.”

“아닙니다. 황명만 내려 주시면 그것이 천만금이옵니다.”

“그래요. 총주교, 참 말도 복스럽게 잘 하시는구려. 고맙소. 총주교가 곁에 있으니 짐은 복받은 황제입니다.”

“망극하신 말씀 거두어 주소서. 받자옵기 민망하옵니다. 폐하!”

하마터면 낙루를 할 뻔했다. 다위드 총주교는 말끝마다에서 느껴지는 황제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본다. 오죽하면 황제 위에 환관이라는 소리가 저잣거리까지 들려왔을까. 황제 알현 후, 다위드의 계획은 일사천리였다. 장안에 있는 ‘오삼수도회’의 인력을 모두 동원하면 1천여 명이다. 부부들이 노년이라지만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다위드의 교육 방침은 수도자들이나 신자들의 활동력을 높이는 비법이 있었다. 그는 그의 휘하 전도자들이나 신자들에게 “예수께서 하듯이”라는 대원칙 하나에 집중했다. 우리는 예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그 능력으로 봉사활동과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하시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하루는 수도자와 장안의 여러 교회 신자들이 본부 대진사 강당에 모였을 때였다. 총주교의 특강이 있는 시간에 참석자들의 궁금증이 쏟아졌다.

“질문 있습니다. 저는 장안 서구지역 황수인 수도삽니다. 외람되오나 총주교님께 여쭙니다. 예수님이 직접하시게 하라시는데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제가 예수님이 아닌데 말이죠.”

황수인 수도사의 질문에 청중은 배꼽을 잡고 한동안 웃었다. 사회자가 제지하지 않으니 실컷 웃다가 지쳐서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다 웃었습니까. 배꼽이 빠졌을지 모르니 남자들은 가만히 만져 보시오.”

“…….”

“그래요. 나와 여러분이 예수님은 아니지만 그분의 지체입니다. 우리 손이 움직이고 발이 나아갈 때 또 마음으로 정성을 표할 때 실제로 주 예수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믿지 않으니 신앙에 성공하기가 힘이 듭니다. 나와 여러분이 움직일 때, 봉사의 길에 나서고 전도하러 나설 때 틀림없이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것이 곧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바로 그같은 일을 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고 행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주님이 하시고 나와 여러분은 주님의 도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멘입니다. 총주교님.”

“그래요. 내 말이 여러분의 가슴에 감동으로 자리 잡고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바로 그 사람들은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마음을 가진 이들입니다. 틀림없어요. 바로 이 경우,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천국은 바로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이니라 하셨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당나라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 고아와 과부들, 하층민들을 먼저 찾아 갑니다. 가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과 재물, 정성과 차별없는 따뜻한 마음을 전달합시다.”

다위드 총주교의 지도력은 즉각 발휘되었다. 장안과 낙양, 이들 두 도시에 각각 5백여 명씩을 보내기로 했다. 두 사람씩 짝을 짓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활동 팀을 만들도록 하였다. 저녁 시간에 각 지역 활동의 중간 지도자들이 모였다. 다섯 지역을 단위로 하는 중간 책임자들이었다. 저녁시간에는 스데반이 중간 책임자 백여 명을 향한 집중 훈련을 시켰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섯 개 팀의 지도자입니다. 아마 둘씩이면 다섯 개 반이 되고 다섯 명 씩이면 두 팀이 되기도 하고, 열 명 모두가 나서야 할 경우는 모두가 한 팀이 됩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자는 뜻입니다. 각 지역의 분위기에 따라서 눈치 빠르게 인력 배치도 하고 조정도 해야 할 것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여러분은 대장이고 또 파송지역의 사령관이기도 합니다. 지역마다의 신속한 상황 파악을 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치료하는 은사의 활용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앞부분에 베드로 사도가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나는 돈은 없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행 3장) 했던 것처럼 여러분과 나는 치료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세요. 속사도시대 안디옥 감독 이그나시우스는 믿는 성도가 베푸는 치료의 은사를 “만병통치약”이라 했어요. 여러분은 치료의 은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아셨지요?”

일부는 예, 하고 대답을 했으나 상당수가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왜들 답변이 그렇습니까?”

“아니 사제님, 치료하는 은사라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 처음 듣습니다.”

“어허, 지어령 수도자시죠? 수도자가 무슨 그런 민망한 말씀을 하세요. 오후 시간에 총주교님이 뭐라 하시던가요?”

“…….”

“왜, 말씀들이 없어요? 예수를 주라! 여러분과 함께 하신 예수께서 베풀고 가르치게 하라! 하셨잖아요. 알았지요? 그럼, 치료가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

“나와 함께 하신 예수여! 치료를 베풀어 주소서, 하면 됩니다. 내 말 알아 들으셨어요?” 

조효근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