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파트너스 초청, 파키스탄 아시프 칸 신학장 강조

“서구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발전한 것과 달리 당시 무슬림은 600년의 암흑기를 거쳐 왔다.
때문에 그들은 찬란했던 과거를 파먹고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서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아쉬케나즈 아시프 칸 학장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파키스탄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아쉬케나즈 아시프 칸 학장(파키스탄 슬라밧 신학교)이 한국을 방문했다. 칸 학장은 무슬림은 우리의 이웃이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션파트너스(상임대표 한철호 선교사)는 7월 23일 오전 10시, 신반포교회 비전센터에서 아쉬케나즈 아시프 칸 학장 초청 ‘우리의 이웃 무슬림 - 파키스탄교회의 역사와 무슬림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 강사로 나선 아쉬케나즈 아시프 칸 학장은 1959년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서 출생했으며, 마닐라의 Asia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무슬림이 97%를 차지하고 있는 파키스탄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펼쳐왔으며, 2005년부터는 스라밧성경신학교 학장을 맡고 있다. 칸 학장은 무슬림 이웃과 분리되어 살아선 안된다며 그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칸 학장은 전도자로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무슬림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소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또한 무슬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와 무슬림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고 말했다.

칸 학장은 먼저 무슬림들이 가진 정체성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무슬림은 역사와 정경, 그리고 교리와 독특한 실천 강령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종교와 문화, 정치를 따로 이야기하지만, 무슬림에게 모든 것은 하나”라고 설명했다.

칸 학장의 설명에 따르면 무슬림은 기독교인을 ‘경전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한다. 그것은 코란에 기록된 내용으로 칸 학장은 “이 표현은 굉장히 높여주고 영광스럽게 말하는 표현이고 우리 나름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것도 그들은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칸 학장은 무슬림을 ‘기억하는 사람들’로 규정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교리와 역사, 실제 삶을 분리할 수 없으며, 옛날에 일어난 모든 일을 현재에도 다 기억해 ‘무슬림 각자가 걸어 다니는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아쉬케나즈 아시프 칸 학장은 먼저 기독교와 이슬람의 파키스탄 전래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왜 선교가 실패했나
칸 학장에 따르면 파키스탄 역사 속에는 3번의 복음전파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주후 46년 사도 도마가 파키스탄 북부 텍실라에 도착, 두 번째는 7세기경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시리아 부근으로 들어온 일, 마지막으로는 종교개혁 이후 로마가톨릭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등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3차례 모두 파키스탄에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당시 선교사들이 유럽처럼 왕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면 자연스럽게 온 국민이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파키스탄을 차지하고 있던 무굴 왕국의 왕족들이 복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8세기 이슬람 선교사들은 정령숭배와 불교가 성행하고 있던 파키스탄 지역을 성공적으로 이슬람화 시켰다. 당시 이슬람 선교사들은 기독교처럼 왕족을 대상으로 전도한 것이 아니라 마을로 들어가 살며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교리를 설파했다.

칸 학장은 초대 교회부터 지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18세기까지 가시적이며, 지속가능하고, 역동적인 신약 교회를 세우는 일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언급하며 “8세기 파키스탄 이슬람 선교사들의 전도방식을 선교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후 19세기에 침례교에서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 장로교에서는 사무엘 마틴이 인도 선교에 나섰지만 이들의 선교 역시 상류사회를 겨냥해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제가 존재했던 인도 지역에서 복음이 확산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또한 선교사들이 도시를 거점으로 선교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작용했다. 당시 대부분의 인구가 시골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칸 학장은 “도시라는 인프라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머무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며 “사도 바울은 도시 중심의 사역을 했지만 그곳에 계속 머무르지 않고 순회하며 사역을 했다”고 설명했다.

# 천민을 들어 쓰신 하나님
또한 당시 선교사들이 자신들에게 친숙한 서구식 생활을 고수한 점도 문제라고 짚었다. 칸 학장은 “인도의 무슬림이나 힌두교도 입장에서 보면 선교사들은 그저 식민지 관료들로 보였을 것”이라며 선교 방식의 한계를 설명했다.

대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추흐라 계급의 불가촉천민인 디트를 통해 첫 번째 교회가 세워졌다. 한 기독교인 농부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디트는 사무엘 마틴 목사를 찾아가 세례를 부탁했다. 사무엘 마틴 목사는 문맹에 하류계급인 디트가 정말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의심해 주저했으나 디트가 자신의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세례를 줬다. 그리고 디트는 그 후 세 달 동안 4명의 개종자를 데려왔고 그렇게 파키스탄에 토착적인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나게 됐다.

하지만 선교본부에서는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엄격한 카스트제도로 인해 상류계급은 하류계급과 섞이길 원하지 않아 하류계급의 급격한 유입이 상류계급의 개종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이러한 선교본부의 무시에도 디트는 온갖 핍박을 받으며 스스로 복음전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1930년에는 디트가 속한 추흐라 계급의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기도 했다.

칸 학장은 “디트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이용하셔서 디트에게 전하도록 하셨다. 우리는 이 집단 개종이 서양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지역 출신의 읽고 쓸 줄 모르는 한 남자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픔 공감할 때 해법 보인다
무슬림들은 지난 1400년의 무슬림 역사를 가슴에 담고 산다며 탄 학장은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슬람 국가들은 정부차원이나 모든 교육시스템이 1400년의 역사를 지키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슬프고 아픈 역사, 영광스러운 역사 모두가 학교의 교육 커리큘럼이나 코란 주석, 역사책 시, 소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예술에 모두 다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칸 학장은 이런 이유에서 무슬림을 1400년 동안의 아픔과 그 분노를 그대로 안고 있는 종족집단이라고 이해했다.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그들 안에 있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지난 1400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상처를 당한 것일까? 먼저 중세시대 예루살렘을 놓고 벌어진 십자군 전쟁이다. 칸 학장은 “여러분은 성지를 역사적으로 성경 공부할 때의 지리적 장소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영적 영향력이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는가? 나는 그 당시 성지에 대한 분별이 있었다면 십자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당시 그들은 영적인 의미를 예루살렘에 부여했고, 가서 토착민들에게 굉장히 잔인한 짓을 했다”고 말했다.

이슬람은 당시 십자군 전쟁의 쓰라린 기억들을 문학작품이나 TV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칸 학장은 “무슬림에게 십자군 전쟁은 역사의 한 부분이라기보다 지금도 살아있는 생생한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또 하나의 상처는 한때 이슬람이 정복했던 스페인을 기독교에 빼앗긴 것이다. 칸 학장은 “스페인은 무슬림의 역사 인식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슬람이 스페인을 700년 동안 점령하던 시기 그들은 굉장한 문명을 꽃피웠다. 때문에 15세기에 기독교가 다시 스페인을 점령한 것에 대해 무슬림들은 슬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영국이 무굴제국을 침략한 역사와 이슬람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오토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여러 나라로 분열된 것 등 자신들의 찬란했던 역사를 기독교가 무너뜨렸다는 피해의식이 그들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아 서구는 무조건 반이슬람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되어 있다고 칸 학장은 말했다.

또한 파키스탄만의 역사적 아픔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군이 이슬람 국가였던 파키스탄을 유대인들이 지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가 서구와 손잡고 원래 하나의 나라였던 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와 지금의 파키스탄으로 분열시킨 것도 그들의 아픈 기억 중 하나이다. 칸 학장에 설명에 따르면 두 나라가 나뉘기 전 파키스탄은 가장 큰 이슬람 국가였다고 한다.

칸 학장은 “서구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발전한 것과 달리 당시 무슬림은 600년의 암흑기를 거쳐 왔다. 때문에 그들은 찬란했던 과거를 파먹고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서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무슬림에 의한 테러에는 이러한 분노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한 무슬림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칸 학장은 “그 아픔을 공감하고 받아들일 때 해법을 향해 갈 수 있으며, 무슬림이 해석하는 역사 해석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감지하는 아픔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선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교회는 치료자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어떻게 치료자의 자리에 설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슬림은 우리의 이웃”임을 칸 학장은 강조했다.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듯이 우리의 이웃인 무슬림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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