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신앙”은 기독교의 생명으로서 단순 표현으로는 예수께서 내 죄를 대속(代贖)하셨음을 믿는 신앙고백이면서, 지역교회(예수의 지체)의 존엄한 가치를 드높여 준다. 지역교회는 예수의 지체이기에 하나님과 지역교회는 동체(同體)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지역명 사용 교회는 하나님의 얼굴이요 예수의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 이름 앞에 형용사나 추상어를 사용하면 안되고 오직 지금 하나님과 예수께서 어느 지역에 계시는가를 표기하기 위하여 교회 이름 앞에는 행정단위 지역명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역교회명을 회피하는 교회는 정착 교구가 없는 시나이 광야의 떠돌이 교회들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라! 예수 십자가에 동참한 교회들은 예수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고 지역교회이름으로 예수의 지체로 만족할 줄 안다. 내가, 죄와 사망의 자식이었던 그때 내가 예수를 만나서 예수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절차를 밟은 신자가 되었으면 자기 파괴, 자기 박탈, 자기 포기, 자기 자신을 십자가 예수 죽음에 동반절차로 바쳤으니 이미 하늘의 별들보다 뛰어난 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감격하고 감사하여 더 할 말이 없이 하나님과 동질(同質), 동체(同體) 관계를 받아들여 예수의 지체가 된다. 이 같은 신자들, 대속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세계에 동반하는 자들이 신자인데 그들이 모인 그 교회 이름 앞에 무슨 설명을 더 하려 드는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품을 만난 신자들, 그들이 바로 지역교회명의 신앙, 신학적 의미를 깨달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얼굴들이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면 교회는 믿는 우리의 어머니라 했던 칼빈 선생은 바로 교회의 존재성을 깊이 알았던 것이다.

예수 안에서 성령의 사람, 바로 성령의 사람들이 군집을 이룬 존재가 교회이다. 교회는 성령을 제한하고 성령은 또 교회를 제한한다. 여기서 “제한”한다는 말은 교회와 성령은 “하나”라는 뜻이다. 성령은 성자 예수의 지상생활을 지키는 분이신데 예수의 일을 대신하는 교회이기에 성령과 교회는 서로를 제한하고, 서로를 관여하기도 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성령과 교회는 역시 동질 또 동체관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사람, 성령의 집, 성령의 몸이 교회이기에 교회는 한 지역에 정착해야 임마누엘의 가치가 보존되는 신비한 의미를 갖는다. 대속의 주 예수는 지역교회 이름으로 지상에 강림하셨다. 베들레헴에 강림하셨듯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역 이름의 그 교회에 강림하신다.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구간 말 구유(말 밥통) 안에 오셨듯이 비록 겉모양은 초라하지만 나와 당신이 머물고 있는 지역교회에 오심으로 구원이 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오셔서 드디어 이 땅(지상)에 하늘나라 임하셨듯이 나와 당신이 일하는 지역에 하나님이신 예수 오시게 하라. 그리고 함께 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주님의 체온을 느껴보라. 바로 그것이 하늘나라 임재의 출발점이요 세계 구원의 첫 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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